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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물 건너간 일본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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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물 건너간 일본개조

고이즈미, 기득권층 반발에 '예금부분보장제' 연기

내년 4월로 예정된 일본의 전면적인 예금부분보장제(payoff) 실시가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로 연기되는 쪽으로 급선회, '역시 일본 금융개혁은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사고 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일본 지도부가 금융개혁에 대한 국제사회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림으로써 현재 미국자본주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신뢰의 위기'가 일본으로까지 전염되면서 국제경제를 한층 혼미한 안개국면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꼬리내린 고이즈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는 30일 저녁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금융상에게 "금융 결제기능이 위태로워져서는 안된다. 이를 위한 방안을 조속히 검토해 필요한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야나기사와 금융상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좌예금 등의 전면보호가 (개혁안의) 가능성으로 검토될 것"이라고 밝혀, 기업간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당좌예금 전면보호와 개인 결제성예금 창설 등과 같은 구체적 방안 마련에 착수할 것임을 시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야나기사와 금융상에게 "구조개혁으로서의 페이오프 제도는 실시한다. 그 기본은 흔들림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으나, 금융계에서는 고이즈미 발언이 지난 3월의 '금융위기설'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예금부분보장제의 예외없는 전면시행 방침에서 후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금부분보장제 도입은 고이즈미 선거공약**

고이즈미 총리는 예금부분보장제 실시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예금부분보장제란 금융기관 파산시 고객이 금융기관에 맡긴 돈의 일부만 보장해줌으로써 부실금융기관들을 시장에서 조기퇴출시키는 개혁조치인 동시에, 종전에 고객예금을 전액보장해줌으로써 야기됐던 재정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정방어 조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사태 발발후 IMF권고를 받아들여 이미 이를 전면실시하고 있다.

고이즈미총리는 집권후 시차를 두고 두 단계로 나누어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선 1단계로 지난 4월1일 파산은행의 예금주에 대해 정기적금, 정기예금 등 저축성 예·적금에 대해 원금 1천만엔(1억원)과 이자만을 보호해 주는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이어 2단계로 내년 4월1일부터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보통예금과 당좌예금에 대해서도 예금부분보장제를 전면실시할 예정이었다.

고이즈미총리는 '3월 금융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1단계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최근까지만 해도 2단계 조치도 예정대로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공언해, 국제사회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지방금융기관·야쿠자·자민당 등 기득권층의 연대 압박**

그러나 영세·부실 금융권과 이들의 로비를 받은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최근 제도시행의 연기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들은 경기회복의 확실한 전망이 보이지 않고 주가마저 하락하는 마당에 예금부분보장제를 전면 시행할 경우, 경영기반이 약한 신용금고와 지방은행 등으로부터 일거에 예금이 빠져나가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올해 단행된 1차 예금부분보장제 도입으로도 개인·기업·지방자치제의 저축성 예금이 우량은행으로 대거이동한 것과 마찬가지로, 결제성 예금이 일시에 '안전지대'를 찾아 이동할 경우 금융시스템 마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일본 금융계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일본 은행의 총예금액은 5백9조엔으로 이 가운데 2단계 예금부분보장제 대상인 보통예금은 약 1백96조엔, 당좌예금은 약 22조엔에 달하고 있다. 총예금액의 40%이상이 2단계 예금부분보장제 실시대상인 것이다.

2단계 조치가 시행될 경우 지역에 기반을 둔 신용금고와 지방은행에서 우선적으로 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돼왔다. 문제는 이들 신용금고와 지방은행이 지역구 의원 등 정치권의 '돈줄'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신용금고 등에는 일본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야쿠자도 깊게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집권 자민당은 2단계 조치 실시에 거세게 항의했고, 당내 기반이 취약한 데다가 대중적 지지도 급속히 낮아지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는 마침내 기득권층의 저항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쿼바디스, 니폰?"**

신용금고나 지방은행 등은 당연히 고이즈미의 백기항복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일단 발등의 불을 껐다는 식의 반응이다.

문제는 그러나 일본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냉랭한 반응이다. 국제사회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고이즈미의 백기항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일본금융계의 '투명성'을 크게 의심해왔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일본금융계 부실채권 규모는 26조엔.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부실채권 규모는 최고 1백조엔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서방전문가들도 적지않다.

이들은 2단계 예금부분보장제가 실시되면, 부실금융기관이 퇴출되면서 은폐된 부실채권의 상당 부분이 실체를 드러내고 그만큼 시장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백기항복으로 그 가능성은 물 건너 간 셈이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도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 소니, 도요타 등 일본의 간판급 기업들은 "일본의 낙후된 금융이 일본의 선진 제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따라서 고이즈미가 경쟁력을 상실한 기득권층에 굴복하지 않고 대대적인 금융개혁을 단행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들 역시 배신당한 셈이다.

소니는 이미 올 들어 더이상 일본 금융기관들과는 주요 금융거래를 하지 않고, 신용등급이 최소한 소니보다 높은 서방금융기관들과만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과 함께 망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소니의 거래중단 발표는 일본금융계에 대한 사망선고에 다름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같은 시장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금융개혁을 사실상 포기했다.

"쿼바디스, 니폰?(일본이여 어디로 가려는가)". 지금 국제사회가 일본에 던지는 우려섞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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