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개헌 카드'가 삽시간에 정치권을 개헌 정국으로 몰아넣었다. 여야 각당에선 개별 의원들의 찬반 입장 표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식적인 당의 방침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당, 개헌-신당 함수관계 골몰
열린우리당은 내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만 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통합신당 추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계파별로 전망이 분분했다.
김근태 의장이 이날 오후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적극적 찬성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천정배 의원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찬성한다"면서 "책임정치를 실현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달라 발생하는 국력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2007년이 개헌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내 전략통으로 불리는 민병두 의원은 4년 연임제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한발 더 나아가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함께 도입해 지역주의의 악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개헌론이 신당 추진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둔 듯 "이번 개헌 논의가 민주개혁평화세력+미래세력의 대통합을 추구하는 데 있어 논의의 초점을 바꾸고 분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원포인트 개헌 논의에 조기 찬성함으로써 정치 전선을 단순화하고 대통합을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 사수파 쪽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에 대해 더욱 반색하는 분위기다. 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제안"이라며 "2월 국회에서 조속히 추진되기를 희망한다"며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 '혁신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형주 의원은 "개헌론이 대세를 이루면 정계개편은 하위 쟁점으로 내려가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일부 의원들의 탈당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탈당으로 인한 충격도 적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근태-노무현 '개헌 연대'?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김근태 의장이 8일 돌연 "(통합신당 추진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과 맞물려 개헌을 매개로 양측의 교감이 오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특히 김근태 의장은 최근 탈당 의사를 내비친 염동연 의원을 9일 면담한 자리에서 "염 의원이 대통령과 특수 관계로 뒷받침할 위치에 있으니 탈당하지 말고 개헌문제부터 관심을 가져달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염 의원은 "탈당 결심에는 변함이 없고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탈당과 연계되지 않는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염 의원은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자리에서 "대통령이 그런 제안을 할 때는 탈당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며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런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노 대통령의 당적 정리 가능성을 거론하며 역공했다.
한나라 소장파, 지도부 논의 폐쇄 비판
지도부는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겠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한나라당도 서서히 개헌의 영향권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당내 소장파 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은 당 지도부의 논쟁 회피에 문제를 제기했다. '수요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남경필 의원은 이날 "당 지도부가 전체 의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신중하고 확실한 의견을 정리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조속히 소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개헌 논의가 노 대통령의 실정을 만회하고 정계개편을 위한 숨은 의도가 있는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최고위원회와 당 지도부는 보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계진 의원도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제안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면 본질과는 관계없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수구당'의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춰질 위험이 있다"며 "비록 '꼼수'라 할지라도 흔쾌히 받아들임으로써 수권 정당으로서 (큰) 통을 보이고 개헌 제안에 담긴 꼼수를 무력화 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 의견이지만 찬성 의견도 나왔다. 고진화 의원은 "개헌 제안은 정권 안정화 차원에서 적절한 것"이라고 찬성했다.
민주당, 민노당 내에서도 이견 속출
민주당도 개별 의원들 사이의 찬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다. 조순형 의원은 "20년밖에 안 된 5년 단임제를 바꾸는 것은 안 된다. 적어도 30년은 지속해 본 뒤 후손들에게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노대통령은 연임제를 말할 명분이 안 되고 정략적 의도가 보인다"면서 "잘못된 여론은 우리가 깨우쳐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낙연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지나치게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올해의 개헌은 역사적으로 필요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치권"이라며 "여야 정치인들이 역사적 결단으로 이번 개헌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노당도 사정은 마찬가지. 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제안을 면밀히 검토해 개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미뤄뒀으나 노회찬 의원은 원포인트 개헌 제안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 의원은 "현직 대통령의 정계개편 개입이 극에 달했다. 노 대통령이 개헌발의권을 행사하는 날부터 두 달 간 정국은 개헌논쟁에 들끓을 수밖에 없다"며 "노 대통령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개헌이 아니라 개헌 정국에서 노 대통령의 주도 하에 범여권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다음 정부에서, 2009년이나 2010년쯤 개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각 당 및 대선후보들에게 이번 대선에서 개헌방향을 공약으로 제시할 것을 공식 제안하며, 우리 당은 토지공개념 도입의 헌법 명시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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