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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승차권 연장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기자의 눈] 고향 갔다가 KTX 타고 귀경하며

7일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를 탔다. 추석 연휴 막바지라 정상적인 표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준비성 있게 일찌감치 예매를 했더라면 귀경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겠지만 차일피일 하다가 귀경전쟁을 치르게 됐다. 부산역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좌석표는 이미 동났다. 취소된 예매표가 혹시 나올까 하며 무인판매대에서 수차례 검색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가능성이 희박한 서울 직행 기차표 구매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 대신 부산발 동대구행 표를 찾아봤다. 다행히 적지 않은 표들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나 자가용,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같이 기차를 이용하면서도 표를 미리 구하지 못한 경우에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이것이다. 서울행 기차의 중간 정착지까지 표를 구한 뒤 기차 안에서 표를 연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록 앉아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정해진 시각에 안전하게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할 있다는 잇점이 있다.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의 경로는 '부산-구포-동대구-대전-천안·아산-서울'이거나 '부산-동대구-대전-서울'의 둘 중 하나다. 나는 구포역과 천안·아산역을 지나는 열차를 선택했다.

결국 동대구까지만 표를 끊고 부랴부랴 기차를 탔다. 객차 안에는 듬성듬성 빈 자리가 보였다. 부산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동대구까지 가기 위해 비싼 요금(1만100원)을 지불하며 KTX 열차를 타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자리에 앉아서 표를 연장하기 위해 승무원이 오길 기다렸다. 서울로 바로 가는 기차표를 들고 있었더라면 습관대로 벌써 눈을 감고 잠을 청했을 테지만.

열차팀장 "빨간 조끼 입은 승무원에게 말씀 드리세요"

얼마 뒤 열차팀장으로 보이는 남성 승무원이 지나갔다. 근속연수가 꽤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승무원은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전후사정을 다 안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으며 "빨간 조끼를 입은 승무원에게 말씀 드리세요"라고 친절히 말하고 지나갔다.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면 될 일이지 왜 일을 다른 승무원에게 떠넘기나'하는 생각에 불편한 감정도 불쑥 들었지만, 따지기도 귀찮고 그 남성 승무원의 태도가 워낙 친절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다만, 예전에는 '어떤 승무원이든지 다 표 연장 업무를 처리해줬는데…' 하는 생각만 희미하게 했을 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승무원이 말한 '빨간 조끼를 입은 승무원'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빨간 조끼 입은 승무원'이 오는지 눈이 빠져라 객차 입구를 쳐다보길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정말 빨간 조끼 입은 승무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깔끔하게 동여 맨 여승무원이었다.

재빨리 여승무원을 붙잡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여승무원은 "알았다"며 내가 건네준 두 장(아내가 동행했다)의 표를 들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다. 바로 표 연장을 해주지 않고 '알았다'며 그 표를 들고 사라진 연유가 궁금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 해줄까 싶어 표 연장에 대한 걱정을 놓았다.

표 받고 사라진 여승무원, 도대체 어디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원스런 푸른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곧 동대구역에 도착할 테니 내릴 승객은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벌써 동대구라니…'하고 KTX 열차의 빠른 속도에 감탄하면서도 '어, 승무원에게 건네준 내 표는?'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알았다"면서 내 표 2장을 들고 간 여승무원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차는 금세 동대구역에 다다랐다. 객차 안의 승객들은 내리고, 새로운 승객들이 올라왔다. '여승무원이 내 표를 갖고 간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승무원에게 표를 준 나로서는 자칫 부정승차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부정승차로 적발될 경우 요금의 30배가 넘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만 머리를 맴돌았다.

동대구역을 출발한지 20분 가량 흘렀을까. 표를 건네받았던 여승무원이 모습을 나타났다. 조금 전보다 지친 표정이었다. 불러서 '도대체 어디 갔었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 여승무원은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긴 설명이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나처럼 표 연장 발급을 요구한 승객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늦어졌다는 게 여승무원의 해명이었다. 듣고보니 열차에 탄 승객 중 나처럼 표 연장발급을 요청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은 내 표 두 장을 돌려주며 각각 2만99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추가요금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마침 신용카드를 체크하는 기계가 고장이라면서 승무원은 표에다 모종의 표식을 해줬다. 서울역에 도착해 매표 창구에서 추가요금을 지불하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입석이었지만….

고객의 불편함을 볼모로

최근 노동부는 KTX 여승무원 업무에 대한 불법파견 여부 조사를 마친 뒤 "100% 합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노동계는 철도유통 소속인 KTX 여승무원과 철도공사 직원인 열차팀장 사이에서 발견되는 업무 상관성을 근거로 철도공사가 불법파견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노동부는 "불법파견은 아니다"라며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 KTX 여승무원 사태의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100% 합법은 아니지만…"이라고 애매모호한 토를 달아 논란의 여지는 남겼지만 말이다.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의 업무에 대한 불법파견 의혹이 일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자체 업무평가 등을 통해 불법파견 의혹의 소지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바꿔말하면 소속이 다른 열차팀장과 여승무원 간의 업무분장을 분명히 해 업무가 겹치는 사례를 줄임으로써 여승무원이 (열차팀장의 지휘나 명령없이) 독립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도급받은 업체의 직원을 도급을 준 업체의 직원이 지휘를 하면 법 위반 행위가 된다.

이런 노동부의 판단과 철도공사의 방침과 별개로, 기자가 이번에 귀경전쟁을 치르면서 'KTX 여승무원 문제'에 관해 느낀 바가 있다. 그것은 철도공사가 고객의 편리함보다는 다른 경영상의 이유로 KTX 승무 업무를 철도유통(현재는 KTX 관광레저)에 넘겨준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의 업무를 기계적으로 나누다 보니 표 연장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업무를 여승무원이 전담하게 됐고, 이 때문에 표 연장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갑절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였던 철도공사로서는 열차팀장과 여승무원 간의 명확한 업무분장이 절실했겠지만, 승객의 입장에서는 표 연장 업무를 누가 하든 간에 신속히 처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열차에서 내리면서 'KTX 여승무원을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한다면 고객의 불편함도 줄이고, 업무처리도 보다 효율적일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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