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4년 연임제 개헌 화두를 던졌다. 범여권은 '찬성', 야권은 '거리두기'로 일제히 갈렸으나 여야 공히 '4년 연임제'라는 개헌 의제 자체보다는 이를 계기로 한 노 대통령이 '복심'과 그 파장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與 "환영"…'개헌 제안 배경'에 의구심
열린우리당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우상호 대변인은 "김근태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지난 한 해 일관되게 4년 연임제 개헌을 주장해 왔다"며 "학계, 시민사회, 여야 모두 개헌을 주장해 왔고 국민적 합의 정도가 높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우 대변인은 "우리당의 입장과 (노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일부에서는 다른 배경이 있다고 보는데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원포인트 개헌을 강조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안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의 관심은 개헌 그 자체 보다 노 대통령의 의중에 쏠렸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중장기적인 정국구상을 가지고 시동을 건 것이 아닌가 싶다"며 "단적으로 노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 온 선거구제 개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이번 개헌 제안을 내놓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은 이미 '개헌 제안'으로 2007년 정치의 의제를 잡은 셈"이라며 "그러나 범 여권은 원칙적으로 개헌 논의에 찬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합신당 논의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건-김근태-정동영 "반대할 이유 없다"
범여권의 대선 주자들도 한결같이 '4년 연임제'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냈다. 고건 전 총리의 한 측근은 "고 전 총리는 이미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며 "개헌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는 개헌은 국력의 낭비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 아니냐"며 "정.부통령제 도입 여부는 국민 여론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 도입 문제 등에 대해서는 "중대선거구제는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 다당제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근태 의장은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한다"며 "상당한 수준과 범위 내에서 국민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고 4년 연임제 및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일치는 국력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저도 당의장으로서 원포인트 개헌을 적극 주장해 왔다"며 "현재의 유리한 상황이 흔들릴까봐 한나라당이 개헌을 망설이는 것은 당리당략인 만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측근은 노 대통령의 이번 제안에 대해 "당리당략을 넘어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번 제안은 87년 체제의 20년 만의 재정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적으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나 정부통령제 도입과 같은 여타 개헌 의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개헌 내용은 두고봐야 알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나라 "'못 먹는 감 찔러 나 보자'는 식이냐"
노 대통령의 '개헌제안'이 나오자마자 한나라당은 이를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라고 규정하는 한편 지도부 차원의 논의에 들어가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상임전국위원회 비공개 발언에서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꺼낸 것은 정치판을 흔드는 묘수를 부려 정치권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특유의 돌파 정치"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개헌 논의 제안은 국민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라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라고 밝혔다.
나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개헌과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차기 정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최고중진 연석회의를 긴급 소집해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박근혜 '반대', 이명박-손학규 '신중'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들도 이날 노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그 정치적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전반적으로 "개헌은 차기 정부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각 캠프별로 온도차도 감지됐다.
박근혜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박 전 대표 측은 "개헌은 각 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의 심판을 받은 뒤 차기 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에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지금 당장은 어떤 입장도 내놓을 수 없다"면서 "오후에 있을 당 지도부 회의를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다른 한 측근은 "간단히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의도와 그 배경을 면밀히 살펴 신중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날 오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지사의 이수원 공보특보는 "논의를 통해 조만간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겠다"고만 밝혔다.
민주 "진정성 있다면 탈당해라"…민노 "또 '깜짝쇼'냐"
민주당은 개헌 제안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노 대통령의 탈당을 먼저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민주당은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제안을 긍정적으로 본다"며 "다만 노대통령이 실정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개헌제안을 한 것이라면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정치발전 차원에서 개헌을 제안한 것이라면 즉각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민주노동당과 국민중심당은 즉각 당 차원의 논의에 들어갔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런 중대한 문제를 사전 협의나 진지한 토론 없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 '깜짝쇼'하듯 제안하는 방식에 대해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유감을 표한다"면서 "정치권이 책임 있게 협의한 내용을 내놓아야 국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민노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제안을 면밀히 검토해 개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중당 이규진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4년 대통령 연임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정계개편 논의 등으로 시끄러운 이 시점에서 갑자기 개헌을 들고 나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개헌 논의는 정치권에서 시기 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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