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금융산업이 1%의 초갑부(super rich)를 양산하는 근거지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기준 미국의 기업들이 거둔 수익 중 3분의 1이 금융업체들로부터 나온다. 월스트리트에는 수백 만 달러 이상을 보너스로 챙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들의 놀라운 성과는 사기극에 가까운 금융파생상품을 세계에 퍼뜨린 대가라는 것이 드러났다. 바로 이들이 마구 팔아댄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이에 기초한 MBS(주택저당증권) 등이 부실화되면서 현재 미국발 금융위기로 터진 것이다. 이들의 부실채권을 사들인 투자자들도 사태를 키운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급기야 미국의 양대 국책모기지업체들(패니매와 프레디맥)마저 파산 위기에 몰리자 미국 정부는 지난 7일 역사적인 구제금융책을 발표했다. 일단 2000억 달러까지로 한도를 정했지만, 미국의 주택가격 거품이 계속 꺼지는 한 이보다 훨씬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관련 기사:"역사적 美 구제금융도 일본식 불황 못막을 것")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강요하는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면서 미국 정부는 모럴 해저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영진 전원 교체와 함께 사실상 주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조치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모럴 해저드는 여전히 남아있다. '금융사기극'으로 벌어들인 떼돈을 토해내도록 하지는 않고,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대마불사'의 신화에 매달리는 것이 제대로 된 해법이냐는 의문이다.
게다가 런던 정경대(LSE)의 윌럼 뷰이터(Willem Buiter)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는 몇몇 대형업체만 구제한다고 해서 막아낼 수 있는 사태가 아니라고 경고해 왔다.
뷰이터 교수는 '은행들이 고위험-고수익 게임을 즐기고, 이득을 챙기다가 납세자들에게 위험을 떠안도록 하는 행태는 이미 알려진 것인데도, 구제금융이 제공된다면 미봉책은 될 수 있어도 또다른 위기의 토양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대마불사론은 한 두 개 은행이 파산할 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협을 받을 때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진보성향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세계적 석학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는 구제금융으로 넘길 수 있었던 과거의 위기와 다른 상황이며, "주주는 물론 채권자들도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주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앞으로는 보다 책임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고 강조해 주목된다.
다음은 로고프 교수가 쓴 'Is there an exit strategy?'(원문보기)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중앙은행들이 납세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금융업체들에게 단기 신용공여의 동아줄을 던져주는 것은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동아줄을 끊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은행 자체가 부실화될 것이다. 세계 주요 경제국들이 단순히 단기적인 패닉에 봉착했다는 인식은 점점 타당성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합병과 정리 단계 거칠 때"
이제 금융산업은 놀라운 수익과 성장을 거두는 시기를 지나고, 합병과 정리의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부실은행들은 파산하거나 합병되도록 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일반 예금자들은 정부 보험기금으로 보존해준다), 이렇게 해서 건실한 은행들이 새로운 활력을 갖추고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이 올바르다면, 건전한 시장의 원리를 막는 노력은 문제를 연장하고 악화시킬 뿐이다. 미국과 유럽, 영국의 중앙은행들이 특히 심각한 금융부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 은행들은 전통적인 은행들과 복잡하고 규제가 부실한 '투자은행'들에게 수천 억 달러의 단기자금을 투입해왔다. 세계 경제가 계속 둔화되고, 각종 부채들의 연체율이 높아지게 되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중앙은행들의 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고 반드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금융위기 사태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재정을 회복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또는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매우 크다.
왜, 금융산업만 구제금융 특혜 주나
또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영어권 국가들의 금융산업은 그동안 엄청난 이득을 누려왔다.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기준 미국의 기업들이 거둔 수익 중 3분의 1이 금융업체들로부터 나왔다. 월스트리트에는 수백 만 달러 이상을 보너스로 챙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미국의 올해 대선에 나선 주요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명단에는 금융업체들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왜 일반 납세자들이 금융산업을 위한 구제금융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요즘 불경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자동차산업과 철강산업 등 다른 산업들은 왜 구제금융을 해주지 않는가?
윌럼 뷰이터 교수는 특히 미국의 중앙은행과 재무부 관료들이 금융산업의 볼모가 되어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들이 직면해 있는 엄청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지나친 비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위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뷰이터 교수의 주장이 덜 극단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패닉(그러므로 단기적 속성을 지녔다)에 휩싸인 금융업체와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격한 팽창기를 지나면 일정한 수축기를 거치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앙은행들은 무분별하게 신용공여를 확대하기보다는 합병을 촉진시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위기를 면밀히 평가해 금융산업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시점이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규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늘날 금융업체들의 주주와 채권자들은 주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앞으로는 보다 책임있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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