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이라 천막도 못치고 길바닥에서 한미FTA반대 서명용지가 담긴 상자더미를 벽 삼아 달랑 매트리스 한 장을 깔고 앉은 문 대표는 "내가 대표 될 때는 '그래도 당 대표인데 이제 단식농성 할 일 있겠나' 생각했었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IMF하고 양극화도 상관 없겠네?"
'노무현 변호사'가 부산, 울산의 파업현장을 누비며 지원연설을 하던 그 시절 적지 않은 친분을 쌓은 문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하고 양극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걸 듣고 기가 찼다"며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문 대표는 "그건 IMF(97년 외환위기)하고 양극화가 무슨 상관이냐는 것하고 같은 말이다"며 "언제 IMF가 양극화 하라고 시켰냐? 사람들을 길바닥으로 내몰라고 명령을 했냐?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미FTA의 영향으로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모른 척 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윽박지르는 모습이 바로 노 대통령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노 대통령의 어제 제안이 무슨 뜻인거 같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 후 "개헌 정국으로 FTA 문제가 묻힐까 걱정했는데 개헌 논의가 싸늘한 것이 어떤 면에선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표는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잘 풀리는 것은 그대로 환영할 만한 일인데 혹여 노 대통령이 이 문제로 한미FTA 타결을 물타기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과 면담도 추진했었다"
한미FTA 저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민노당이지만 당 대표가 직접 단식농성에 나선 것은 오히려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아무래도 이슈에 대한 피로도가 높긴 높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지난 해 말 6차 협상을 앞두고는 당원 총궐기와 의원단 단식이 있었고 7차 협상 당시에는 노 대통령과 면담을 추진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봤다는 것.
문 대표는 "민주노총 총파업이나 농번기 전의 농민 총궐기 등으로 4월 초로 예상되는 타결 시점 이전에 발화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모두 '다 써먹은 카드'다. 게다가 '총파업 남발이 큰 패착이었다'는 자체 평가를 갖고 있는 민주노총이 위력 있는 파업을 조직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결국 국회 비준 저지 투쟁 등 타결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문 대표는 "그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은 협상 중단 요구에 전력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이 문 대표의 주장이다. 문 대표는 "그건(타결 이후)는 그 때 가서 또 따지겠지만 지금은 협상타결을 막는 것에 진력해야 한다"며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개별 쟁점에 매달릴 때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표의 핏대가 무색하게 이날 노 대통령은 한덕수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총리로 지명하며 협상 체결 의지를 과시했다.
이에 문 대표는 "우리는 한덕수 씨의 총리임명에 절대 반대"라며 "총리 인준안을 부결시킬 것이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FTA의 허구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은 어디 내놓아도 안 빠지지"
당 대표와 인터뷰에서 '정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일. 문 대표는 "우리 대선 후보 경선도 볼 만할 것"이라며 "우리 당세가 약해서 그렇지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 어디 내놔도 빠지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냐"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민노당 당내 경선을 보면 내부 정파간 경쟁은 시끄러웠지만 밖에서 볼 땐 쟁점도 없고 분위기도 별로 뜨지 않고 한마디로 말해 재미가 없었다'고 지적하자 문 대표는 "그건 사실"이라면서도 "이번엔 다를 거다. 이전엔 식은 경선이었다면 이번엔 좀 과열될 것이고 또 내가 과열 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표는 "세 후보 간 만만치 않은 몇 가지 쟁점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사람들이 '민노당에 권영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노회찬도 있고 심상정도 있네' 하면서 흥미를 느끼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전통적으로 민노당의 발목을 잡았던 비판적 지지론과는 좀 궤를 달리하지만 최근 여권의 지리멸렬과 맞물려 당 바깥에서는 민노당을 변수로 한 갖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주로 구 열린우리당 좌파, 우리당과 민노당 가운데 자리에 있는 세력, 민노당이 '진보 단일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진성당원제도의 원조임을 자랑하고 있는 민노당도 대선후보 선출권을 확대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도 있는 만큼 어떤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순 없다"면서도 "하지만 외부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다고 우리 일정을 늦추거나 후보 선출을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진보 대통합이 혹여 있다 하더라도 민노당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민노당도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을 일축한 것.
한편 노 대통령이 불을 붙인 '진보논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문 대표는 "'노무현발 진보논쟁'에는 별 관심이 없다"며 "현 시기에서 '진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한미FTA협상에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문 대표의 단식농성은 '무기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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