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11일 북핵사태를 이유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Outlook)을 현재의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내렸다고 재정경제부가 이날 발표했다.
지난달 방한했던 무디스는 오는 4월 방한 때까지 신용등급 전망을 조정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같이 급작스럽게 전망을 하향조정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핵이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
무디스는 이날 오전 뉴욕과 홍콩에서 동시발표한 한국 국가신용등급 자료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서 야기된 안보 문제때문에 한국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포지티브에서 네가티브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무디스는 "북한의 행동과 국제사회의 가능한 대응과 관련된 불확실성의 증대가 한국 신용등급에 대한 호의적 분위기를 감소시켰으며, 만약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계속 악화되면 신용등급을 낮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무디스는 또 "북한의 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추방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영변 핵시설 재가동 등 최근의 일련의 조치가 과거보다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그러나 "서울의 새 정부가 이같은 안보환경의 악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보여왔던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성과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의 이번 조정은 중간단계인 '안정적(Stable)' 전망보다 한단계 낮은 등급으로 2단계가 하향조정된 것이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향후 일정 기한내 국가신용등급 자체가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무디스는 이와 함께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4개 국책 금융기관 및 국민은행의 등급전망도 `부정적`으로 내렸다.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산업은행은 정부의 지분이 높은 준정부기관이라는 점이 반영됐으며 국민은행은 은행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려됐다고 무디스는 설명했다.
무디스는 또 국영기업인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담배인삼공사의 외화표시 채권의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기습적으로 입장 바꾼 배경은?**
재경부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은 무디스의 발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무디스는 북한행동 및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제시하면서 만일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등급상향보다는 하향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발표했다.
권 국장은 최근 무디스의 토마스 번 국가신용등급 담당국장이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급작스레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이뤄진 배경과 관련, "무디스 신용등급평가위원회는 8명의 위원이 참석하기 때문에 번 국장이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좋게 생각하더라도 위원회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답해 이번 결정이 무디스 미국 본사 차원에서 단행된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신용등급조정위원회 개최 시기와 관련해서도 "모른다. 위원회 개최사실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해 우리 정부가 이번 결정과정에 철저히 소외됐음을 드러냈다.
권국장은 지난달 방한시 무디스가 북핵문제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 한국내 상황을 아주 좋게 보고 돌아갔다. 당시 방한했던 두명도 이번 신용등급위원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을 볼 때 이번 신용등급 하향조정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내 긴장도가 높다는 증거로 해석가능하다.
지난달 20~21일 토마스 번 등 무디스 관계자 3명이 방한했을 때 이들의 점검 대상은 촛불시위로 야기된 반미감정, 노무현 당선자의 경제정책 등이었다. 방한해 인수위 등과 만난 뒤 이들은 만족을 표시했고, 미국으로 귀국직후 토마스 번 국장은 공식적으로 "한국의 신용등급은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8명으로 이뤄진 신용등급조정위원회에서 이들의 의견은 소수 의견으로 밀렸고, 결국 신용등급 전망이 두 단계 하향조정되게 된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핵문제로 야기된 북-미 갈등이 한국의 '컨츄리 리스크(국가위험도)'를 증폭시켜 결국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조정된 셈이다.
***출범하는 노무현 정권에게 더없이 큰 짐**
무디스의 기습적 신용등급 하향과 관련, 국내 일각에서는 무디스의 이번 결정의 이면에 미국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대북, 대미정책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고도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할 때 '분단국가'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 컨츄리 리스크가 평균적으로 전체 고려요인중 3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음모론적 접근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게 금융시장의 일반적 견해다.
그보다는 무디스가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하며 그 이유로 "북한의 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추방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영변 핵시설 재가동 등 최근의 일련의 조치가 과거보다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한 대목을 중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란 93~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2차 북핵위기가 1차 위기때보다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돼 귀추가 주목된다.
근원이 무엇이든 간에 무디스의 이번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으로 노무현 당선자는 출범 초기부터 큰 짐을 떠안게 됐다. '네가티브' 전망을 받으면 3~6개월내 신용등급이 낮춰지는 게 통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북핵문제가 노 당선자,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최대 현안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불행한 사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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