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람재단에 대한 관할청인 종로구청의 김충용 구청장은 조속히 성람재단 비리 이사진을 해임하라"고 주장하는 공동투쟁단의 요구에 대해 종로구청은 "우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며 농성단의 불법시위 중단이 우선이라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공동투쟁단은 왜 '불법적인 행동'을 하면서까지 성람재단의 이사진 해임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성람재단의 비리 문제를 처음부터 제기해 온 성람재단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익명을 요구한 노조원들의 인터뷰를 종합해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월급 올려달라고 노조 만든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몰랐다. 장애인들을 돌보기 위해 일하러 온 우리를 밭에 내보내 농작물을 재배하게 하는 이유를. 다 장애인들을 위한 일이라며 시켰다. 재배한 채소로 장애인들 밥 지어 먹이는 거라고. 그런데 사회복지 시설에는 정부에서 식사보조금이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수련회나 생일잔치 같은 행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지원금이 나오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들이 행사 때마다 조금씩 돈을 모아 행사도 치르고 음식도 직원들이 다 만들었다.
종로구청의 감사도 엉망이었다. 옛날부터 구청에서 감사 나온다고 하면 청소 하나는 무지하게 시켰다. 그런데 막상 감사를 하러 나온 직원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장애인이 수용된 방은 문도 열어보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 멀리 떨어진 모텔 같은 곳으로 관련자료를 가지고 가서 감사를 한다고 하니, 우리가 재단과 구청의 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한 번만 장애인들이 있는 방을 둘러보고 상태를 살펴봐도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금세 알 수 있는데.
하도 답답하니까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2003년 2월이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우리가 요구한 것은 월급 인상이 아니었다. '장애인을 보살피는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왜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느냐', '정부지원금 받아서 지출한 내역을 사내 게시판에 공개하고 지원금을 투명하게 운영하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재단은 노조를 와해시키는 데만 급급했다. 노조활동하다가 해고된 사람도 19명에 이르고 조합원 숫자도 처음보다 3분의 2가 줄었다. '노조활동을 계속하면 구조조정해서 해고시킨다', '노조 요구대로 하다가 시설이 폐쇄되기라도 하면 다 직장 잃는다'라면서 조합원들을 못살게 굴었다.
"종로구청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2004년에는 노조가 조태영 전 이사장을 과실치사, 사기, 횡령, 사회복지사업법 위반 등의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때 비리사실 알리기 위해 도보순례도 하고 이것저것 노력했다. 그런데 검찰은 혐의가 없다면서 불기소 처리 하더라. 종로구청은 조태영 전 이사장 부인이 허위근무로 횡령했다며 1억4000여만 원을 환수 조치한 것이 전부였다.
올해 6월 경찰이 조태영 전 이사장의 27억 원 횡령 혐의를 포착한 뒤에도 종로구청은 변함이 없다. 경찰이 조 전 이사장이 횡령한 돈으로 아들을 유학 보냈다는 사실을 조사과정에서 밝혔다. 그 아들이 이사로 취임했는데도 종로구청은 '이사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나.
종로구청이 '법원 판결 나오면 그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3년 전부터 똑같다. 검찰이 지난 7월 28일 조 전 이사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는데도 구청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노조는 조 전 이사장의 횡령 혐의가 밝혀진 6월부터 매주 수요일에 종로구청을 항의방문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래도 구청장은 만나주지도 않는다. 6월 28일에 20분 간 면담한 것이 전부다. 그때도 '난 바빠서 잘 모르겠다' 등의 말뿐이었다.
"시설비리는 노조나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요구는 하나다. 현 이사진을 전원 해임하고 민주적으로 이사진을 다시 구성하라는 것이다. 현 이사진은 비리가 밝혀진 조 전 이사장이 선임한 이사진이다. 이사장의 비리를 지켜보기만 한 그들에게 왜 책임이 없나. 또 개인 소유물이 아닌 복지재단에서 이사장이 사퇴한 뒤에 아들이 이사가 되고 친구가 이사장이 되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세습이 아니고 뭔가.
우리가 이렇게 외쳐도 '비리사실이 없는 이사진을 해임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구청 담당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니 우리가 구청장을 만나자는 것이다. 서울시는 2일,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8일에 각각 종로구청에 법인 임원의 해임 권한이 있다고 밝혔고, 이제 구청장은 해임 결정을 내려야 한다. 구청장을 만나서 이사진 해임을 요구하겠다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공무원, 경찰들과 치고박고 싸워야 하는가. 아무리 요구해도 모른 척 하니까 농성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에만 사회복지시설 문제에 관심을 갖더라. 하도 많이 시설비리 문제가 터지니까 이제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농성이 계속되니까 구청 앞에서 불법시위 한다고 항의도 거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러는지 조금만 생각해 달라. 장애인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서울까지 와서 이렇게 항의하는 이유를 왜 생각 안 해 주나.
지역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의 비리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조나 장애인들만의 문제처럼 인식되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온 국민이 함께 싸우면 해결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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