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된 1975년 4월8일. 8명이 대법원의 확정판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집행을 당했다. 이렇게 망자와 그 유가족들에게는 회복할 길 없는 회한을, 한국 사법 당국에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던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20일 열린다.
서슬 퍼렇던 유신시절에 제대로된 재판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가 30여 년만에 원혼으로 다시 법정에 서는 이들이 사법적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문 의한 자백은 증거 안돼"…검찰 "진상규명에 노력할 뿐…"**
이번 재심은 큰 공방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시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됐던 피의자 신문조서 등이 대부분 고문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났고, 검찰로서도 30년 전의 사건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 아래에서의 강력한 '사법부 과거사 청산' 노력도 이번 '재심 결정'과 마찬가지로 '재심 판단'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재심 전망에 있어서 우선적인 관심은 검찰의 태도다. 불법적인 고문에 의한 자백 등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이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는 당시 피고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 대부분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결론내렸고, 재심 여부에 대한 심리를 맡았던 재판부도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함으로써 고문 사실을 인정했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재심 재판에서 다시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30년이 지난 사건이고, 핵심적 피고인 8명이 이미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다시 조사할 방법도 없다.
또한 검찰이 아닌 유신시절 초법적으로 설치된 '비상군법회의'에 의해 수사 및 기소가 이뤄진 사건에 대해 검찰이 공소유지를 위해 전력을 다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이번 사건을 맡게 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투명하게 이번 사건에 임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뿐, 유·무죄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대부분 무죄·면소 판결 예상…'국보법 위반' 혐의만 쟁점 될 듯**
이번 재심에서 재판부가 내릴 수 있는 판결은 크게 유·무죄를 비롯해 면소(免訴) 판결이 있다. 당시 8명의 피고인들은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중 긴급조치와 반공법은 폐지됐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폐지된 법 조항 사건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면소 판결이 가능하게(326조) 규정하고 있다. '판결할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유신헌법과 함께 긴급조치가 사라졌음을 감안할 때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면소 판결 가능성이 높다. '내란예비음모'에 대해서도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판결이 예상된다.
다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같은 혐의 사실에 대해 동시에 적용된 경우가 많아 반공법 폐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보안법 상의 찬양·고무(4조), 회합·통신(5조) 등의 혐의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객관적 증거'를 따져 유·무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국보법 상의 '찬양·고무' 혐의 적용 범위 등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사이의 법리적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찬양·고무' 조항 등 국보법에 대한 개폐 논란이 진행중이고, 여전히 이 조항에 의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 드러나는 '국가의 불법행위'는 어떻게 처리될까?**
한편 검찰이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관심사다.
검찰은 진상규명을 위해 당시 고문 관련자 등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인 데에다 관련자들의 수사협조 여부도 불투명해 이번 사건 외의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기소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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