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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 세대동맹, 필승의 매직은 왜 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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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40 세대동맹, 필승의 매직은 왜 깨졌나?"

[이철희의 이쑤시개] "민주당, 좋은 대통령 후보 만들기는 잊어라"

'모을대로 쥐어짠 표'에도 불구하고 졌다. '무엇을 위해 투표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보다는 '투표해야 한다,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며 닥치고 투표했다. 저쪽도 닥치고 투표했다. 결국 18대 대통령 선거는 75.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2012년 12월 말 현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수첩'에 메모한 대로 인수위를 착착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대선이 열흘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야권은 '멘탈붕괴'에 빠져 있다. '필승의 매직'이라는 75% 이상의 투표율에도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5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숙제만 남았다.

'이명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단독 회동을 한 12월 28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중심으로 서양호 실장과 프레시안 임경구 편집국장 그리고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서치 앤 리서치(R&R) 배종찬 본부장이 모였다. '대선을 냉철하게 평가하자'는 의기투합에서다.

이들은 예정에 없던 <이철희의 이쑤시개> 번외 편을 '망년(忘年)회'라고 이름 붙였다. '4.11 총선과 12.19 대선으로 얼룩진 2012년, 잊고 싶다'라는 의미이다.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대선 패배의 이유는 민주당이 민생 문제가 급선무인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점과 변화한 인구 구성을 간과한 채 높은 투표율만을 맹신한 데 있을 것이다. 또 SNS와 종편 등 바뀐 매체에 대한 전략 부재, 문재인 후보 캠프의 명확하지 못한 슬로건 문제 등도 혼재되어 있다.


먼저, 서양호 실장은 민주당에 '치열한 자기 반성'을 주문했다. 유권자들의 '삶의 무게'를 간과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 실장은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문호를 개방하는 전면적인 쇄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희 소장은 '정권 교체' 목소리가 높았던 2002년 대선과 이번 대선을 비교·연구해야 한다며, '대선 후 조사'인 '포스트 모텀(Post mortem)'을 강조했다. 다음 선거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 소장은 특히 "민주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괜찮은 정당 하나가 서야 다른 것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덧붙여, 민주당에는 '좋은 대통령 만들기'를 잠시 잊고 '좋은 당 대표 만들기'에 매진하라고 충고했다.

임경구 편집국장도 지금이 '민주당의 재건 기회'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당선인이 빠진 새누리당도 "붕괴된 상태"라는 것이다. 임 국장은 "결국 지금의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야권은 5년 후 재집권할 수 있을까.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본부장은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자칫 잘못하면 보수 진영의 장기집권이 이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망년회> 편을 기사로 옮겼다. (☞ 팟캐스트 바로 가기)


프레시안 '깜짝' 성명 발표

<이철희의 이쑤시개>는 프레시안이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한시적으로 운영한 팟캐스트입니다. 지난 11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12월 17일까지 한 달간 10회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고백하지만, 프레시안이 '팟캐스트'라는 영역에 진출하기까지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대통령 당선인과는 달리,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과 청취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프레시안은 <이철희의 이쑤시개> '시즌 2'를 시작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현격하게 작은 그릇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이철희 소장의 말처럼 민주당 또는 야권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013년 <이철희의 이쑤시개> '시즌 2'는 민주당이, 야권이 잘할 때까지 당근과 채찍을 같이 들 생각입니다. 1월 둘째 주부터 매주 한 차례,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개봉박두!

단일화 논의 대신 '민생토크'를 했다면?

이철희 : 2012 망년 방송, 대선 이야기부터 하자.

서양호 : 반성부터 먼저 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우리 세대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대선 끝나자마자 잇단 노동자들의 죽음 등을 접하면서 민주당에 빠진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 얘기했던 정치쇄신이나 생활·복지 문제보다는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상대 후보를) '유신 독재의 딸'이라고 조롱하고 야유했다. 국민들은 그런 과거에 대한 의미보다 '자기 삶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더 진지하게 이 문제를 접근하는가'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철희 : 그럼,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삶의 문제'를 챙겼단 말인가.

서양호 : '챙겼다'기 보다는 (그에 대해) 민주당보다 진지해 보였던 것 같다. 유권자 선택이 그것을 증명했다. 삶의 무게에 지친 50대들이 압도적인 표차로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이철희 : 너무 결과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

2011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50대가 대거 몰려나온 현상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때는 민주당 아니었나. 그래야 '50대와 박근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상황을) 더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51.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박 당선인은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2대에 걸쳐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다. 사진은 12월 20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임경구
: 서양호 실장 얘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박근혜-문재인'의 인물 대결로는 밀리는 선거였다. 진보개혁 진영이 내세울 수 있는 게 사회적 약자와의 공감대인데, 서 실장이 말한 삶의 고통 문제는 이런 부분을 지적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4.11 총선 패배 후부터 이런 고민을 해야 했는데, 1년 내내 하지 않다 보니 마지막 전략에서도 문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질 수밖에 없는 선거가 됐다.

이철희 : 중요한 얘기다. 여론 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리서치 앤 리서치 본부장은 (패배) 결과를 예견하지 않았나.

배종찬 : 11월 초만 해도 '여권 후보를 찍을래, 야권 후보를 찍을래?' 하고 물으면, '야권 성향 후보에 대한 선호가 10% 정도 많았다. 그런데 11월 말에는 야권 후보 선호도가 거의 없어지고 여야가 대등해졌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11월 초부터 단일화가 이뤄지는 동안에 단일화 방식을 얘기하기 보다는 두 후보가 16개 광역시도를 돌면서 '민생토크'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학만이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토크를) 하는 등 연령대와 직업군의 범위가 넓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선거라는 것은 승리, 곧 집권이 가장 중요하지만 과정이 남긴 교훈도 크다. 이런 '민생토크'를 했다면, 많은 국민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단일화 국면에서) 두 후보가 가진 문제들도 상당 부분 해결됐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부분들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선호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무엇을 위해 투표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단순히 '투표해야 한다,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이번 대선은) 상당히 많은 표가 나왔다. 결국, 모을 만큼 다 쥐어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가 너무 재미없다'는 말을 계속했다. 과정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박진감이 부족했다. 2002년 선거 때는 박진감이 있었다. 사람들이 열렬히 지지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과연 동기부여를 던져줬을까는 의문이다.

박근혜-문재인 구도, 노무현-이회창 때와 비교·분석해야

이철희 : 이번 선거, 전문가가 봤을 때 '어렵다'라고 읽었나.

배종찬 : 전반적인 판세가 11월과 12월로 넘어가면서 문 후보에게는 어려워졌던 것 같다.

'50대가 어떻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60대 이상이 더 큰 효과를 보여줬다. 박근혜 후보가 50대와 60대에서 가져간 표는 비슷하다. 그런데 50대 표와 비교해서 문재인 후보가 60대 이상에서 가져간 표는 상대적으로 없다. 사람들은 50대를 중점적으로 얘기하는데, 이는 60대 이상도 묶어서 가는 것이다.

이철희 : 패인 분석이 하루 이틀 만에 될 것은 아니고, 끊임없는 논쟁이 있어야 한다. 배 본부장의 '전략의 실패'라는 지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당시 여당 후보였고, '정권 교체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또는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갖는 선명한 차이를 보면, 박근혜 후보가 당시 노무현 후보의 입장이었다. 박근혜-문재인 구도가 노무현-이회창 구도와 견주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보일 것이다.

2002년의 선거를 절대화시킬 필요는 없지만, 당시 주역은 제3자가 아닌 노무현 후보였다. 단일화 국면에서조차도 노 후보의 선택이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아쉬웠다.

여론조사, 덜 민감하게 받아들였으면…

배종찬 :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평가를 보면, 정확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늘 조마조마한 것은 여론조사 결과를 '족집게 도사'로 보는 시각이다.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그 당시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덜 민감하게 참고하면 좋을 텐데….

이철희 : 여론조사 기관이나 이를 활용하는 언론 등이 족집게인 것처럼 선전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게 언론이다. 과도하다.

프레시안 11월 28일 자 이한영 경제평론가가 쓴 "박근혜-문재인 지지율 조사, 돋보기 대보니…"라는 기사가 있다. <뉴욕타임스>의 선거 보도 지침 중 여론조사에 대한 것을 다뤘는데, 숫자를 인용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읽어보기를 바란다.(☞ 관련 기사)

대선에 올인한 종편, '잡설'로 정책 논의 실종시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종편에 대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 뉴스는 거의 종편에서만 다뤄졌다. 종편 주 시청자가 자영업자에 50세 이상이다. (종편이) 우리 사회의 공론 구조, 정보가 유통되는 구도를 바꿔놓고 있다.

서양호 : 공중파가 박근혜 후보에 대한 노출 빈도를 자제하는 바람에 대선에 대한 정보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 사이 종편은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대선 관련 토론을 하루 20시간 이상을 편성했다. 국민 모두를 정치평론가로 만들었다.

임경구 : 확실히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전 선거에서는 볼 수 없었던, SNS도 굉장히 활성화됐었다. 전통적인 미디어 환경과는 다른 (상태에서) 선거가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했다.

이철희 : 종편에서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누구에게 유리한가, 또 누구에게 불리한가'라며 늘 판세를 물어본다.

배종찬 : 종편이 하루에 열 몇 시간 방송하다 보니까 지나치게 지엽적이거나 사소한 것을 판세와 결부시켰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너무 사적인 영역까지 확대했다. 여론조사 발표에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평론 문화는 아직까지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객관적·중립적으로 어느 한 쪽 편에 서서 논리적으로 평론해야 한다.

단일화를 얘기하면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손을 꽉 잡지 않았기 때문에 단일화가 아닌 것 같다'라고 분석하고, '목도리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단일화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과연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런 분석은 문제가 있다.

이철희 : 그런 것은 분석이 아니다. 잡설이다.

종편이 대선 특집을 하면서도 정책전문가가 나와 정책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시청률이 안 나오다가 대선이라는 블루오션을 찾으면서 올인 했다. 시청률을 실시간으로 조사해보면, 다른 출연자보다 정치평론가들이 나와서 티격태격할 때 오른다는 것이다.

종편의 주 시청자층이 누구인지, 종편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비평해야 한다. 종편이 정치 뉴스를 주도하면서 정책 논의가 실종된 현상에 대해 야권은 심각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수 있다.

미국의 방송채널 폭스(FOX)도 정책 논쟁이 아니라 '왜 공화당이 나쁜지, 왜 민주당이 나쁜지'와 같은 막말 방송이다. 민주당이 미디어 환경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임경구 : 진보개혁 진영은 종편 출연 자체를 금기시했다. 종편의 탄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배종찬 : 종편을 대체하는 게 온라인 공간이었는데, 트위터·페이스북·카카오톡 같은 SNS에서도 국정원 여직원 건처럼 논란이 되는 것만 이야기가 된다. '오늘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논의해 봅시다'라며 양 후보의 정책을 뚜렷하게 분석하고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 논의가 있었어야 한다.

임경구 : 종편이나 SNS의 특성상 민심을 왜곡시키기도 했다. 전통적인 언론이 그것을 바로 잡는 역할은 해야 했는데 미진했다. 정확하게 민심을 알려주는 기사 등이 기존 언론에서 나왔어야 한다. 반성하는 부분이다.

이철희 : 우리가 '양극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미디어도 양극화됐다. 20·30대는 SNS 쪽으로 가고, 50대 이상은 종편으로 가면서 보는 미디어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이 충분히 짚어야 한다.

또 민주당이 쉽고 간편하게 정책적 명제를 보여주는 것에 충실하지 못했다. 정당이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게 무엇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와 다른 점을 집요하게 보여주고 관철시키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했어야 한다. 그것을 안 했다.

'사람이 먼저다' vs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배종찬 : 많은 유권자들이 민주당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의미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내 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고 왜 투표해야 하는지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 중심주의는 좋은데, '그것을 어떻게 투표와 승리 전략으로 연결할지' 연결고리가 약했다.

이철희 :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효과적이지 않았다. 대중이 못 받아들였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에 맞게 모든 것이 배치되어야 하는데 중구난방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부각하고 살려냈다. 그런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별로였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2002년의 경험을 너무 되새기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됐다. '사람이 먼저다'는 '사람 사는 세상'보다도 약하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그림이 없다.

'사람이 왜 먼저인지'를 설명하려면 예산부터 짚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토건 예산을 비판하다가 '결국은 사람에 투자하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은 백번 양보해서 '좋다'고 동의할 수는 있지만, 일관적으로 관철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 12월 19일 오후 11시 50분께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사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패배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48.0%를 득표했다. ⓒ뉴시스

이철희
: '친노'라는 이름도 바꾸었으면 좋겠다. 만약 '친노'가 하나의 정치 집단으로 존재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했던 핵심 가치대로 '참여파'나 '분권파' 등 아젠다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용어 자체가 문제다.

배종찬 : '네이밍(naming)'이 중요하다. 어떤 이름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반응이 상당이 달라진다. 호감도를 가지게 되기도 하고, 반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준비된 대통령'을 쓰면서 많은 불안감을 불식시켜 줬다. 이번에도 '준비되었다'라는 것 자체가 설사 준비가 안 되었더라도 그 말을 쓰는 순간 준비된 것처럼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철희 : 그런데 정말 국민들이 박근혜 후보가 준비됐다고 생각했을까? 마음의 준비는 된 것 같더라.

배종찬 : 여론은 '실제 그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믿어지는 것'이다.

이철희 :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표심의 동인이 '여성대통령', '준비됐다'라는 콘셉트 때문이라는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배종찬 : 2006년 당시 (박근혜 후보가) 2007년 대선을 준비할 때 두 가지가 걸림돌이었다. 하나는 '국가위기 관리 능력이 있느냐'와 '여성인 점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대한민국의 선장으로 가능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불식시킨 게 '준비되었다', '여성이다'라며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철희 소장이 책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너울북 펴냄)에서, '상대가 먼저 약점을 찌르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약점을 가지고 치고 나오면, 오히려 상대방이 공략할 지점이 없어진다'라고 했는데 그런 전략도 있었다고 본다.

이철희 : '용어를 어떻게 쓰느냐, 네이밍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프랭크 런츠가 쓴 책 <먹히는 말(Words that work)>(샘앤파커스 펴냄)을 보면, '상속세'를 '사망세'로 불렀다. '죽어서도 세금을 낸다'라는 말이다. 간명하게 본인들이 지향하는 바를 개념화시키는 것은 좋지만,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도 그런 점에서 비판을 해야 한다.

공화당 전략가인 프랭크 런츠는 일명 '선수'이다. 미국도 보수 세력이 전략이 세다. 그나마 유럽 사민당 계열이 전략이 좀 있고…. 그런데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이 좀 있는 것 같다. 상당히 어렵다고 한 이번 미국 대선을 완성했다.

민주당이 미국 사례를 연구해서 보고서도 내는 등 전략을 숙성해야 한다. 정치권 언저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가 이긴 이유를 모른다. 신문이 전한 외신만 본다. 미국은 대선이 끝나면 엄청나게 많은 통계 자료가 나온다. 그리고 양 진영의 전략가들만 따로 모아 세미나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다음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다.

"철저하게 '검시'해야 바꿀 게 나온다"

배종찬 : 5년 전 여론조사 자료를 봤더니, 당시에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을 때 정당 이름이 '대통합민주신당'이었다. 지금은 '민주통합당'이다. '네이밍' 상 큰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비상대책위원장을 경선해야 하느냐, 추대해야 하느냐를 놓고도 여론의 반응을 살폈다. 선거 끝난 이후의 '스터디'라는 게 다시 5년을 준비하기 위한 시작이다. 철저해야 한다.

이철희 : 철저하게 해야 한다. '사후조사'를 '포스트 모텀(Post mortem)'이라고 하는데, 포스트 모텀은 '검시(檢屍)'라는 뜻도 있다. 죽은 사람 시체를 검시해서 원인을 따져보는 것이다. 왜 졌는지를 철저하게,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이다. 한두 사람의 의견만 갖고는 안 된다. 왜 졌는지가 나와야 바꿀 게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그 과정을 소홀히 했다. 2007년 대선과 지난 4.11총선에 지고 나서도 민주당 내에서 그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서양호 : 현재 민주당을 '당권 싸움한다'며 '대선 진 놈들이 또 싸운다'라고 보기보다는 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평가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윤여준 전 장관의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이 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을까? 옛날에는 '나를 따르라'라며 소수의 리더들이 다수를 지도하고 계몽하는 방식이었다면, 윤 전 장관은 '나와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을 어떤 입장으로 바라보는가'를 보여 주면서 '나' 자신을 생각하게 했다.

여기에 가장 대비되는 것은 '광화문 대첩'이다. 선거의 주인이 되고 싶은 부동층이자 생활인들은 그 당시 선거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광화문 대첩'은 투표 전 마지막 세몰이를 한다는 것 때문에 수도권뿐 아니라, 호남에서도 사람들이 동원됐다. 당시 (연설 기회가) 몇몇 유명인에 한정돼 (생활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 윤여준 전 장관의 찬조연설을 보면서 우리 선거 운동의 방식에 퇴행적인 모습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브먼트' 없던 대선, 안철수에게도 숙제로 남아

이철희 : 그 현장을 보고 온 지인이 '진짜 많이 모였다'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의 얘기를 했다. '사람은 많이 모였는데 열기가 없더라'는 것이다.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특히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같이 다닐 때는 밑바닥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작 '광화문 대첩'에 가 본 사람이 '열기가 없다'라고 했다. 그 말에 언뜻 '우리가 뭔가를 잘 못 보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동원의 문제인지, 행사 자체를 너무 편협하게 끌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2002년 대선을 너무 과도하게 절대화시키는 건 안 좋다고 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우리 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무브먼트(movement, 자체적 운동)'이었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만은 아니었다'라고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무브먼트'가 없었던 것 같다.

임경구 : 어느 큰 선거에서나 사회적 에너지가 표출되는 방식이 나타나는데, 2002년에는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통해서 사회적 에너지가 표출됐다. 올해 나타난 '안철수 현상'을 보면, 안철수 후보 개인에 대한 사회적 에너지가 (표출된 게) 아니라, '안철수'를 통해 투영하고 싶었던 에너지만 있었다고 본다.

이철희 : '트렌드(trend)'만 있었을 뿐, '무브먼트'는 없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숙제이다. 사실 야권 전체가 약간 공황에 빠진 요인도 있다. 야권이 '단일화'를 하나의 정치적 공학으로 생각한 측면이 있다.

배종찬 : '20·30대 투표율이 (50대보다) 더 높지 않았느냐'라며 (대선 결과 분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20·30대가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여론조사 결과는 '지지하는 후보'와 '당선될 것 같은 후보'에 대한 부분이다. 50·60대 이상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 지지도하고 당선될 것 같다고 하는 기대감과 자신감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20·30대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당선될 것 같다'에 대해서는 마지막 조사까지 큰 차이가 안 났다.

특히 40대는 문재인 후보 득표율이 높은 반면, '당선될 것 같은 사람'으로는 박근혜 후보를 꼽았다. 이런 출구조사 잠정집계 결과를 볼 때 '열기' 즉, '된다, 된다' 하는 것을 왜 심어주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40 세대 동맹'에도 불구하고…

이철희 :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 당선 가능성이 높았나.

배종찬 :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이 계속 높았었다. 7~8%p 차이가 나는 것으로 마지막 여론 조사가 됐고, 6일 이후 실제 득표는 2%p 정도 차이가 났다.

이철희 : 여론조사를 공표하지 못할 상태에서 노무현 후보가 앞섰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계속 앞섰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배종찬 : 50·60대를 대상으로 한 당선 가능성 조사는 그랬지만, 40대는 (노무현 후보가) 높았다. 그리고 20·30대는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이번 대선은 20·30대를 상대로 한 '당선될 것 같은 후보'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 간에 두 자리 수 차이가 나지 않는다. 40대는 박근혜가 더 당선될 것 같다고 봤고.

이철희 : 열기를 읽는 지표로 '당선될 것 같은 후보'에 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좋은데, 과하게 무게를 실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대세론의 여진'이라는 게 남아 있다. 박근혜 후보는 4년 넘게 대세론을 구가했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지, 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배종찬 : 광주·전라 지역에서도 사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 같다'가 압도적이지 않았다. 그게 열기라고 보여 진다.

이철희 : 그런데 출구조사 결과만 보면, 이른바 '2040세대 동맹'은 이뤄진 것 아닌가. 이것은 야권이 내세운 '필승의 매직'이었는데, 왜 진 것인가?

배종찬 : '2040세대 동맹'이 유지됐지만, 40대에서도 두 후보 간 득표 차이가 많이 나진 않았다.

이철희 : 출구조사에서 제법 (차이가) 났다.

배종찬 : 11%p 정도 났다.

이철희 : 그 정도면 많이 난 것이다. 2002년에는 약 1%p밖에 안 났는데….

배종찬 : 그렇지만, 2002년에는 20·30대 유권자 비율이 확연히 달랐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삼자대결 구도일 때 후보를 지지하는 선호도가 뚜렷하게 차이 났다. 유권자 수가 약 4000만 명인데, 박근혜 후보 지지도가 40% 정도였다. 40%면 1600만 명이다. 그런데 19일 대선 결과 박근혜 당선인이 1580만 표를 받았다. 연령대 문제를 떠나서 지지층의 결집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지지층이 결집하는 데 50·60대 이상이 압도적이었고 유권자 수가 변했다. 지방을 보면, 대구·경북에서 100만 표 차이가 났다. 다른 지역의 열세를 상세하고도 남았다는 것인데, 수도권에서 좀 더 벌려야 했다.

이철희 : 어쨌든 2040세대가 결집한 것 아닌가. 유례없이 투표율이 많이 올라갔다. 40대에서 11%p 차라는 것은 크다고 본다. '2040세대 동맹'이 유지된 것이다. 그동안 필승의 법칙이었다. 2010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도 '2040세대 동맹' 때문에 이겼다. 그런데 왜 이번 대선에서는 맥을 못 썼느냐는 것이다.

배종찬 : 수적 열세다. 100여만 표 차이이기 때문이다.

▲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난 12월 20일 새벽 지지자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박근혜"를 연호했다. ⓒ프레시안(최하얀)
이철희
: 하나마나 한 설명 아닌가. 박근혜 후보는 어쨌든 나올 표였다는 것인데, 그럴 것을 예상 못 했나? 그렇기 때문에 사후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 50대의 투표율이 89.9%인데, 도대체 그들이 왜 대거 몰려나온 건가?

배종찬 : '대거 몰려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이철희 : 90% 투표율이면 '대거' 아닌가.

배종찬 : 10년 전 대선 최종 투표율이 70.8%일 때도 50대 투표율이 83.1%였다.

이철희 : 83.1%가 90%로 올라가는 것과 50%가 70%까지 올라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제일 궁금한 것이 '2040세대의 60% 이상 투표율이 왜 89.9%로 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흐름의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말이다. 사람을 흥분시켜서 끌어낸 요인이 무엇인가.

서양호 : 이성적 해석보다는 50대가 사회로부터 받은 소외, 20·30대로부터 받은 일정한 소외, '사회의 주역이고 고생한 세대는 우리인데 이렇게 물러나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이철희 : '세대 갈등의 역효과', 즉 '세대 프레임에 역효과가 났다'고 볼 수 있다. 세대 갈등·세대 대결을 내세우면, 20·30대가 몰려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역으로 (50대가) 많이 나왔다는 분석인 셈이다. 하우스 푸어, 안보 인식 등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솔깃한 분석이 없다.

배종찬 : 이번 선거는 50대가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50대가 여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인물, 50대가 10년 전에는 40대였으니까 '노무현'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 세대별 투표 현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노무현-이회창'이 겨룬 2002년 대선이다. 최종 투표율은 70.8%였다. 당시 2030세대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5060세대는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승패를 가른 결정타는 40대였다. 40대를 대상으로 한 당시 출구조사를 보면, '노무현 48.1% 대 이회창 47.9%'으로 노무현을 지지하는 40대가 0.2%p 더 많았다. 이에 '40대가 노무현을 당선시켰다'라는 말이 나왔다.

2012년 18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와 30대 투표율은 각각 65.2%, 72.5%였다. 과거 선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40대는 78.7%, 50대는 89.9%, 60대는 78.8%의 투표율을 보였다. 세대별 출구조사를 보면, 20·30대와 40대에서는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높았고,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높았다.


'민주당 해체'가 답일까?

이철희 : 대선 이후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거칠게나마 얘기를 해보자.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지금의 민주당이나 야권에게 여론조사 상 가장 높게 표출되는 불만이 있을 것 같다. 무엇인가.

배종찬 :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당시 '왜 지지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더니, '친노라는 게 싫다'라고 답했다. 결정적으로 '친노'라는 것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에게까지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친노'와 같은 이념, 특정 인물에 대한 성향 등을 탈피해야 한다고 본다.

이철희 :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친노의 색채를 걷어냈으면 좋겠다'는 것과 '이제는 친노가 제3의 가치 등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중 어느 것인가.

배종찬 : 두 가지 모두이다. 이것은 '정당의 매력도'와 관계된 것이다. 여전히 정당의 결집도는 크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9월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봤을 때 민주통합당이 정당 지지도에서 한 번도 새누리당을 앞서 가지 못했다. 정당의 매력도는 '어느 정도의 지지층이 확대가 되는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시장 보궐 선거 이후에는 민주당이 정당 지지율이 앞섰었다.

서양호 : 요즘 '민주당 해체하라'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듣고 있다. 새해 1월 1일 광주 시민들이 민주당 화형식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분노하고 있다. 민주당 개개인 누구의 잘못을 떠나서 '안철수'라는 사람이 등장한 것도 민주당이 변하지 않은 기성정치에 대한 반발이다. 국회 앞에서 천 배를 할 게 아니라,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이철희 : 치열한 성찰과 반성의 결과, (민주당을) 해체하라는 말인가.

서양호 : 민주당은 해체에 준하는 정도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외부 세력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철희 :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양호 : 새누리당 소장파 남경필·원희룡 의원은 칼을 들 때 들면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유지하는데, 과연 제1야당인 민주당에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무성 전 의원이 퇴물의 상징이 되면서 공천에서 제외된 것은 5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486세대들이 4선이다. 이들도 이미 (민주당 내 기득권과) 한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이후에 노동과 농민 등 '노동대중'이 (민주당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진보정당에 빼앗겼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문호를 개방하는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임경구 : 이철희 소장의 12월 24일 자 칼럼 "민주당, 아직도 '질서 있는 수습 타령인가?'"에서 나온 '2004년 체제'라는 말에 공감한다. 2004년 이후에 민주당의 리더십을 구성하는 집단에 대한 의미로 '2004년 체제'가 종식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정당 쇄신 측면에서 보면,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새누리당도 정당 자체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 관련 기사)

민주당이 '노동대중'의 사회경제적인 요구를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해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계층의 이익을 아주 집요할 정도로 대변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주류 세력의 교체, 특정 계파의 교체로 해결될 수 있는가의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당 정치의 측면에서는 원론적으로는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새누리당도 지금 마찬가지로 붕괴되어 있는 상태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누리당에서 빠졌기 때문에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붕괴되어 있다. 결국 지금의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민주당 재건 운동해야…"

이철희 : 동의한다. '민주당 해체'라는 여론이 있는데,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야권 전체를 보고 추상적으로는 '좋은 정당 만들기'를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재편 또는 재건 운동'을 해야 한다. 괜찮은 정당 하나가 서야 나머지도 다 가능하다.

정당이라는 것은 표를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릇의 크기로 보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현격하게 작은 그릇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또 하나는 50대와 여성 지지율에서 민주당이 졌다. 주부·노인·자영업자에게 치명적으로 약하다. 그 이유가 뭘까.

지구당이 없어지고 나서 지금의 야당의 약세라는 것이 아주 구조화 됐다. 정당 주변에 모이는 지지자들을 보면, 대개 자영업자와 주부(여성)들이다. (세대로 보면) 40대 후반에서 50대이다. 그런 연계가 다 끊겼다. 노인이나 주부, 자영업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그런 조직이 있다. 지역사회에 가면, 보수들은 자총('자유총연맹'과 같은 관변 단체) 등에 속해 있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움직인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나마 있는 정당 조직인 지구당을 스스로 해체했다. 이것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원이나 지지층에게 자부심을 줘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표를 만들 것 아닌가. 그런데 민주당은 그동안 죄인인 것처럼 취급했다. 당직자 뽑을 때도 당원들에게 이득이 없다. (이런 것 때문에) 당원들이 굉장한 소외감을 느낀 것이다.

민주당이 재건되어야 하는데, 결국 정당의 기본에 충실한 것으로 가야 한다. (유권자들이) 사실은 바깥에서도 민주당을 우습게 봐 놓고, 지금 와서 또 민주당이 우습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본다. 야권도 좋은 정당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

DJ 이후에 사실 지금의 야권 정당은 약화되는 흐름으로만 갔다. '오세훈 법(2004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선거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정치 혁신'을 내세우면서 발의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이라고 하는 선거법 개정도 결국 야권을 죽이는 선거법이 됐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 축소를 얘기한 것은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정치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당에서 3선, 4선을 한 사람도 정당의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냥 자기 공천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내가 당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안 전 후보만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될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치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다.

새누리당도 걱정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실정이 있어도 당에 박근혜 당선인이 있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역동성 있는 정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박 당선인이 빠지면서 구심이 없다. 김태호 의원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있지만, 이를 대신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자칫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당의 활력을 살리기보다는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정당의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게는 기회이다. 정당 내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히 가다가 작은 선거 한두 개에서 이기면 '되나 보다'라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가 없어질까 걱정스럽다.

'10년 주기설'에 따른 재집권, 가능한가

대개 '10년 주기설'을 얘기한다. 민주 정부도 10년하고 바뀌었는데, 여론의 흐름으로 보면 '지금 보수 정당도 10년 집권하면 바뀐다'라는 말에 근거가 있는가.

배종찬 : 근거가 반드시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유권자들의 연령대가 변하기 때문에 보수화 속성이 강해진다. 보수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의 개념보다는 누가 더 국민들에게 맞는 이미지를 주는 정당이 되는가, 안정감을 주는 정당이 되는가가 중요하다.

이철희 : 안정감이 답인가. 혁신과 변화 아닌가.

배종찬 : 여론을 들어 보면, '혁신과 변화'라는 게 굉장히 피곤하다고 한다. 불안하기도 하고. 우리가 얘기할 때 '개혁·혁명·혁신'은 너무 강한 이미지다. 그래서 '생활 주변을 개선해 드릴게요', '여러분의 삶을 더 낫게 해 드릴게요'라는 표현이 더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따라서 민주당이 더 철저하게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현대 대통령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공화당은 레이건부터라고 주장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말을 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지향이 그때부터 얘기됐다. 이에 대한 학습만 있어도 이번 선거에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참고와 교훈이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만 '10년 주기설'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변화 없이 '10년 주기'라는 이론이 맞아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이철희 : 민주당이 변화한다면?

배종찬 : 그때는 연령대별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이제는 고른 세대에서 득표를 하고 있다, 고른 지역에서 득표하고 있다'는 말이 다음 대선에서 나와야 한다.

이철희 : '야당이 '10년 주기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장기집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충고이다. 임경구 국장은?

임경구 : '10년 주기'라는 것이 선거가 5년마다 있기 때문에 나타난 말인데, 그보다는 사회적 흐름이 뒤바뀌는 '사이클'이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이후 보수의 시대에서 진보의 시대로 약간은 변해가는 흐름에 있다. 시대적 흐름이 바뀌면 유권자들의 의식도 당연히 맞춰간다. 거기에 맞는 의제와 행동반경을 모아 가는 쪽, 시대 흐름을 탄 쪽이 (다음 대선에서) 이긴다고 본다.

이철희 : 이번 선거에서 의제 주도권이 야권에 있지 않았다는 점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서양호 실장은 변화의 핵심은 인적 청산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사람들의 자발적 퇴진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나.

서양호 : 당내에서는 치열한 대선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싫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요구가 무엇인지 말하고 당이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지지를 철회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철희 :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민주당은 '좋은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것을 당분간 잊어버려야 한다. '좋은 당 대표, 괜찮은 당내 리더'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또 '누가 후보가 될 것이냐'라며 '안철수이냐, 박원순이냐, 안희정이냐'라는 식이면 또 어려운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당을 바로 세우는 것과 그 안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해서 (지금의 민주당을) 잘 추슬러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좋은 당 대표'가 나오면 좋겠다.

▲ 냉철한 대선평가를 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네 사람. 왼쪽부터 이철희 소장, 배종찬 본부장, 서양호 실장, 임경구 편집국장. ⓒ김대현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망년회> 편 "2040 세대동맹, 필승의 매직은 왜 깨졌나?"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http://pressian.iblug.co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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