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존 챔버스 국가신용등급평가위원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공영 PBS TV의 '한미동맹관계,정상회담 이후' 좌담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은 핵 비확산조약 위반이며 북한은 깡패국가이고 자국민을 굶기고 있으며 계약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면서 "북한과의 협상은 바보짓"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일개 신용평가기관 관계자답지 않은 '정치적 발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던 그가 12일(현지시간) 뉴욕 S&P 본사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를 갖고 다시 "S&P는 북한이 이미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다만 핵무기 보유 숫자와 6개월내 생산할 수 있는 핵무기의 숫자가 초점"이라고 또다시 북핵문제를 언급했다.
***"북한 붕괴와 그에 따른 통일비용이 최대 위험요소"**
챔버스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뒤, "최근의 북핵문제는 1993~94년의 핵위기 등 과거의 사례와 비교할 때 특별히 심각하다고 볼 수 없으며, 잡음이 있겠지만 1~2년내 다자간 협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챔버스는 그러면서도"한국의 신용등급이 언제 외환위기 이전 수준(AA-)으로 회복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달하는 외환위기 당시 재정손실이 그대로 정부 부문으로 전가됐고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고 부정적으로 답했다.
챔버스는 특히 북한문제와 관련, "북핵 문제가 1~2년내 평화적으로 해결되겠지만 북핵 문제는 제거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악화할 가능성이 있고,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그에 따른 엄청난 통일비용은 한국에 재정적 위험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S&P는 지금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그에 따른 '엄청난 통일비용'을 한국신용등급의 최대 변수로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발언이다.
***"북한 붕괴시 2천억~5천억달러 부담해야"**
S&P뿐 아니라 무디스와 피치 등 나머지 세계적 신용평가기관들도 북한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이에 따른 통일비용 부담 급증 위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디스의 토머스 번 국가신용등급 담당 부사장은 지난 2월6일 뉴욕 한국협회 주최 기업인 모임에서 행한 '변화의 바람; 한국에서 새로 부각되는 민족주의와 경제 정책 과제들'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원자력 및 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선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은 '점진적 비용 증가'라는 전제를 토대로 했지만, 최근의 북-미 긴장 고조로 향후 5년간 한국 정부가 통일 정책에 투입할 비용은 연간 최대 1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국의 1년 예산이 1천2백억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비용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요컨대 '저비용 통일'을 지향했던 햇볕정책의 퇴조로 인해, 앞으로 한국경제는 유사시(북한정권 붕괴시) 살인적 규모의 통일비용을 부담해야 할 지 모른다는 우려섞인 전망이었다.
피치도 지난달 펴낸 <한국 보고서>에서 남북한이 통일되면 군사비는 줄지만 양국의 소득격차 해소와 복지, 교육 등 각 부분의 비용이 증가, 통일비용은 연간 1백50억∼2백억달러씩 10∼15년에 걸쳐 2천억∼5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피치는 북한정권의 붕괴나 전쟁으로 갑자기 남북통일이 진행되면 우리나라의 연간 재정부담이 늘어 국가신용등급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최근의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점진적인 통일가능성이 있으며 통일비용도 국가신용등급에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은 또 장기적으로도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이 합쳐지는 계기가 된다고 평가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의 위선**
이같은 세계 3대신용평가기관의 평가는 한국경제의 최대복병이 무엇인가를 극명히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당면한 북핵위기를 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한정권 붕괴같은 충격적 통일 대신에 점진적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자연스레 도출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되는 대목은 최근 일부 미국계 신용평가기관들의 '정치행위'이다. S&P의 챔버스가 말한 "북한과의 협상은 바보짓"이라는 발언에서도 볼 수 있듯, 최근 미국계 신용평기기관들은 미국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노골적으로 동조하며 우리 정부로 하여금 대북강경정책에 동참할 것을 여러 형태로 압박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후 노골적으로 가해진 신용등급 하락 경고는 신용평가기관의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난 내정간섭적 행위라는 게 지배적 비판이다. 또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에는 이같은 신용평가기관의 압박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정권 붕괴시 한국경제에 재앙적 부담이 가해질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북한정권 붕괴를 지지하는 월가의 신용평가기관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미국의 또다른 얼굴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