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최근 유럽의 통화경제학자로 저명한 찰스 위플로스가 대표적인 '금융위기 해결방안'들의 논리를 비교하면서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에 적합한 해법을 모색하는 글을 발표해 주목된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표적인 방안을 비교하면서, '대마불사'론에 입각한 미국 정부의 해법이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관련 기사: "美 은행 파산 줄 이을 것")
다음은 <Financial Crisis Resolution'이라는 글(원문보기)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누가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는 수 조 달러짜리 질문에 대해 두 가지 표준답안이 있다. 하나는 상황이 심각해졌다면, 일반인들은 어차피 금융위기로 큰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므로 더 깊고 긴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지금 당장 은행들을 위한 구제금융에 나서야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견해는 은행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치러야 하며, 정부는 은행 주주들이 아니라 납세자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는 '배젓의 법칙'
대형 은행들은 파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왔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이 고안한 이 해법은 지금도 무시할 수 없다. '배젓의 원칙'은 충분한 담보와 높은 이자를 조건으로 파산에 몰리는 은행에게 중앙은행이 무제한 자금을 공급하게 하는 것이다.
'배젓의 현대판 법칙'에서는 주주들이 상당한 대가를 감수해야 하고, 경영진이 즉각 교체되는 조건이 추가됐다. 지난 3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처리된 것도 이런 방식에 따른 것이다. JP모건에 베어스턴스를 넘기면서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의 공적자금과 베어스턴스의 자산을 담보로 290억 달러의 대출을 약속했다.
JP모건이 10년 내에 상황을 잘 처리하면 공적자금은 이자를 붙여 회수될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하면 공적자금은 그대로 미 국민의 부담이 될 것이다. 베어스턴스 주식은 거의 휴지조각이 됐다.
미국의 경제가 계속 하강하고 주택시장이 악화되면 더 많은 은행들이 파산할 것이다. 7월초 파산 위기에 몰린 거대 모기지업체 인디맥도 '배젓의 법칙'에 따라 처리됐다.
앞으로도 몇몇 대형 금융기관들과 많은 중소형 금융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적합한가에 대한 논쟁이 시급한 실정이다.
서머스 학파 "가혹한 조치는 악순환 초래"
'래리 서머스 학파'라고 할 해법을 소개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은 베어스턴스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처분이 너무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이 학파에 따르면, 그런 식의 처리가 투자자나 경영자를 겁먹게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은행들이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을 내놓기를 꺼리게 되고, 경영자들은 그들이 초래한 손실을 인정하지 않고 부실자산을 계속 팔아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금융체제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대출이 어려워지고 이자가 높아지게 된다.
FRB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금리 인하도 상황을 개선하는 데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신용위기가 경제를 가라앉게 하고, 더 많은 부도가 초래되고, 은행들의 대출 능력이 더욱 타격을 입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래리 서머스 학파는 FRB가 잠재적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자금 공급을 무제한으로 하길 요구한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대출, 성장 재개, 주택시장 하락 중지, 은행 경영 호전, 다시 더 많은 대출 등 선순환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마불사', 금융시스템 전체 위기 때는 한계
런던 정경대(LSE) 교수 윌럼 뷰이터(Willem Buiter) 학파라고 할 수 있는 또다른 견해는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다.
이 학파에 따르면, 현재 금융위기는 악명높은 MBS(주택저당채권)와 그 파생상품 등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한 상품을 대규모로 매입한 금융기관들의 실책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들은 규제를 피해 장부 외 거래를 하면서까지 막대한 이득을 챙겼지만, 눈을 크게 뜨고 벽에 돌진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앞날이 뻔히 보이는 위기가 터지자 이들 금융회사들은 될 수 있는 한 손실의 규모를 숨기면서 정부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호시절에 과도한 리스크 테이킹을 하다가 눈물로 끝나는 고전적인 신용위기다.
문제는 '누구의 눈물'이냐는 것이다. 납세자의 눈물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금융이 경제의 혈관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은행들이 고위험-고수익 게임을 즐기고, 이득을 챙기다가 납세자들에게 위험을 떠안도록 하는 행태는 이미 알려진 것인데도, 구제금융이 제공된다면 미봉책은 될 수 있어도 또다른 위기의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배젓의 법칙'은 한 두 개 은행이 파산할 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협을 받을 때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 학파의 견해가 도출해내는 정책적 함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구제책은 분명히 아무 제한 없는 자금 공급과 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징벌도 없는 관대한 조치다.
스웨덴과 일본 정부의 서로 다른 대응방식
1990년대에 발생한 두가지 사례는 심사숙고할 가치가 있다. 1990년대 일본과 스웨덴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스웨덴 정부는 GDP의 4%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들을 구제했다. 주주들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일본 정부는 일부 은행들의 주주들은 여전히 배당을 지급할 정도로 관대하게 자금을 수혈하면서 은행들을 보호했다. 스웨덴은 3년만에 위기를 극복했으며, 현재 MBS에 물린 스웨덴 은행들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본은 거의 20년이 되도록 경제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부실채권들로 인해 일부 은행들이 파산하는 등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래리 서머스의 해법도 일리가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려면, 규제당국이 리스크 테이킹의 한계를 설정하는 역할을 하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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