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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경보기' 무디스의 전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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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경보기' 무디스의 전횡

<데스크 칼럼> 과연 '정치적 동인' 작용 안했나

"이것은 전횡이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 소식을 접한 한 기업인이 11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무디스에 대한 울분의 토로였다.

이 기업인은 무디스의 이번 조치를 "또하나의 미국식 일방주의"로 규정했다. 미국식 잣대로 한반도 상황을 재단,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정치.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그는 "무디스에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94년 1차 북핵위기때와 너무나 대조적인 무디스의 행보**

무디스는 이번에 '북핵 위기'를 신용등급 전망 하향의 이유로 들었다. 북한이 매우 공격적이고 도발적으로 행동하고 있어 한국의 컨츄리 리스크(국가위험도)가 증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무디스가 지난달 20~21일 조사차 방한했을 때 점검사항은 세 가지였다. 촛불시위로 확산된 반미감정,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정책방향, 그리고 북핵위기였다. 무디스는 이 가운데 반미감정과 정책방향에 대해선 그들의 표현을 빌면 "만족"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북핵위기에 대해선 "위기"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우리나라가 지구상 유일 분단국가이고, 그 결과 컨츄리 리스크 결정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정도가 30%가량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디스의 이번 결정에 대해 곧바로 뭐라 반박하기 힘든 대목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전쟁발발 일보직전까지 갔던 94년 1차 북핵위기때와 비교하면 무디스의 이번 결정은 설득력이 없다. 94년 당시 무디스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1이라는 최고수준으로 유지했었기 때문이다.

94년 연례보고서에서 무디스는 "한국이 90년 4월 취득한 신용등급 A1을 계속 유지키로 했다"며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이에 따른 한국으로의 급속한 통합"이라고 지적했다. 북핵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2차 북핵위기는 아직 긴장도가 94년 수준이 아니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나날이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94년 같이 북한공격을 위해 항공모함 등 미국 전투력이 한반도에 집결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94년 전쟁발발 일보직전의 상황에도 'A1'이라는 최상의 신용등급을 유지했던 무디스가 이번에 'A3'라는 A등급 가운데 최하위인 현재의 등급마저 "A등급은 매우 높은 등급이다.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행동과 대응을 전제했을 때 A등급은 적절치 않다고 무디스는 판단했다"(토마스 번 무디스 국가신용등급담당 부사장)며 B등급으로 하향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분명한 자기모순이며, 일관성의 결여다.

국내 일각에서 무디스의 이번 결정에 '정치적' 동인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무디스와 미국정부의 유착**

무디스는 세계에서 발행되는 채권의 90%가량의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는 세계최대 신용평가기관으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용등급이 한 등급만 떨어져도 연간 5억달러의 외채 이자를 더 물어야 할 정도다. 여기에다가 금융시장이 받게될 타격까지 고려하면 무디스가 한국경제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가공스러울 정도다.

무디스는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는만큼 평소 '객관중립적 평가'를 공언해왔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결정에 그 누구도 입김을 집어넣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무디스의 작업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증거는 무수히 있다.

엔론의 분식회계로 미국이 떠들썩하던 지난해 1월의 일이다.
미 재무부의 대변인 미셸 데이비스는 그해 1월11일(현지시간) “클린턴 정부시절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루빈 시티그룹 공동회장이 지난 11월8일 피터 피셔 국내금융담당 재무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평가기관들이 엔론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지 않도록 채권 은행단이 이들 기관과 협력토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피셔 차관이 루빈 회장에게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으며 신용평가기관들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무부 대변인도 이와 별도로 “지난해 10월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이 에반스 상무장관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엔론사의 부채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엔론사 부채 신용등급을 낮추지 않도록 설득하는 어떤 조치도 환영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그러나 에반스 장관은 이같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와 상무부 대변인의 해명대로라면 무디스는 엔론게이트와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무디스의 그후 행동을 보면 ‘무디스가 과연 무관할까’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무디스는 엔론의 부실은폐 및 이익 허위증식 행위가 밝혀지면서 엔론주가가 대폭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론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무디스가 엔론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치한 것은 12월2일 엔론이 파산신청을 한 다음날인 12월3일의 일이다. 무디스는 3일에야 엔론의 선순위 무보증 채권 등급을 투자적격인 B2투에서 투자부적격인 Ca로 다섯 단계나 하향조정했다. 무디스는 사방에서 엔론을 둘러싸고 난리법석이 나도 ‘울리지 않는 경보기’였던 것이다.

그동안 무디스와 월가, 미 정부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착 관계를 의심해왔던 전문가들은 클린턴 집권시절 미 재무부장관 자격으로 월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로버트 루빈 시티그룹 공동회장이 로비에 나선 대목을 기존의 의혹을 확인시켜준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였다.

루빈은 클린턴정권 시절 자신의 휘하에 있던 피셔 재무부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평가기관들이 엔론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지 않도록 채권 은행단이 이들 기관과 협력토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루빈이 재무장관 시절 채권은행단과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 조정 과정에 협의하도록 역할을 해왔다는 결정적 증거라는 것이다.

무디스는 결코 '객관중립적 평가'만 해온 기관은 아니었던 셈이다.

***월가식 쇼비니즘**

무디스의 자기모순은 9.11테러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치수도인 워싱턴과 경제수도인 뉴욕을 동시에 가격한 9.11테러로 미국 국가신인도와 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만약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 등 다른 국가에서 수도가 테러를 당하며 수천명이 죽는 9.11사태같은 전시(戰時)상황이 발발했다면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즉각 해당 국가나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몇 단계 낮추었을 게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그러나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IBCA 등 월가의 3대 신용평가기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태 발발후 미국 정부나 기업의 신용등급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사태 발발후 이들이 행한 유일한 평가작업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3일 S&P, 14일에는 무디스가 이번 테러로 가장 직접적 타격을 입은 U.S.에어웨이스, 아메리카 워스트 에어라인스 등 일부 미국, 캐나다, 영국 항공사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단계 낮추거나 ‘부정적 관찰대상’으로 올려놓은 게 고작이다.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 테러로 최고 1천억달러(영국 보험회계법인 BNW 딜로이트사의 16일 추정치)의 천문학적 거액을 물어내야 할 위기에 처한 미국최대보험사 AIG, GE캐피털 재보험사업부 등 보험사와 재보험사들을 도리어 적극방어하고 나섰다. 이들은 “문제 보험사들의 피해액은 1백5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피해액이 5백억달러를 넘지 않는한 이들의 튼튼한 재무건전성을 볼 때 별 문제가 안될 것”이라는 이유로 현재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미국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감싸안기 태도로 일관했다. 한 예로 S&P는 2001년 9월14일 “최근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안정돼 있다”며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금리를 추가인하하면 금융부문의 신용은 곧바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평가했다.

아이러니컬한 대목은 미국 국가신인도와 기업의 신용등급에 대해선 이처럼 철저한 방어태도로 일관하는 신용평가기관들이 정작 신흥시장 등에 대해선 9.11사태 직후 매몰차게 신용등급을 하락시켰다는 사실이다.

S&P는 9월15일 9.11사태로 야기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신흥시장에서의 자금이탈 및 경기회복 지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레바논, 터키, 콜럼비아, 필리핀, 자마이카 등의 신용등급을 낮추고 추가등급 하락을 예고하는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았다. S&P 발표후 이들 국가의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9월19일에는 9.11테러가 아시아의 은행과 보험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S&P는 보고서에서 “신흥시장에서 영업중인 외국계 생명보험 및 비생명보험사에 대한 테러 피해보상 청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여기에다가 조만간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수익성과 수지균형 악화가 단기적으로 더 큰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등 서방 생보사들은 끄떡없으나, 아시아 시장쪽은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는 앞뒤 모순된 전망이었다.

***'아무때나 울리는 고장난 경보기'**

무디스의 신뢰는 지난 97년 금융.외환위기때 우리에게 한차례 큰 허점을 드러냈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1이라는 투자적격 상위등급에 올려놓고 있던 무디스는 97년 10월부터 98년 1월사이에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1으로 여섯 단계나 낮춰 국제금융계로부터 ‘울지 않는 경보기’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또한 위기경고 기능은 못하고, 도리어 위기를 심화시키는 작용만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무디스는 평소 뉴욕 도심에서 갱단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기만 해도 뉴욕시가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등급을 낮출 정도로 나름대로 엄격한 신용평가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뉴욕 도심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고 5천여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 앞에서는 ‘월가식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북핵위기를 이유로 우리나라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나 낮춘 것도 이같은 월가식 쇼비니즘의 연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는 시각이 국내에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월가에 영향력이 큰 미국 다수언론이 북핵문제에 대해 부시의 일방주의를 적극 지지하는 논조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 '울지 않는 경보기'였던 무디스가 이번에는 '아무때나 울리는 경보기' '미국보수가 제멋대로 울리는 경보기'로 바뀐 게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시선이다. 한마디로 말해 무디스는 '고장난 경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 안쓰러운 대목은 이같은 고장난 경보기의 경고음에 대한 국내 일부 언론들의 반응이다. 무디스가 북핵위기를 문제삼고 나왔으니 부시 정부와 더이상 잡음을 빚지 말고 부시 말대로 북핵문제를 풀자는 주장, 무디스가 이번 결정을 내린 이면에는 노무현 당선자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 제대로 하라는 주장 등등이 12일자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마치 "기다렸었다"는 인상마저 줄 지경이다. '고장난 경보기'에 놀아나는 '고장난 언론'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호들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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