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9일 여야 대표를 면담해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개헌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노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에 앞서 이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로 협조를 통보 받은 임채정 국회의장은 "개헌에 대한 정당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제안이므로 발의되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열린우리 "적절한 제안…'개헌'은 사실상 당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영등포 당사에서 이병완 비서실장을 만나 "공식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원포인트 개헌은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당론으로 생각해도 좋다"면서 "개헌 문제는 지난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개인적인 정책 소신으로 밝힌 적이 있고, 김한길 원내대표와 원혜영 사무총장 등도 개헌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지 않아 어떤 때는 선거가 매년 있기 때문에 국력 낭비가 매우 크다"면서 "그래서 상당한 수준과 상당한 범위 내에서 국민적 합의가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제안은 적절하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다만 (개헌 제안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진 것이라는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립적이고 국가 이익을 걱정하는 입장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이 비서실장은 "적극적인 국민 설명에 있어서 (김근태 의장의) 많은 도움을 바란다"면서 "김 의장이 말한 부분에 대해 국민들께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 "개헌과 관련된 어떤 논의에도 응하지 않을 것"
한나라당은 이병완 실장의 방문 자체를 거부하는 등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정략적 개헌 논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5쪽 분량의 대국민 담화문을 보더라도 개헌론의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강재섭 대표가 이병완 실장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면서 "평소 강 대표는 4년 연임 개헌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어 따로 이병완 실장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국정에 바쁜 이 실장이 직접 찾아오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강재섭 대표는 그러나 노 대통령의 개헌 발표 후 최고중진 연석회의를 소집해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정략적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은 지금 민생경제에 몰두하고 정략적인 일은 벌이지 않는 것이 맞다. 국민의 분열과 국가의 분란을 가중시키는 개헌논의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원칙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개헌의 필요성조차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며 "개헌과 관련된 어떤 논의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TV토론이나 인터뷰도 거절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10일 오전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해 당론을 재확인하는 한편 오는 11일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 여야 각당 대표·원내대표 초청 설명회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민노 "개헌은 필요하지만…"
한편 이 실장을 만난 장상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어느 당보다 앞서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노 대통령의 제안에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원칙적 찬성론 속에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민노당 문성현 대표도 "1987년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내용적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점이 있다. 5년 단임제와 4년 연임제만을 놓고 보자면 4년 연임제가 맞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일부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국민들로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이병완 실장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도 차기 정부가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잘 하면 한 번 더 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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