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은 무엇이 급했는지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 18시간 만에 피고인 8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단행했다. 세월이 흘러 2007년 1월 23일. 법원은 재심을 통해 이들 8명의 사형수에 대해 면소 및 무죄를 선고했다. 32년 만에 비로소 사법적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그날 창졸 간에 남편을 떠나 보낸 젊은 부인들은 어느덧 파파 할머니가 된 뒤였다.
재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혐의였던 긴급조치 위반은 이미 법이 실효돼 형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면소 판결을,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과 내란예비음모 혐의 등에 대해서는 각각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과거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인색했던 점, 사법부가 '재심' 이외에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재심을 요구하는 공안사건 사법 피해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판결은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 군사독재시절 판결에 '재심 청구' 활발해질 듯
1960~80년대의 군사독재시절 사건 중 재심 청구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3년 '위장귀순' 혐의(간첩죄)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함주명 씨는 1998년 특사로 풀려난 뒤 재심을 신청했고,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는 처음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함 씨는 재심 재판을 통해 2005년 7월 무죄가 확정됐다.
이어 '사법살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비슷한 사건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사형 선고를 면한 생존자 20여 명과 이와 연루된 것으로 취급된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100여 명의 재심 신청이 이미 상당 수준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수사와 재판에 중앙정보부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고,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서도 "국가를 전복하거나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유신을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활동한 점이 인정된다"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이들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 전망은 밝다.
이밖에 1986년 간첩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강희철 씨와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됐던 '아람회' 사건 관계자들은 이미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져 재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간첩 혐의로 1984년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이장형 씨 등이 재심 개시 여부를 가리는 재판을 진행 중이다.
또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송기인)에서 "사형 선고가 잘못됐다"고 밝힌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 및 80년대의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 피고인들이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이다.
진실화해위의 자료에 따르면 인권침해 관련 법원확정판결 사건과 관련된 신청 건수만 11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심청구 사건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 쉽지 않은 재심 청구·결정의 길
이렇게 수백 건의 재심 청구 사건이 대기 중이지만, 재심이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길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2002년 의문사위에서 고문조작 사실을 발표한 뒤에야 비로소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고, 재심 청구 뒤에도 재심 결정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재심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사실 재심 청구 재판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재심이 결정된 데에는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며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강조하고, 국정원 진실위가 추가로 고문조작 사실을 인정한 것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만큼 법원은 재심 사유를 인정하는 데에 여전히 인색하다.
또 재심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위법한 상황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야 하는데, 이미 20~30년 전의 사건들이기 때문에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함주명 씨의 경우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가 자백을 했기 때문에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무죄 판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담당한 이유정 변호사는 "의문사위에서는 '고문을 했다'고 인정하던 수사관들도 법정에 서면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을 회피하기 일쑤"라며 재심 사건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에 많은 재심 청구인이나 재심 청구 준비 중인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국정원 진실위나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 개인이 조사할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들 '위원회'의 힘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위원회'의 인력과 구조, 활동 기간의 한계에 의해 과거의 모든 진실이 밝혀지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은 반드시 뒤따라야
국가의 잘못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사법적 명예회복'에 이어 필요한 것이 '경제적 손해배상'이다. 국가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물론, 온갖 고문과 감시와 감금을 당했던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의 결백함이 입증된다면 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한 배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 대목은 다소 희망적이다. 과거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법원의 태도에 다소나마 변화의 기미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 최종길 교수 사건과 관련해 2006년 2월 서울고법은 보통 10년인 국가의 손해배상 소멸 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는 최 교수의 유족들에게 18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11월에는 함주명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이 "국가는 14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두 재판부 모두 "국가인 피고가 소멸시효를 들어 항변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함 씨의 경우 소멸시효 개시 시점을 재심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계산했다.
따라서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8명의 사형수 유족들은 이미 총 34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국가를 상대로 제기했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잘못된 판결, 개인의 삶 송두리째 바꿀 수도…분명히 깨달아야"
그렇게 재심을 하고 보상을 한다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사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32년이 지나 다시 무죄 판결을 내린다 해도, 수십 억 원의 배상을 한다 해도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평생 겪은 고통은 쉽사리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변호인단 중 한 명이었던 이유정 변호사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판결로 유족들께선 기쁘기도 하지만 착잡할 것"이라며 "잘못이 없는데 돌아가셨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고 돌아가신 분들이나 유족들의 삶이 보상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이 개인적인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법 불신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유신시절의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 합치 여부를 묻는 것도 과거사 정리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과제 중의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이번 판결에서는 면소 결정을 내려, 긴급조치의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긴급조치의 합헌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긴급조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부족했던 것이 아쉽다"며 "헌법소원을 통해서라도 긴급조치의 반헌법성을 가려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 대표 변호인이자 또 다른 재심 사건을 준비 중인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해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이나 헌법소원을 하지 않았다"며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만 처벌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법률적으로 묻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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