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무현 정권은 임기가 끝나지 않아도 퇴진되어야 할 권력임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인가? 한미 FTA에 대한 일단중지를 선언하지 않는 한, 노무현 정권 자체의 일단중지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노무현 정권이 끝나도 그 이후 계속해서 무한히 고단하고 힘겨워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의 기본틀은 한마디로 말해, "한국시장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 장악을 법적으로 승인하는 협약"이다. 시장에 대한 권력관계를 이미 그렇게 결정하는 것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전제 아래 한국과 미국 각자의 사정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작업일 뿐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우리의 권리는 한국시장에 대한 미국의 권리와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기 짝이 없다.
한미 FTA가 지금까지 접근이 그나마 제한되어 있는 영역까지 미국 자본의 압도적인 지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절차라는 것은 그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확인된다. 그건 노무현 정권이 이른바 "유연한 진보"를 앞세워 주장하는 개방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에 좌절감을 더더욱 깊게 할 종속적 통합에 불과하다.
한미 FTA, 개방 아닌 종속적 통합
반드시 방어해야 할 것도 스스로 무장해제함으로써 미국의 거대자본이 가하는 약탈적 공격 앞에서 무력(無力)하게 만들고 있으며, 지켜야 할 것조차 지키지 않아 매판정권의 속성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치하던 일부 언론으로부터 한미 FTA 진두지휘를 한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에는 격찬과 함께 응원까지 받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에 대한 안보전략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어느 누구도 개방에 반대하는 폐쇄적 자세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주권적 영역조차 내어주면서 이를 개방으로 호도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개방은 매판과 동일어인가? 주권적 책임을 포기한 정권은 더 이상 정권 유지의 권한을 가질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개방, 그 종속적 통합의 진상은 무엇인가? 공적 영역은 거대 자본의 사적 소유대상이 되거나 부담을 전가 받게 되며, 이익은 모두 이들 미국의 거대자본 그리고 이들의 이해와 결합된 국내 자본이 거두어간다. 미국 시장이라는 무대를 우리가 얻게 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미국의 자본과 권력이 우리 시장에서 군림하게 되는 현실은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다.
그와 함께,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자생적 역량은 이로써 더욱 고갈되고 시들어가고 말아 만에 하나 무대가 커진다 한들 결국 별 볼일 없게 되는 것은 의도적으로인지 외면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다는 주장 뒤에는 수입과 수출의 격차와 그 내용에 대한 점검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삭조차 남기지 않고 다 거두어가려는 미국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은 노동가격이나 시장 환경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고 어떤 것은 그 지역에 그대로 남아 발전하는 방식도 한미 FTA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삭조차 남기지 않고 죄다 가져가버리는 방식이다. 소소한 먹거리에서부터 금융시장과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미국은 자신들의 압도적인 주도권 관철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없어도 이미 기본적인 경쟁력 자체에서 밀리고 있는 형편에, 장기판에서 상대에게 차와 포를 더 얹어주는 식의 협상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우리 국민들의 생존과 미래는 그 장기판 위에서 말이 되어 오늘도 먹히고 있다. 협상단과 노무현 정권은 판이 끝나면 개평 몇 푼 얻어 손 털고 일어날 태세이다. 그 다음은 나 몰라라, 이다.
한미 FTA 반대진영에서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는 이 나라의 정치경제적 질서를 미국의 식민지적 상태로 확고하게 묶어두는 구조조정이 된다. 세세한 품목에 들어가서 논하지 않더라도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 수입을 강제화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는 한미 FTA가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안중에도 없는 것을 분명하게 본다.
하물며 그렇거늘 우리가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겪게 될 사회적 양극화와 민족경제건설의 기초붕괴는 한미 FTA에서 일말의 관심조차 되지 않을 것은 뻔하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마저 경찰의 곤봉으로 다스리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선도하고 있다. 그간 힘들게 구축해온 제도적 민주주의마저도 이로써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사회 구성원의 정치경제적 권리가 보장되고, 모두의 삶을 꾸려나가는 시장은 사적 이익에 못지않게 공적 이익에 부합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에서 확고해진다.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방식을 용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금권정치라고 부르며, 그것은 소수의 강자들에게 봉사하는 권력질서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 만큼 복지에 자산을 투입하는 정권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독의 밑바닥은 깨면서 거기에 복지라는 물을 부어본 들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대안을 내라고 한다. 대안이 왜 없나? 백해무익인 한미 FTA 협상부터 중단하는 것이 대안이다. 한미 FTA가 이루어지면 아무리 좋은 대안들이라도 그 앞에서 금새 무력해지고 마는 이 가공할 괴물을 먼저 처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안은 대안으로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국민경제에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내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정규직화를 도모하며 각 현장의 절절한 요구를 담아내고 반영하는 정치적 통로를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노력 하나 하나가 대안이다. 국제적으로는 행여 우리의 경제가 불리한 위치에 있지 않도록 법적, 외교적, 제도적 점검과 문제제기, 그리고 끊임없는 협상을 하는 것이 타개책이다. 이런 모든 일에 대해 국민적 지혜를 규합시켜나가는 지도력의 존재 자체가 바로 대안이다.
대안이 없다고?
이 풍부한 대안의 가능성을 대안으로서의 가치로 인식하지 못한 채, 무지와 오만으로 주권적 결정을 혜안의 결단력으로 착각하는 한 이 나라 민중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갈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진정 결단해야 한다. 한미 FTA는 여기서 멈추어야한다. 그러면 우리는 도리어 그간의 협상과정에서 협상단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배운 바가 적지 않아 크게 소용이 되는 체험을 한 셈이다. 아니면,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으로 우리 모두는 비극의 수렁이 빠져들게 된다.
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파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퇴진 운동과 결과가 바로 우리의 미래적 대안이 될 것이다. 무엇이 그릇된 것이며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를 우리 모두는 이 운동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제 임기 말이라 더 이상 현실적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권한은 노무현 정권에게 있다. 한미 FTA와 관련해서 이 나라 민중들의 삶을 벼랑으로 몰아놓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의 관철에 몰두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태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미래와 직결된다.
노무현 정권 비판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비판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진로에 대한 명확한 방향설정을 하기 어려울 것이며 대안에 대한 통합적 결속을 이루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가를 규명하는 노력 없이 진보는 없다. 과거사 규명 못지않게 현재 진행형의 실체 규명도 중대하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법적 보장이 그 중심에 있다. 그 권리가 지금 파괴당하고 있다. 그리고 서민을 위하며 강대국의 요구에 할 말을 하겠다던 현 정권은 어이없게도 그 파괴의 주역이 되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을 향해 곤봉을 내리치는 권력은 수명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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