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법원이 27일 재심 결정을 내림에 따라 검찰이 항고하지 않는 한 이르면 내년 2월께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이번 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찰이 법원의 재심 결정에 사흘 이내에 이의를 제기(즉시항고)하면 재심청구 사건 자체가 2심 법정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야 한다.
***검찰의 항고 가능성은 낮아**
하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정원 진실위 등이 이미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 낸 데다 이번에 법원에서 '고문의 의한 자백'의 가능성을 인정한 상태여서 검찰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시 사건 담당 주체가 검찰이었다기보다는 유신체제 하에서의 군법회의였기 때문에 검찰이 '항고'라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검찰이 항고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새로운 재판부에 의해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재판의 주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시는 긴급조치에 의한 군법회의가 1, 2심 재판의 주체였다. 하지만 긴급조치가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의 법원이 재판의 주체가 되고, 사건 발생장소 중 하나인 종로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이 재판을 맡게 될 전망이다. 재판부가 배정되면 2월께 첫 심리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이 시작되면 주된 쟁점은 당시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다. 이번에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한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하재완, 우홍선, 여정남, 이수병 등 8명의 사형수들이 피고가 되고 검찰이 원고가 된다.
재판 전망은 '무죄'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피고인측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부가 언급한 재심 결정의 이유대로 당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판결의 증거는 진술과 자백이 전부인데, 법원 스스로가 이를 모두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데에다 30년이 넘은 사건에 대해 검찰이 '증언과 진술' 외의 증거자료를 보완해 다시 유죄판결을 받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심 판결은 '무죄'로 날 가능성 높아**
법원은 이날 재심 결정을 내리며 "중앙정보부 수사관과 경찰관이 수사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해 독직폭행을 가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인들의 자백 외에는 특별히 중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자백의 내용과 시기 등이 대체로 일치하며, 피고인들이 진통제, 항생제 등의 의약품을 처방받은 시기가 일치한 점 등을 볼 때 가혹행위 외에 자백할만한 다른 사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당시 수사기관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게다가 의문사위 등의 조사를 받은 당시 일부 수사관이 자신에게 불리한 줄 알면서도 당시 가혹행위에 대해 진술한 바 있다. 또한 당시 교도관, 함께 체포된 피고인들이 가혹행위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설 경우 재판은 길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최고 20년의 징역형을 받은 문익환 목사 등 18명은 '5.18 특별법'이 제정되자 1999년 12월 재심 청구를 했고, 2001년 12월 재심 결정이 내려진 뒤 2003년 1월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사형 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이라는 이유로 재심 신청을 하지 않다가 대통령직 퇴임 후인 2003년 12월 재심을 청구해 2004년 1월 역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5.18 특별법'이라는 확실한 무죄 판단의 근거가 있었지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증거만 갖고 다시 심리하는 재판이어서 재판이 예상 외로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형태 변호사 "긴급조치가 합헌인지 법원의 판단 구할 것"**
또한 당시 수사를 맡은 중앙정보부 및 경찰 수사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도 당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를 인정했지만, 30여 년 전의 사건인데다 공소시효가 완료됐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일반적 견해다.
한편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재심을 통해 당시 긴급조치가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지 법원의 판단을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긴급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 긴급조치 위반에 의해 처벌받은 대부분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재심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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