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조지 몬비오는 1일 칼럼에서 이번 협상 과정에서 공화당 측의 입장을 지지한 극우 시민 네트워크 '티파티(Tea Party)'의 역할에 주목했다. 몬비오에 따르면, 티파티는 정부 지출 감축으로 자신들의 삶에 타격을 받을 일반 시민들로 구성됐지만 오히려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몬비오는 이러한 운동의 이면에는 소수의 억만장자들의 자금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수의 부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조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자금 뿐 아니라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현혹하는 미디어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 미디어 역시 부자들의 소유다.
몬비오는 이렇게 조직된 '여론'에 힘입어 성사된 합의 내용을 '정치적 쿠데타'로 규정한다. 이번 합의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기존의 시스템을 해체한 다음 다시 만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채 협상을 본 영국의 일부 언론들은 자신들의 계급적·계층적 이익에 손해를 입히는 지도 모른 채 언론에 의해 호도되고 있는 미국의 티파티 같은 집단이 영국에서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언론, 그 언론과 영합하거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부채 협상, 억만장자들의 쿠데타
정부 부채를 줄이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세금을 올리거나, 정부 지출을 감축하거나. 세금을 올린다는 건 부자들에게서 돈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서 돈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다. 역진적인 과세도 있다. 어떤 정부 지출은 일반 시민들로부터 돈을 가져와 은행과 군수기업, 석유 재벌과 농민에게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국가는 [저부 지출을 통해] 부자로부터 가난한 이들에게 부를 이전시킨다. 반면 감세는 반대로 작동한다.
이 때문에 명목상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싸워야 한다. 부자들은 나머지 99%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쪽으로 투표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정부 기능을 축소하고, 증세보다는 정부 지출 삭감을 지지하는 쪽으로 말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그 설득에서 성공한 것 같다.
미국 부자들의 성공은 2001년과 2003년, 2005년에 부시 행정부가 했던 감세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에 의해 감세 시한이 연장됐다) 오바마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부자들에 대한 과세율은 "반세기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한 역진적인 정책의 결과는 다른 선진국에는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높은 불평등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상위 1%의 수입은 지난 10년간 18% 증가한 반면, 남성 블루칼라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12% 감소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마련한 부채상한액 확대안은 정부 지출 감축만을 추구한다. 그것은 미국의 경기 하강이 더 심해질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정부 부채가 더 커질 거라는 뜻이다. 이건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표명적인 이유는 [미국의 극우 유권자 운동] 티파티(Tea Party)가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옹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티파티는 주로 부자 감세 및 중하위층에 대한 정부 지출 감축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로 이뤄져 있다. 그들은 왜 그들 자신들의 복지 혜택에 반대하는데 동원됐을까? 모두가 잊은 것처럼 보이는 것, 즉 티파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기억한다면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다.
▲ 지난달 27일 정부 지출 감축을 지지하는 티파티 활동가들의 집회 장면. ⓒ로이터=뉴시스 |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말판 <옵서버>는 7월 31일 "티파티는 정부 지출 특히 [부실한]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투입한 돈의 [엄청난] 규모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건 티파티 회원들이 하는 소리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티파티 운동은 <CNBC>의 금융전문기자 릭 산텔리(Rick Santelli)가 [200년 전 '보스턴 차 사건'을 언급하면서] "금융 루저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오바마의 계획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미시간 호수에 증권을 내던져버리자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됐다. 달리 말하자면, 티파티 운동은 [주택 거품 붕괴로] 집을 잃은 [경제 위기의] 희생자들을 구제하는데 반대하는 금융 자본가들의 요구였다.
같은 날 '미국번영재단'(Americans for Prosperity. AFP)이란 단체가 티파티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행사를 조직했다. 티파티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고 지금도 AFP의 넉넉한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AFP의 정체는 무엇인가? AFP는 찰스 코치(Charles Koch)와 데이비드 코치(David Koch) 형제가 설립했다. 이 형제는 스스로 "예전에 들어본 적 없는 가장 큰 회사"라고 부르는 자산 가치 430억 달러의 코치 인더스트리를 운영한다. 코치 인더스트리는 석유, 가스, 광물, 목재 및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회사다.
지난 15년 간 코치 형제는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를 위해 적어도 8500만 달러를 로비에 쏟아 었다. 그들이 돈을 댄 로비 단체와 정치인들은 또 집단소송 방해 공작, 탄소배출량 감축법 저지, 의보 개혁 반대, 은행 규제 도입 방해 등을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2010년 중간선거 과정에서 AFP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하는데 4500만 달러를 썼다.
그러나 코치 형제의 가장 커다란 정치적 승리는 티파티 운동을 출범시킨 것이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타키 올덤이 만든 영화 <인조잔디 전쟁>에는 티파티 조직책들이 2009년 [티파티 운동가들의 연례 행사인] '어메리컨 드림을 수호하라' 회의에서 데이비드 코치에게 몰래 보고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그 행사와 시위가 AFP의 도움으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코치는 그들에게 "5년 전 우리 형제는 AFP 출범 자금을 제공했다"며 "AFP가 이렇게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한 것은 내 상상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AFP는 삶의 질이 저하된 이들의 분노를 동원했고, 그들을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내모는 캠페인으로 보낸다. 티파티 활동가들은 억만장자에 대한 감세를 주장하고 의료·교육·사회보험 등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악화시킬 것을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들은 어리석은가? 아니다. 그들은 기업가들의 또 하나의 무기, 언론을 통해 현혹되어 왔다. 티파티 운동은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억만장자가 소유한 <폭스뉴스>에 의해 집요하게 촉진됐다. [<폭스뉴스>의 사주] 루퍼트 머독은 코치 형제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민주주의적 선택을 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반대하고 머독의 이익에 찬성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다.
지금 현재 미 의회에서 벌어진 일은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다.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입법 절차를 망쳐버렸다. 억만장자들이 매수한 의원들과 그 의원들을 지지하는 티파티를 통해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익에 기여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부수고 다시 만들었다. 과거에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잊어버렸다. 우리는 보이지조차 않을 힘에 저항할 어떤 희망을 갖고 있을까?
* ( )는 필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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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장군은 항일전투로 찟겨나간 살점 하나라도 조국해안에 닿는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토로했다. 그 연설집\'민족과 나\' 머리에 필리핀 독립영웅 리잘의 초개같은 절명시가 소개되기도 한다. 열살 남짓에 해방을 맞은 소년들 가슴가슴에는 애국심이 들끓었다. 쏟아지는 독립혈루사가 젊은이들을 조국의 방패로 주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은 끝내 분단되고 그렇게 우려했던 동족상잔도 있었다.
처음 평화로운 강토를 피바다로 만든 공산당을 증오했으나 차츰 그들이 소련과 중공의 지시를 거역할 수 있었겠나. 초토화된 북한을 들으면서 약소민족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통일은 언제 어떻게 이룰 것인가 나아가 민족간 증오대결은 누굴 위한 것인가. 여전히 피폐한 서민의 살길 무엇인가. 자유민주가 실종되니 권력을 둘러싼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 아닌가. 삼삼오오 젊음은 모였고 선배들 항일독서회 처럼 토론회도 가졌다.
모두 혁명가가 돼가고 있었다. 독립운동과 해방의 열기 탓이었다. 또 다시 전쟁은 안된다. 평화통일이다.성급하게도 북한과 내통한 사람도 있었다. 극형을 면키 어려웠다. 그 후 2-30년 이어지면서도 처형 피화가 계속되었지만 아직도 나라의 민족문제 빈부문제 민주 자유문제는 끄떡없이 살아남아 있다. 모두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헛 꿈을 꾼 것 아닌가. 그러나 지식인들은 시로 소설로 논설로 혁명을 잉태시키는 다방면의 작업을 그치지 않고있다.
그래서 열혈청년을 꼬득일 꺼리가 있는 한 혁명가는 끊임없이 생산된다. 사람답게 살 길을 찾아 나서라신다. 그러면 그 길은 곧 이런저런 공동체로 향하게 되어있다. 사랑으로 어울어진 세상. 그중에도 가장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공동체가 민족공동체다. 같은 언어로 엮은 오랜 문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역사가 일천하면 그만큼 기둥을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반북을 외쳐도 진리탐구에 나선 우리 젊은에겐 자꾸 그 길이 보이는 걸 어쩌랴.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사형 당한 죽산. 민주화를 위해 몸바친 영령들. 그 중에도 20년을 살고나와 더 20년을 교수로 생을 마친 신영복. 아무런 변명이나 원망도 없이 묵묵히 더불어숲을 외치다 슬어졌다. 혁명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두 공동체로 가는 길을 닦으면 족하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위하여 싸워온 조국의 앞날을 지금 헬조선이 가로막는다. 고임금산업과 저임금산업이 점점 서로 등을 돌린다. 권력강화수단으로 감행된 재벌정책 때문이다. 빈부격차확대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처음부터 파이만 키우면 나중에 나눠먹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물량성장의 굉장성 때문에 석학들의 경고도 무시되었다. 급기야 분배와 평등을 말하지 않고는 경제 더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헬조선이다. 그러나 이를 말하면 진보요 진보는 곧 종북으로 매도되니 이 진퇴양난을 어쩌랴. 조국을 버리려는 젊음들을 한줌도 안되는 불만세력으로 보는 것은 고추가루 뿌리는 격이다. 꼭 과반투표라야 입을 담을 것인가.
지금 소영웅들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정치권을 휘젓고 다닌다. 택도 없는 짓이다. 전쟁 같은 특수를 만나면 모를까. 그래서 다시 혁명가들이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그간의 경위를 추적하면 그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동반성장운동으로 파이를 내놓겠는가. 더하여 전쟁공포가 상존하고서야 어찌 자유민주를 최적수준으로 가동시킬수 있겠는가. 점점 강화되고 있는 군사문화의 질곡을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란 얘기다. 젊은이여 헬 앞에 먼저 현명할지어다. 승리는 그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