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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의 유유자적은 무지일까 오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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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盧대통령의 유유자적은 무지일까 오기일까"

[한미FTA 뜯어보기 271 : 한미FTA의 귀결, 그리고 대안] 반대운동, 이제 시작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한미 FTA의 본질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써 온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한미 FTA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킬지, 그리고 한미 FTA가 아닌 다른 길은 없는지 갈무리한 '한미 FTA 최종 보고서'를 보내왔다. <편집자>

1. 미국의 對아시아 전략과 한미 FTA

지난달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 교본으로 불리는 '아미티지 리포트'가 공개됐다. 지금은 미국이 이라크전 등 중동문제에 빠져 있지만, 미국에 있어 중장기적으로 아시아는 여전히 미지의 숙제다.

이 보고서는 "아시아는 미국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안정과 번영의 세계질서로 가는 관건(key)"이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실제로 그렇다.

'아시아 올바로 가게 하기'…미일동맹, 미일 FTA가 관건

이 보고서의 제목은 '미일동맹'인데 부제가 흥미롭다. 바로 '2020년까지 아시아 올바로 가게 하기(Getting Asia Right)'이다.

'아시아 올바로 가게 하기'는 미국의 가치를 이 지역에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이 지역의 지도자들이 자국의 성공을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목적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즉, 각국 지도자가 스스로 '시장경제와 자유'라는 핵심 가치를 받아들여 미국이 아시아에서도 패권을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환경 조성 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미국과의 FTA다. 하여 이 보고서는 일본이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한국은 '개밥의 도토리'…정부가 자초한 일

미국이 원하는 대로, '자발적으로' 미국이 내건 4대 선결조건을 미리 해결해 주겠다고까지 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은 이 보고서에서는 안중에도 없다.

한국은 오직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만 언급될 뿐이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한국이 거의 모두 사안에서 양보한 한미 FTA에 대해서도 미 의회에서 비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 냉소적이다.

이 보고서의 제목이 적나라하게 보여 주듯, 아시아가 올바로 가게 하는 주체는 미일동맹이다. 여기에다 미일 FTA만 체결된다면, 미국은 자신의 아시아 전략을 반은 관철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미국 쪽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보조적 동맹이다. 불행하게도 힘이 적은 나라가 캐스팅보터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하면, 그가 받을 대우는 '개밥의 도토리' 바로 그것이다. 우리 정부가 스스로 자처한 일, 앞으로 이런 대접을 받아도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붙으면?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만한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현재 특구 형식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이 과연 미국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평화롭게 관철되도록 할 것인가?

중국 내 불균형 문제의 해결, 아시아 역내의 안정 등 현상유지 속의 경제발전을 우선시 하고 있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장차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덩샤오핑의 대외정책을 일컫는 말)를 끝내고, 화평굴기(和平屈起, 평화롭게 일어선다는 뜻으로, 1990년대 후진타오의 외교전략을 일컫는 말), 나아가서 스스로 패권을 추구하게 될 때, 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 이 두 패권 국가는 어떤 갈등을 일으키게 될지 모른다.

만약 그때에도 남한과 북한이 분열돼 있고, 북한이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남북한이 될 것이다.

아시아의 평화적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할 이 시기에 우리는 한미 FTA까지 맺음으로써 한쪽 편에 확실히 서버리고 말 것인가? 지난 10여년 애써 일궈 온 남북한 관계 개선도 물거품으로 돌아서게 할 것인가?
▲ 한미 FTA 저지 여성대책위 위원들이 9일 '한미 FTA반대 38인 기자회견'에서 'NO FTA!'가 적힌 종이로 카드섹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 한미 FTA의 경제·사회적 귀결

(1) 미국형 FTA의 특징과 공공 분야의 붕괴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미국은 다자주의를 포기했다. 다자간 투자협정(MAI)의 실패와 칸쿤의 비극을 계기로 미국은 양자주의로 돌아섰고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로버트 죌릭은 '경쟁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 내용인즉 '각개격파(各個擊破)'였다.

경쟁적 자유주의란 전 세계 국가들로 하여금 경쟁적으로 미국과 양자간 FTA를 맺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나프타 플러스(NAFTA Plus)'로서, 미국은 경쟁적 자유주의의 확산을 통해 상대국 시장의 전면적 개방과 자유화, 즉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밝혔다. 즉, 현존하는 FTA 중 가장 강력한 나프타보다도 더 강한 FTA를 전세계에 퍼뜨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관철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이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에 따라붙는 조건과 더불어 FTA라는 또 하나의 무기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 IMF 구제금융 조건과 FTA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총과 대포처럼 미국의 가치와 경제체제를 상대국에 관철시키는 무기인 셈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독재로부터의 해방, 넓게 말하면 문명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마르크스의 표현으로 비유를 하자면, 제2차 '자본의 문명화 작용'이 아시아에서도 시작된 셈이다.

"한국은 경쟁적 자유주의의 모범 사례"

지난해 5월 25일에 발표된 미 의회조사국보고서(CRS Report)는 "한미 FTA는 경쟁적 자유주의의 모범 사례"라고 못 박고 있다.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라고도 표현된 이 전략은 미국의 강점인 신(新) 통상 이슈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모두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경 사이에 놓여 있는 관세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이 지적재산권, 서비스, 투자 등 이른바 신이슈에 협상력을 집중하는 것은 물론 그 분야에서 미국 기업이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 개방'은 언제나 환영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분야는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및 공공정책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데 있다. 전기, 철도, 수도, 우편 등 네트워크 공기업, 환경, 노동, 부동산, 의료, 교육 등 국민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분야들이다.

이들 분야가 미국식으로 바뀐다고 상상해 보라. 예컨대, 그 잘 산다는 미국에서는 무려 4700만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료보험 없이 살고 있다. 공공 분야가 미국식이 되면, 서민의 삶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여지없이 흔들리게 된다.

당장 한국은 의약품 분야의 협상에서 사실상 의약품 특허기간을 3년 이상 연장시키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 들였고, 재심위원회 등을 통해 미국 다국적 기업이 약값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보건복지부의 추정치로도 6000억~1조 원이며, 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이나 업계에서는 8조 원까지 내다보고 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역시 미국의 압력에 밀려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나 저작권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저작권 보유수가 적은 나라는 이 기간을 줄이려 하고, 많은 나라는 늘리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저작권 보유수에서 미국과 천양지차인 우리나라가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늘린 것은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다.

세계은행은 WTO(세계무역기구) 지적소유권협정(TRIPs)을 완벽하게 적용하면, 한국의 손실액이 155억30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한미 FTA의 지적재산권 분야는 'TRIPs 플러스'를 목표로 했으니 협상 결과를 놓고 정밀한 계산을 해 볼 일이다.

지금 정부는 한미 FTA와 이런 공공부문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현재 '미래유보'로 돼 있는 분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내부에 공공부문을 어떻게든 민영화하려는 세력이 있는데, 그들이 재경부, 재벌, 보수언론 등 막강한 지배세력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일방적 개방(unilateral opening)은 한미 FTA와 관계없이 언제나 환영받는 일이다.

정부가 혹시나 정신을 차린다 하더라도…

혹시나 미래에 정신을 차린 정부가 협정의 내용을 가로막으려 해도, 이번에는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 제소권'이 기다리고 있다. 한미 FTA 7장인 투자 챕터는 각종 독소조항들을 안고 있다.

나프타의 11장에 해당하는 이 투자 챕터에 따르면, 투자의 정의, 수용(expropriation)의 정의,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 그리고 투자자-정부 제소권 등이 모두 문제가 된다.

특히 투자자-정부 제소권은 초국적기업이 자신의 이윤 확보를 방해하는 정부의 법과 제도, 관행을 제3의 민간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나아가 비밀주의로 악명 높은 이 민간기구의 판결에 국가가 복종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위헌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

특히 투자자-정부 제소권에 입각한 소송은 현재 알려진 것만 42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환경에 관한 소송 12건, 부동산에 관한 소송 4건, 우편에 관한 소송 2건 등이고 소송 대상이 문화, 금융, 도박업, 담배 등 국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거의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사이의 분쟁 결과만 놓고 본다면, 멕시코 정부가 자국 지하수를 오염시킨 회사에 오히려 165억 원을 물어 주는 기이한 상황을 연출했다. 세계적 특송업체 UPS는 캐나다 우체국의 인프라(전국에 펼쳐져 있는 우체국 망), 그리고 교차보조(산골마을까지 소포가 배달되는 것은 정부의 보조금 때문이다)가 반(反)경쟁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UPS가 이긴다면 그것은 곧 미국과 FTA를 맺은 모든 나라에서 우체국은 소송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모든 망산업(network industry), 즉 전기, 철도, 수도, 우편 등의 공공서비스가 반경쟁적이라는 이유로 제소당하는, 엄청난 상황이 야기될 것이다.

산드라 오코너 미 연방 대법원 판사의 말을 빌자면,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한 나라의 사법권을 제3의 민간기구에 위임한다는 점에서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환경권, 건강권 등 사회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미국과의 FTA는 흔전만전 널려 있는 여느 나라와의 FTA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말하자면 서로 주고 받는 식의 '목가적인' 협상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서비스업, 농업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전 제조업에서 상대국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세계 최강국으로서 협상력 역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 측 협상 수석대표가 8일 브리핑 중 잠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2)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증가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 FTA만 1조7000억 달러의 거대한 미국시장을 '선점'해 대미수출이 증가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산업 부문에 직접 한미 FTA의 효과에 대해 물어본다면 이런 주장이 허황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한미 FTA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산업으로 꼽는 자동차의 경우, 미국 측 관세율은 2.5%에 불과하다. 협상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돼 미국이 5년 만에 관세를 철폐한다고 치면, 1년에 0.5%의 가격이 인하된다. 우리가 2만 달러짜리 중형차를 수출하면 1년에 10만 원 정도 가격이 인하되는 셈이다.

상상해 보라. 가격이 10만 원 정도 낮아졌다고 사려던 자동차를 일제에서 한국제로 바꾸지는 않는다.

심지어 정부는 20% 정도의 관세가 붙는 픽업트럭이나 SUV의 수출이 늘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픽업트럭도 SUV도 생산하지 않는다. 우리 시장에서 SUV로 팔리고 잇는 것은 기실 CUV이다.

오히려 도요다, 혼다 등 미국 내에 있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라인을 증설할 경우 혼다 아코드나 도요다 캠리가 미국산으로 둔갑해 한국에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소나타급 중형 자동차마저도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전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반도체의 경우, 이미 미국 측 관세가 0%인데다 현지생산을 하고 있다. 냉장고, TV 등 고가의 백색가전은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의 마킬라도라에서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류는 20% 이상의 관세가 붙어 있어 이론상으로는 수출 증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얀 포워드(Yarn Forward, 섬유제품의 원산지를 그 제품을 생산할 때 쓰인 원사를 생산한 나라로 규정)라는 미국만의 독특한 원산지 규정에 따르면, 동대문에서 생산된 옷의 90%가 중국산으로 구분된다.

천행으로 이런 원산지 규정을 뚫는다고 해도, 우리 옷은 진짜 중국산 옷과의 가격경쟁에서 터무니없이 밀릴 것이다. 무관세에 물류비용도 적으며 임금은 우리의 5분의 1에 불과한 마킬라도라의 섬유의류 기업이 중국 기업들에 밀려 줄줄이 도산하고 있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외국인직접투자, 늘어도 골치

다음으로 정부가 들고 있는 것은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증가다. 이것도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제조업 부문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는 현재의 연평균 60억 달러 정도가 한계치일 것이다.

설령 투자에 관해 외국인 기업에 유리한 각종 조항을 도입한다고 해도, 중저가 시장의 경우 멕시코 마킬라도라에 들어갈 기업이 한국에 오지는 않는다. 고급 시장을 노리는 외국인투자의 경우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중국 시장이나 일본 시장을 목표로 하는데, 이들 나라와 아직 FTA를 맺지 않은 한국에 추가로 들어올 이유는 없다.

투자에 관한 제약을 대폭 풀어주는 한미 FTA의 특성으로 인해, 정부의 주장대로, 서비스 시장에서는 미국인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이미 캐나다의 경우에서 봤고, 우리 스스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금융 부문에서 두 눈으로 봤듯이, 인수합병(M&A) 형태의 투자가 주를 이룰 것이다.

법률, 회계, 컨설팅 등 분야의 우리 기업은 미국기업에 인수합병 되고, 그 결과 서비스 시장은 양극화할 것이다. 상층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 해도, 그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이미 10년 가까이 구조조정을 겪은 금융 부문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은행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서비스업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가 어떤 경로를 거쳐 제조업 생산성까지 높일 것인지 정부는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설명을 하려면 이론적으로는 초기 산업화의 도정에 있는 나라가 아닌 성숙한 산업 단계에 있는 나라에서 '외자유치 위주 발전전략(FDI-led development strategy)'이 얼마나 유효한지 살펴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연구가 이뤄진 바 없다.
▲ '한미 FTA로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3)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중국 쇼크는 우리의 양극화를 심화시키지만, 미국과의 FTA는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중국 기업의 값싼 상품이 우리 기업을 무너뜨린다면, 미국 기업의 질 좋은 상품도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기업을 무너뜨린다고 해야 옳다.

역으로, 미국과의 경쟁으로 우리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면,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우리 기업이 값을 내리는 쪽이 아니라 질을 높이는 쪽으로 경영을 해 결국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어느 쪽 시나리오가 실현될 것인가는 이러한 외부 쇼크에 견딜만한 힘이 우리에게 있는지에 달려 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밀려 줄줄이 도산해 우리 국민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이를 바탕으로 힘을 키운 초국적 기업이 또 다른 이익을 위해 한국을 훌쩍 떠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정부는 이같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최소한의 점검조차 하지 않고 한미 FTA라는 엄청난 쇼크를 국민경제에 가하려고 한다.

FTA는 경제 전 부문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미국의 FTA는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형 경제 체제의 불평등도가 유럽형이나 동아시아형보다 더 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과 FTA를 맺은 지 12년이 지난 캐나다와 멕시코의 경우가 이를 사실로 웅변하고 있다.

한미 FTA로 미국화 될 것도 없고, 양극화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인터넷 매체와의 대화)을 듣고 있으면, 분노를 넘어 웃음이 난다. 미국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거나 혹은 마비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국가의 자존(自存)을 도박판에 걸고 유유자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오기일까.

3.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짜는 3월 7일이다. 내일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마지막 공식 협상이라는 8차 협상이 시작되고, 곧이어 양국 대통령이 협상을 타결할 전망이다. 무역구제(반덤핑)와 자동차 및 의약품 분야를 맞바꿀 것이고, 섬유와 농업 간의 '스몰 딜(small deal)'도 예상된다.

굵직굵직한 쟁점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반면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내줬다.

지금 남은 쟁점이라는 것도 미국이 쌀 시장 개방처럼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빌미로 다른 것을 더 얻어내려는 것뿐이다. 협상만 놓고 봐도 완패다.

그럼에도 한국 대표단의 표정은 지극히 밝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체결 자체가 목표'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최후의 결정은 양국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로 이뤄질 전망이다. 6월로 예정됐다는 대통령의 방미는 결국 한미 FTA 조인식이 될 것이다. 관료들은 결코 자신들이 책임질 일을 남겨 놓지 않으니 덤터기는 대통령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덤터기는 대통령이 뒤집어 쓸 수밖에"

예상컨대 정부는 '관세 인하만으로도 우리가 얻을 것은 충분히 얻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또 유보한 공공서비스 분야의 숫자를 들며, 서비스 분야를 지켰으므로 중간 수준 또는 낮은 수준의 FTA를 맺은 것이니 반대론자들이 요구했던 결과라고 호도할 것이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짐작컨대 서비스 분야에서 유보가 많은 것은 대학, 병원 등에서 미국 기업이 아직 한국 시장의 수익성을 확신하지 못해 이번 협상에서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던 데서 기인한다.

또한 한국 재정경제부가 이미 이 분야의 개방·자유화 계획을 다 세워 놓고, 자체 계획에 따라 자발적으로 시장을 개방할 것이기에 괜히 미국 측에서 압력을 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FTA가 높은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식 FTA의 특성, 즉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라든가 래칫(Rachet, 역진방지) 조항, 의약품-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잘 드러난다.

현존하는 FTA 중 가장 강력하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비교해 볼 일이다. 당시에도 미국이 멕시코의 공공서비스 시장 개방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미국은 '나프타 플러스(NAFTA+)'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결과가 나와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한미 FTA 반대운동,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강하게 밀어 붙이고 한국 정부도 목을 매다는데 과연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운동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한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한미 FTA는 원래 청와대의 계획대로 작년 연말에 타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무역촉진권한(TPA) 종료시한이 3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한미 FTA가 부드럽게 타결되기는 어렵다. 국민들의 우려와 저항이 없었다면 농림부가 '손톱만한 뼛조각'을 이유로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반송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령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 해도 2008년 총선을 앞둔 국회는 비준을 차기 국회로 넘길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전격적으로 한미 FTA를 통과시킨다 해도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한미 FTA가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할 길은 없다.

누가 대선 후보로 나오든 내놓고 한미 FTA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한미 FTA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조항의 숫자를 늘리는 경쟁에 돌입하기 십상이고, 그것이 4대 선결조건을 건드리게 되면 이번에는 미국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후 탄생할 '한미 FTA 결렬'은 한미 양국 모두에 불행이다. 보수집단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는 한미동맹은 여지없이 흔들릴 것이다.

대통령이 궁지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은 전격 타결이 아니라, 백번 양보해도 '일단 중지'여야 한다. 더 이상의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이 국민이 살 길이고 대통령 또한 궁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의약품이든, 자동차 세제든, 아니면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든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 왜 중지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며 흩어져버린 지지자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마지노선을 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 들였을 때 과연 우리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국민의 의견을 물어 한미 FTA 협상 재개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이뿐만 아니다. 한미 FTA 타결 여부에 앞서 먼저 우리 사회경제가 나아갈 길이 그려져야 한다. 좁게 얘기해서, 바람직한 산업 발전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어떤 FTA든 그 방향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역행하는지, 부작용은 어느 정도인지, 그 대책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한미 FTA가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한미 FTA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대외정책은 거꾸로 되어 있다.

한미 FTA를 막으려면,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를 막으려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 내부개혁을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선(先)내부개혁론'이다. 이제 외부쇼크 없이도 우리 스스로 우리 경제에 필요한 생산성 향상,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바깥이나 위로부터의 성장, 양극화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성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연대의 성장은 바람직할 뿐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

4. 대안은 있는가?

모든 FTA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두 가지 측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첫째는 모든 FTA는 산업구조조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것이 지역 내 역학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첫 번째가 경제적 측면이라면, 두 번째는 외교안보적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은 이미 많이 이야기가 됐으므로, 여기서는 두 번째 측면을 주로 들여다보려고 한다. 글머리에서 보았듯 한미 FTA는 미일동맹의 보완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FTA의 속성 중 하나인 최혜국대우(MFN)의 존재로 인해 한국은 이제 역내 국가들과도 한미 FTA에 버금가는 FTA를 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은 한국을 지렛대로 '경쟁적 자유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다른 나라가 한국을 뒤이어 미국과 FTA를 맺는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도 '허브와 스포크(hub and spokes) 전략'을 관철시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역내의 국가가 전부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한국은 원래 미국의 전략인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의 가치를 전파하는 사명을 달성하게 된다. 강제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 스스로 자국을 미국화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으로선 최선의 그림이다.

이제 동아시아에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꿈을 사라진다. 적어도 아시아가 독자적인 사회경제체제를 형성해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3자 정립함으로써 최대의 이익을 얻음과 동시에 세계의 안정을 도모할 길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한미 FTA는 동아시아의 자체 지역주의를 무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 FTA의 대안을 FTA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대안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는 방법이 FTA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한반도 경제론>(창비 펴냄, 2007년), <한국형 개방전략>(창비 펴냄, 2007년) 등 최근 학계에서 한미 FTA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발간한 두 책의 일부 필자들 역시 'FTA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들이 제시한 대안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중간 수준의 한미 FTA와 한중 FTA를 동시에 맺고, 일본 및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연합)과는 높은 수준의 FTA를 맺자는 것이다. 완전히 새롭게 짠 판과 전략 없이 미국과 중간 수준의 FTA를 맺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작년 여름에 판명 났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FTA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며 동시에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부르짖으면서도 이들의 시야는 '국익'의 관점,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아류 제국주의'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애초에 '계급주의적 전망'을 부정했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심지어 <한반도 경제론>의 경우, 남북한 FTA까지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으니 가히 FTA 만능론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5배 정도 차이 나는 두 '나라' 사이에 요즘 유행하는 통상의 FTA를 맺는다면 약한 나라의 사회경제체제는 '빅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 두 책은 전략 부재의 알리바이처럼 '점진적, 기능적' 방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개방과 협력'이 조화되는 모델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 EU의 경험에서 배워야

사실 FTA라는 형식으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 한다면, 역내 국가가 모두 모여 미래의 모습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를 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역내의 각종 격차를 줄이는 다자간 FTA 형태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세밀한 항목들로 나눠져 있는 FTA 형식으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지극히 어렵다. 마치 미지수에 비해 식의 개수가 부족한 연립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미국과 같은 강력한 힘이 이를 강요한다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연전에 무산된 미주자유무역지역(FTAA)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무슨 길이 있을까? EU의 경험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역내의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사업을 다자가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신뢰를 쌓고, 여기에 기초해 점진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역내 철도, 역내 에너지망, 역내 정보통신(IT)망, 친환경 인프라, 나아가 IT 표준 등을 공동으로 건설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는 특히 역내 국가 간 경제력 격차, 사회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FTA 방식은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 마련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역내 국가들이 맺은 치앙마이 협정을 맺었던 사실이나, 북한 연안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든가 등 공동의 위기나 이익이 생길 때 합의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은 예외적이다.

따라서 공공재일 수밖에 없는 네트워크 사업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그 과정에서 각 나라 간의 각종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아시아형 FTA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이 새로운 유형의 FTA는 철저히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며 동시에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내용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한미 FTA,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위협한다

물론 한미 FTA는 이와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 FTA이 내용은 한국 경제에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무산시킨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들 자신뿐 아니라 아시아의 대중을 위해서도 한미 FTA는 중지해야 한다. 현 정권은 역사에서 한국 민중의 삶을 파괴한 주범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장 서 가로막은 무지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내 인프라의 건설, 역내 미(未)개발 지구의 공동 개발 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동시에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경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유명무실하지 않고 실제로 굴러갈 다자간 체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야말로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이 체제가 성립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간단하다. 이 체제를 받아 들여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중국 또한 미국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중국은 아세안을 시작으로 한중일 동북아 3국,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러시아, 인도를 이으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를 통해 아시아 중심의 공동체를 소극적으로 견제하고 다자간 협의를 '아세안+3(한중일)+3(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로 확대하는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일본에게 이런 다자간 틀은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의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적극적인 아시아 점령 전략은 양자간 FTA가 수행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견제하는 다자간 틀을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양국의 패권을 모두 원하지 않는 나라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위로부터 러시아, 아세안, 인도가 바로 그들이다.

상대적으로 자본과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는 한국이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협력 사업은 대단히 많다. 즉 한국이 먼저 아시아의 종축을 형성하고, 강대국들과는 아시아의 인프라 망을 건설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중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형태의 FTA를 설계해야 한다. 즉, 전체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5. 이미 시작된 FTA 협상,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 FTA'라는 무모한 사고를 애초에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동북아 비서관이었던 내가 그런 전략 수립에 관여할 수는 없었지만, 역내 FTA를 우선해야 한다는 보고서 하나 제출하고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림이야 저렇게 그릴지 몰라도 설마 저런 어마어마한 모험을 실제로는 못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미국, 일본, 중국, EU와 동시에 FTA를 맺었다고 상상해 보라. 한국에 무엇이 남겠는가.)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한일 FTA처럼 한미 FTA 협상을 일단 중단시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 일본, 중국, EU, 캐나다와 동시에 FTA를 추진하는 상태가 된다.

한국이 그리 매력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들 나라는 한국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물론 미국과 먼저 FTA를 맺으면 최혜국대우(MFN)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FTA도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되므로, 미국과의 FTA는 원래 계획대로 맨 마지막으로 미뤄야 한다.

현 정부의 원래 계획, 즉 높은 수준의 한일 FTA를 맺고, 이후 중국에 압박을 가한다는 전략도 포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전략으로 공동체 형성보다는 대(對)중국 압박 전략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한중일 FTA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각국의 격차, 각국 내 지역별·계층별 격차를 줄이고, 사회문화적 협력을 증대하며 역내 개발 및 표준화를 명시하는 '아시아형 FTA'(아예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언어의 혼란을 피하는 길이겠지만 현재는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를 정립하자는 사전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미국의 압박이 거세져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절대적인 방해가 된다면, 한중일이 동시에 미국이나 EU와 협상을 한다면 현재 한미 FTA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독소조항들은 대부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부기>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첫째, 대통령이 덜컥 한미 FTA 타결을 선언한다 하더라도 3월말이나 4월초에 할 수 있는 건 가(假)서명입니다. 미국 법에 따라 미 의회가 3개월간 한미 FTA 협상 내용을 검토한 후에야 최종 서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야 체결이 되는 겁니다.

우리 국회 쪽에는 아무런 법 규정이 없지만, 어쨌든 국회가 한미 FTA 협상 내용을 제대로 검토해서 관련 쟁점들이 공론화 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할 기간이 바로 이때입니다.

둘째, 6월말이나 7월초 한미 FTA가 체결이 된 후에도 미국 정부는 의회에 'FTA 이행법'을 제출해야 합니다. 아무리 빨라도 두 달쯤 걸립니다. 미 의회의 평가보고서, 우리 국회의 검토를 종합해서 다시 한미 FTA를 문제 삼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셋째, 대체로 9월말에 이행법이 제출되면 그 때부터 비로소 미 의회의 비준동의 절차가 시작됩니다. 여기서도 쌀 시장 전면개방 등 아직 압력을 가할 부분이 남았다는 미국 측 불만사항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 때 또다시 FTA를 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기 까지는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았다는 점을 주위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마치 '이제 다 끝났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안 됩니다.

한미 FTA가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싸움을 잘 하면 차기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이 희망을 가져야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4월 이후는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이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 국회가 금년 내에 한미 FTA에 대한 비준 동의를 할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잔류세력, 특히 수도권 의원들이 날치기로 통과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때부터는 '한미 FTA 폐기' 싸움을 해야 합니다. 폐기는 간단합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절차를 채택했다면, 6개월 전에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미국 측에 통고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 체제가 한미 FTA에 익숙해지면,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한미 FTA 폐기는 비현실적 구호가 됩니다. 한미 FTA 반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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