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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 없는 중증장애인, 이렇습니다"

중증장애인들, 한강대교 위에서 기어서 행진

27일 오후 2시 햇볕이 내리쬐는 한강대교 위에서 60여 명의 중증장애인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차량을 막고 서로를 쇠사슬로 묶은 30명 가량의 장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30명 가량의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에서 내렸다. 노들섬을 오십여 미터 앞둔 지점. 이곳에서부터 장애인들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억 원의 돈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라는 노들섬까지 기어가기 시작했다.

"활동보조인 없는 중증장애인의 삶은 한강대교를 기는 것만큼 비인간적"

대다수 장애인들에게 개방된 공간을 휠체어나 목발 없이 맨몸으로 다니는 것은 결코 익숙치 않은 경험이었다.

장애여성 단체 '공감'의 박영희 대표는 "이렇게 아스팔트 위에 엎드리고 보니 새삼 옛날 생각이 난다"며 "예전에는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방 한구석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카메라가 찍고 있는 가운데 기어갈 것"이라며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활동보조인이 없이는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중증장애인들이 한강대교 위에서 노들섬까지 기어가기 위해 휠체어에서 내리고 있다. ⓒ 프레시안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박현 사무국장은 "서울시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돈이면 당장이라도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데, 단지 의지가 없는 것일뿐"이라며 "서울시와 정부, 사회는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없이 산다는 것은 이렇게 한강대교를 기어가는 것만큼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기어가는 순간 체면 따위는 포기하는 것"이라며 "서울시와 정부, 사회는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도 사람들 앞에서 기어가는 것이 싫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명박 시장과의 면담은 물론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도 이명박이 면담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인간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양영희 전장연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생각보다 무릎이 많이 아프고 힘들다"면서 "그러나 현재 집이나 시설에 갇힌 채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다른 중증장애인들을 생각하며 기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나오려면 기어서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중증장애인의 현실이며, 우리 사회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증장애인들이 한강대교 위에서 노들섬까지 기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 프레시안


▲ 양영희 전장연 활동보조인제도화투쟁단 공동대표가 무릎 보호대를 고쳐매고 있다. ⓒ 프레시안


"당신은 30분 차 막히는 걸 못 참지만 우리는 평생 발이 묶인 채 살아왔다"

이들은 한강대교의 3개 차선을 점거한 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기어갔다. 이들이 노들섬까지 가는 데는 5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별다른 보조장비도 없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체의 일부를 팔이나 손 등으로 지탱하며 기어가는 것은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자주 쉬어가며 기었으나 결국 그 과정에서 박현 사무국장 등 3명이 탈진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강대교 북단에서 남쪽으로 가는 3개 차로가 5시간 넘게 통제됐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한 운전자는 이들 일행에게 뛰어들어 "왜 시민의 발을 묶느냐, 그러니 장애인들이 욕을 먹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의 한 활동가는 "당신은 30분 발이 묶여 있는 걸 못 참지만 우리는 평생을 이렇게 발이 묶인 채 살아왔다"며 "우리를 방해하지 말라"고 맞섰다.

양영희 대표는 "저기 멀리 노들섬까지 느릿느릿, 쉬엄쉬엄 가는 과정이 마치 우리가 활동보조인 제도를 쟁취하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끈질기게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 이날 행진에 참가한 한 중증장애인이 목을 축이고 있다. ⓒ 프레시안


▲ 행진에 참가한 중증장애인들이 이명박 시장을 비판하는 펼침막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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