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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방송, 직원들 눈물 속에 ‘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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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방송, 직원들 눈물 속에 ‘정파’

[현장] 경인방송 전파송출 중단되던 날의 풍경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슬픔은 하늘과 땅의 슬픔보다 더 컸다."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방송이 멈추던 12월 31일 오전 11시 10분. 경인방송(iTV) 구성원들은 "죽는 그날까지 이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측, 녹화된 고별방송마저 취소**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인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인천 남구 학익동 경인방송 사옥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몰려오나 싶더니 어느 새 사람들의 수는 3백여명을 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동료의 손을, 어떤 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옥 앞에 마련된 옥외 TV전광판을 바라보며 1초씩을 세고 있었다. 이윽고 11시 10분이 되자 경인방송이 정말 ‘끝’을 내렸다. 약속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의 눈에서는 일제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7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서 있어야 했던 경인방송 구성원들은 모두 ‘망연자실’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회사측이 마지막까지도 그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회사측은 이날 사전에 녹화된 20분 분량의 고별방송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사옥 정문 앞에서 인천지역 시민단체, 언론 현업단체들과 별도의 고별행사를 한다고 하자 30일 오후 늦게 돌연 이를 취소해 버렸다. 흥분한 노조원들이 사옥 안으로 진입해 기물을 파손하거나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누구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없었지만 회사측은 ‘제 발 저린 듯’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구성원들을 매몰차게 차가운 겨울거리로 내몰았다.

***경인방송노조, ‘iTV 희망조합’으로 재출발 다짐**

그러나 경인방송 구성원들은 이것이 정말 마지막은 아니라고 했다. 폐업을 하고, 정파를 해 더 이상 TV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게 됐지만 아직 법인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에 조만간 제2창사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그토록 목메어 불러보던 ‘공익적 민영방송’을 반드시 만들어 보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노조의 이름도 새롭게 만들었다. ‘iTV 희망조합’이라고. 노조사무실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 있는 방송사노조협의회 사무실로 옮겨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경인방송은 이미 ‘방송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럿 달고 있다. 지역 민영방송사 최초로 100% 자체 편성을 표방했고, 또 민영방송사로서는 처음으로 소유구조개편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달갑지 않은 방송사상 초유의 구사대 난입→직장폐쇄→재허가 추천 거부→폐업→정파 등이 잇따라 벌어졌다.

양문석 EBS 정책전문위원은 경인방송 사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경인방송 구성원들의 투쟁은 거창하게 한국방송사를 다시 쓰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밥그릇 싸움’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밥그릇 싸움의 성격과 방향을 면밀히 분석해 본 결과 그것이 지역민영방송 전반이 노정하고 있는 파행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평가됐고, 여론의 다양성과 방송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모범적 투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 투쟁에 시민사회가 함께 하게 된 것이고, 수많은 언론들이 이 투쟁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며, 방송정책 결정단위에 있는 이들이 이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경인방송이 또다시 ‘방송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달 수 있을지 언론계와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다음은 전국언론노조 경인방송지부(위원장 이훈기)가 정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전문이다.

***iTV 시청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2004년을 마감하는 오늘, 경인지역의 문화구심체로 지난 7년동안 활동해온 iTV 경인방송이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집니다. 저희 iTV는 지역의 문화와 소식을 전하는 방송사를 염원하셨던 인천시민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2000년 경기도민들의 지원에 힘입어 경기남부로 광역화되면서, 경기와 인천을 아우르는 토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만들고 키워주신 지역시청자들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움만이 남습니다. 저희는 1,300만 인천시민과 경기도민 여러분들의 더 밝은 눈이 되어 지역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더 열심히 찾아야 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더욱 활짝 열린 귀가 되어 당신들의 가슴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에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저희들은 여러분들의 더욱 튼튼한 다리가 되어 지역의 숨어있는 삶의 현장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지나온 시간동안 저희의 노력과 결실이 당신들의 기대와 열정에 미치지 못한 것,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지난 7년 동안의 iTV를 만들고, 운영하신 중심은 저희가 아니라 시청자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지금 방송이 중단되고 방송사가 문을 닫는 상황을 맞으면서, 저희들은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방송개혁이라는 시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새로운 iTV는 미래의 순간에 있고, 멈추지 말아야 할 경인지역의 유일한 방송이 멈추게 된 결과를 맞게 된 것, 시청자 여러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경인지역의 밝은 눈과 귀와 튼튼한 발이 되기 위한 저희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그러기 위해 저희가 먼저 하나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iTV를 만들기 위해 입장과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경인지역의 문화구심체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큰 명제 앞에 그것은 작은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제약으로 노동조합에 함께 하지 못하셨던 분들, 생각과 방향의 다름으로 노조를 탈퇴하시거나 업무에 복귀하셨던 분들도 이제 새롭고 건강한 iTV를 다시 탄생시키는 커다란 소명을 다하기 위해 화합하고 단결하도록 합시다. 이것만이 지역시청자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동안 iTV를 만들어주시고, 지켜주시고, 애정을 보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오늘의 정파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여러분들의 기대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방송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2004년 12월 31일 정파를 맞으면서
iTV 노동조합원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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