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협상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침체된 미국 경기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암울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채상한을 증액하는 대가로 공화당에 양보한 대규모 재정지출 감축안이 결국은 경제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합의에 증세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정적인 전망에 힘을 보탠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향후 10년 간 최대 2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재정지출 감축 합의로 미 정부의 역할이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바뀌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미 지난 6개월간 주(州) 및 지방 정부의 재정지출 감축으로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보다 낮아진 상황에서 이제 연방정부마저 지출 감축에 나서게 됐다며 실업률 증가와 성장률 감소,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미국 경제에서 부채와 불확실성이 걷히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민주당과 공화당이 오히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미국 경제가 회복하려면 1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신문은 올해 상반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8%에 불과하고 지난달 25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상근직(full-time job)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들면서 이번 감축안과 암울한 경제상황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압력을 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미국의 경제 침체가 심화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커진다면 이자율을 더 낮게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신문은 이번 합의에 대한 공화당 측의 낙관적인 전망도 반박했다. 공화당 측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로 인한 정부 부채 감소가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지출을 늘이면 납세자들은 향후 세금이 오를 것이라고 보고 지갑을 닫게 되고, 반대로 정부 부채를 줄이면 소비를 늘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신문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재정지출 감축 사례를 검토한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긍정적 효과보다 지출 감축 자체의 파급 효과가 더 크다고 전했다.
이번 합의를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겪은 진통은 패권국인 미국의 위상을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또 다른 기사에서 합의에 이르는 동안 공화당이 오바마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과 격렬한 논쟁을 세계가 지켜보면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 의심을 품게 됐다고 평했다.
<가디언> "오바마, 이번 합의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공화당에 큰 양보를 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이번 합의는 (증세를 주장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각 3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부채상한 증액 협상에 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
<가디언>은 이번 합의가 (양당의) 타협과 이성의 승리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디폴트 재앙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재앙은 (극우 시민 네트워크) 티파티(Tea Party)에 의해 유발된 점을 강조했다. 정부부채 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이들에게 합의안을 양보한 오바마 대통령은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사설은 또 디폴트 위기 타개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위협 요소가 하나 사라졌지만 본래 추구했던 정책 목표에서는 이미 멀어졌다며, 지출 감축은 고용 개선과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래리 엘리엇(Larry Elliott)은 이날 기명 칼럼에서 미국이 이제 거품에 기댄 '빚잔치'에서 벗어나 생산성 및 실질임금 향상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칼럼은 긴축 재정안을 놓고 벌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긴축재정은 경제 침체기가 아닌 활황기에 펴야 한다고 비판했다.
칼럼은 또 미국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해결책은 공공 지출을 통해 빚에 의존하는 개인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에 기대 자신들의 경제 위기는 다른 국가와 달리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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