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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살려두기만 했더라면…"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 서대문 사형장 참배

"그동안 당한 고통은… 말로는 다 못합니다."
"그때 살려두기만 했더라면… 오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재심한다는 결정이 법원에서 내려진 27일 유족들은 지난 30년 세월의 고통을 되새김질하며 오열했다.

인혁당 사건 재심 청구 사건 판결을 보기 위해 각지에서 서울로 온 유족들은 법원의 재심 판결 직후 천주교인권위원회 관계자들과 함께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을 찾았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은 사형이 확정된 지 불과 20시간 만에 김용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여정남 등 8명의 관계자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준비한 헌화 등 간략한 참배행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제는 '역사유적지'가 된 사형장 앞에서 유족들은 30년 동안 참아 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1975년 '간첩'의 이름표를 달고 죽어야 했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 그들이 사형당한 후 사법부가 재심 판결을 하기까지 꼬박 30년이 걸렸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지만, 남겨진 이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30년 전 남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고 하재완 씨의 부인 이영교(71) 씨는 서대문 형무소 입구에서부터 회한이 밀려오는 듯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냥 지금 여기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입니다"라며 운을 뗀 이영교 씨는 "그때 (감옥에 가둬 두더라도) 살려두기만 했더라면 지금 만날 수 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억울한 거야 말로 표현 못 합니다. 우리의 한을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고 도예종 씨의 부인 신동숙(76) 씨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냥 우리 민족의 통일을 원하던 그 분들을 한 사람도 아니고 8명씩이나… 너무 가혹한 일 아닙니까."

억울한 마음이 어디 그들뿐일까. 고 송상진 씨의 부인 김진생(77) 씨도 지난 세월 감수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힌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당한 고생을 어떻게 말로 합니까. 이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가족과 친지들도 우리를 외면했습니다. 공무원들은 우리 집에 왔다 가면 자기 신상에 해가 될까 싶어 오지도 않았어요."

인혁당 사건뿐 아니라 과거 정권에 의해 간첩 혐의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가까웠던 사람들의 외면과 따가운 눈총에 시달려야 했다. 고 송상진 씨의 아들과 친구 사이인 변대근 씨는 친구의 고통을 직접 지켜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변 씨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자라야 했다. 심지어 집 담벼락에도 누군가가 '빨갱이네 집'이라는 낙서를 써놓기도 했다"며 "그가 입은 상처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라며 한탄했다.

***"다시는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누군가가 희생되는 일 없어야"**

30년만에 사법부는 재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우리 곁에 없다. 30년이 지난 오늘,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에 의한 조작임이 드러났고 사법부가 재심도 결정했지만,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다. 떠난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도 '진실'이 밝혀지는 것만을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것.

고 여정남 씨의 조카 여성화(46) 씨는 "역사는 강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역사가 진실의 불꽃으로 쓰여진다고 믿는다"고 재심 결정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김진생 씨도 "3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반성한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여성화 씨는 "앞으로 절대로 어떤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가 사죄해야 한다"**

사형 확정 후 불과 20여 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지난 7일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유족들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화 씨는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박근혜 씨는 유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대근 씨도 "박근혜는 당시 영부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역할 하면서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7일 국정원 진실위의 발표에 대해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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