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총리가 조지 W.부시 미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도리어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더이상 고이즈미에게 기대를 걸기 힘들다는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이를 기화로 일본내 정적(政敵)들의 반(反) 고이즈미 공세도 불을 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에게는 경제위기 극복 능력 없어**
미국의 비즈니스 위크지는 22일 "부시가 겉으로는 고이즈미를 외교적으로 칭찬했지만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하기 힘들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면서 "고이즈미는 앞으로 6개월을 버티키 힘들 것"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 잡지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성장을 위해 제대로 개혁조치해 밀어붙였다면 현재의 불황에 대해 고이즈미가 이처럼 수세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고이즈미가 일본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잃어가고 있어 경제위기를 극복해 낼 힘이 없는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일본은 과도한 부채, 잉여시설, 남아도는 노동력 등을 해결하기도 전에 이미 높은 실업률과 기업파산에 경제가 허덕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자민당은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어 고이즈미는 자기 당으로부터도 충분한 지원을 받지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부시 방일 직후"부시조차 고이즈미로부터 일본의 금융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이끌어 내지 못해 이에 실망한 일본의 증시가 대폭락했다"며 "고이즈미가 잽을 피하다가 정통으로 주먹을 맞게 생긴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역시 "세계는 더이상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일본에게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며 "일본경제에 대한 유일한 논쟁은 불황이 얼마나 깊고 오래갈 것인가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보도했다.
***다나카, "고이즈미야말로 반개혁 세력"**
외부의 시선만 싸늘한 게 아니다. 일본 내부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고이즈미는 부시가 떠난 직후 한 때 '정치적 부부'라고 불렸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전외상으로부터 "고이즈미 자신이 바로 (개혁의) 저항세력"이라고 통렬한 공개비판을 받았다.
다나카는 고이즈미가 자신과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중 어느쪽 손을 들어주느냐의 갈등에서 자기를 버렸다는 점에서 특히 배신감에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즈키 의원은 자민당내 최대파벌로 고이즈미 개혁노선의 저항세력으로 꼽히는 하시모토(橋本)파이다. 자민당내의 지원이 아쉬웠던 고이즈미가 결국 다나카를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다나카 전외상의 이같은 발언이 나온 이후 한때 80%까지 올랐던 고이즈미의 국민지지도가 40%대로 떨어졌다.
다나카의 '저항세력'발언에 대해 일본야후와 교도(共同)통신이 인터넷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6%가 "잘했다"고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인 다나카 전외상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여성층에서 고이즈미 지지의사를 철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고이즈미는 "최근 환갑을 맞고 보니 나이 60에 여자와 헤어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하고 "헤어지는 법을 배워두었어야 했다"고 씁쓸해했다고 일본 아사히 신문이 22일 보도하기도 했다.
1942년 1월생인 고이즈미 총리는 이혼 경력의 독신남으로 두살 아래인 다나카는 지난해 4월 자민당총재 선거 때 "고이즈미를 (정치적)부인으로서 지지하고 있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고이즈미와 가까웠었다.
***다나카를 차기총리로 내세우자**
다나카는 고이즈미 행정부내의 반대파 의원들과 함께 새로운 법안을 준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고이즈미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공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호기로 잡은 야당들의 공세도 거세다. 야당측은 "부실채권 현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금융기관의 자본 잠식 문제를 솔직하게 처리하지 않는 한 일본의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고 공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조기 내각해산-총선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본 야당들은 아예 연합전선을 구축해 다나카를 총리로 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대표는 "고이즈미 총리와 협력해 이 나라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조개혁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라면서 고이즈미 정권과 전면 대결할 생각임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예금부분보장제가 실시되는 4월 전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라는 설을 일축했다. 고이즈미가 개혁을 추진해나갈 돌파력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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