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를 1,387.75로 마감시킨 올해 낙폭은 역대 3번째, 올해 들어 최대 하락폭이다. 역대 최대 하락폭은 지난해 8월16일 기록한 125.91포인트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연중 최저치이며, 종가 기준으로 1,376.15를 기록했던 작년 3월5일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선물 가격의 급락으로 인해 오전 9시35분 무렵 프로그램 매도 호가의 효력을 5분 간 정지시키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유가증권시장의 사이드카 발동은 올해 들어 3번째다.
코스닥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37.62포인트(8.06%) 내린 429.29로 마감, 올해 들어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 하룻만에 50조원 넘게 증발
시가총액은 전 거래일인 12일에 비해 유가증권시장 45조7천974억원, 코스닥시장 5조6천256억원 등 총 51조4천231억원이 단 하루만에 사라졌다.
유가증권시장에선 외국인이 6천71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해 일별 기준으로 올해 들어 7번째로 많은 순매도 규모를 나타냈다. 개인도 2천583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워 투매에 동참했다.
전날 미국 증시에서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500포인트 넘게 폭락하며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9월17일 이후 최대치 하락폭을 기록했으며, 유럽 증시도 국가별로 3~4% 급락했다.
얄미운 그린스펀의 정확한 진단
이처럼 국내 증시에 폭격을 가하고 있는 미국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이 첨단상품이라며 세계에 수출해오던 파생상품이 원흉으로 꼽히고 있다.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이와 연동된 파생상품 자산들이 급격히 부실화됐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이 금융산업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찬사를 보낸 앨런 그린스펀 전FRB 의장은 재임 중 파생상품 확산을 정책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금융위기를 초래한 전범'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얄밉게도 그린스펀은 최근 금융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며 마치 '남이 저지른 일'처럼 진단하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달 초 영국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위기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부도를 낼 것이라는 두려움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와는 다르다"면서 "한 세기에 한 두 번 나올 사건"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통상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 금융업체를 내버려둘 경우 금융시장 전체의 붕괴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있을 때 정부가 긴급자금을 투여해 극복할 수 있는 단계를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라고 한다.
몇몇 업체만 살려주면 다른 건전한 업체들까지 신용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은 그동안 '납세자의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용인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는 금융산업 전체가 '지급불능의 위기(Solvency crisis)'에 몰려있다.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업체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선별적 구제금융은 더 이상 못해"
세계 제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지난 3월 파산위기에 몰렸을 때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JP모건에 인수하도록 했던 미국 정부가 세계 제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에게는 공적자금 투입을 거절해 파산신청을 하도록 내버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정부가 갑자기 차가운 태도로 돌변한 데 화들짝 놀란 제3위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미련을 신속히 포기하고 불과 몇 시간만에 BOA에 본사를 매각해버렸다.
현재 1,2위를 다투는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나머지 5대 투자은행도 부도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으며, 사실상 세계 최대의 금융업체라는 보험업체 AIG도 며칠 내로 파산신청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렇게 전체 산업을 '위기의 운명공동체'로 묶어놓은 상품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베어스턴스 때도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해결될 사태가 아니라고 그토록 얘기했는데, 미국 정부가 이제야 깨달은 거냐"고 한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미국의 양대국책모기지업체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사실상 국유화한 조치 역시 이 업체들의 특수성과 너무나 막대한 부채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게 중론이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선택했다는 경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부채상환 능력 부재의 위기'는 부살자산을 청산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특정 업체의 부실자산을 떠안는 방식은 위기 폭발을 지연시키는 조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 손실을 최종적으로 떠안아야 하는데, 결국 납세자의 부담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때문에 미국 경제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온 국제경제학계의 거목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교수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금융위기 사태에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16일 영국의 진보성향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위선의 산물(The fruit of hypocrisy)'이라는 칼럼(원문보기)에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1929년 월스트리트의 붕괴와 비교되는 이번 금융위기는 금융업체들의 부정직과 정책결정자들의 무능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질타했다.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 붕괴, 미국 정부로 확산"
그는 "복잡한 금융상품 거래는 위험을 전가하고 자산가치 하락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면서 "현재의 금융위기는 금융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가 재앙적으로 붕괴된 데에서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티글리츠 교수는 "신뢰의 위기는 금융권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확산됐다"면서 "미국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신뢰도 감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G8 정상회의 때만해도 미국 정부는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 이후 정부 전문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불신만 확인시켜주는 일만 일어났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그는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이 1929년 대공황 같은 사태를 피할 많은 수단이 있다고 믿고 있으나, 이번 위기를 또다른 불황으로 끌고갈 행정부가 있다면, 이라크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서 보듯 신뢰하기 어려운 정책을 드러낸 바로 부시 행정부"라고 성토했다.
벌써부터 이번 금융위기와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미국이 일본식 복합불황에 빠져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지만, 당장 부실자산 처리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위기는 FRB가 개입하는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명분으로 특정업체를 선별 구제하는 방식은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모럴 해저드를 방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파산 위기에 몰린 AIG에 구제금융을 해준다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등 자동차 3사에게는 왜 안해주느냐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의회가 나서서 1980년대말 저축대부조합 사태 때 등장했던 정리신탁공사(RTC)를 통해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동시에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입법을 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부실자산 정리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가 또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이며, 국제금융계에서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외부 자금 수혈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기축통화국의 특권을 발휘해 통화 남발을 감행하기에는 인플레이션 위협이 크다면서 '불황에 대응할 수단이 고갈됐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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