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한국금융연구원 주최로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부문 구조개혁 종합평가 국제심포지엄" 현장. 금융위기 이후 지난 4년간 단행한 금융개혁의 성과와 반성을 정리하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해외일각에서 "한국금융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나름대로 괄목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를 통해 아직 우리 금융개혁은 '진행형'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선진금융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날 축사를 한 진념 경제부총리는 "외환위기이후 개혁은 과거 수십년간의 '압축성장'과정에서 나온 문제들을 '압축개혁'을 통해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개혁을 통해 큰 틀은 잡혔지만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잘 작동되도록 할 것인가는 과제로 남아 있다"며 "이같은 개혁의 성과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평가에 따르는 반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 조기 민영화 주장이 대세**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구조조정 과정에 국유화된 은행의 민영화 문제였다. 이는 공적자금 회수와 관치금융을 벗어난 효율적 경영을 위해서 필수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 보유지분의 매각을 소화할 투자자는 해외나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헐값매각과 대기업의 사금고화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계속됐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 은행민영화는 부분매각이나 순차적 매각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 추이를 감안할 때 수년내에 국내 은행산업의 주가 수준이 크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은행 민영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90년초 국내 은행산업의 주가 수준을 100으로 보았을 때 현재는 20 정도 수준에 불과해 국내 은행산업의 주가수준은 앞으로 과거 박스권인 60~80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이날 삼성경제연구소도 '금융 구조조정 이후 3대 현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구조조정을 거친 은행의 보유 지분을 매각해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매각손실이 커 공적자금 회수율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은행 민영화 시기는 실물경기의 회복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 하반기가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로 나선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은행 민영화를 위한 매각에서 제값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기를 놓쳐선 안된다'며 조속한 추진을 주장했다.
폴 그린왈드 IMF(국제통화기금) 서울사무소 대표도 "빠른 해외매각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해외 투자가들에게 은행을 매각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고, 호리우치 일본 도쿄대 교수도 '은행의 국유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신속한 해외매각에 찬성표를 던졌다.
***대기업의 은행소유에는 반대여론이 지배적**
그러나 은행 민영화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대 교수는 "은행 민영화에 대기업이 참여하여 은행돈을 함부로 주무르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까지 나는 기업이 은행지분을 보유해도 상세한 규정과 엄격한 감독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엔론 사태를 겪으면서 자신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주주가 이사진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는 미국 시스템에서조차 엔론 사태가 일어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리우치 아키요시 도쿄대 교수도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아직 증권시장이 개별기업의 경영능력을 계산해 내는 능력이 없다. 이 틈에 대기업이 정치적 힘을 활용해 은행경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한국은 채권은행이 기업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키워야 한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면 소프트론(Soft loan·엄밀한 심사를 거치지 않은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아이켄그린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호리우치 교수는 "건전한 금융시스템이 기업활동을 감시하고, 생산성 향상을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지배구조는 아직 손대지 못한 부분"이라면서 금융산업 발전의 선제조건인 기업구조조정이 미진함을 지적했다.
***공적자금 투입 효과는 10배 이상**
그동안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도 관치금융 시비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병덕 위원은 공적자금은 금융시스템 붕괴로 초래될 엄청난 손실을 적은 비용으로 막았다고 주장했다.
김위원은 "공적자금이 집행되지 않았더라면 경제적으로 추산이 불가능한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라며 "문제에 대한 과감한 인식과 신속한 구조조정 정책으로 국내외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후 빠른 속도의 경제회복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했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효과 중 수치로 표현가능한 성과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지난 4년간 589조원 축소시켰고 약 106억달러의 외채이자 경감과 764조원 정도의 기업 및 가계 이자부담을 줄여, 총 1천3백67조원의 기회이익(간접효과)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정부와 금융권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 98년 상반기 1백18조원 규모로 추정되던 금융권 부실여신이 지난해 6월말에는 49조8000억원으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한국 금융권의 잠재부실 중 3분의 2는 인식되었으나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두지 못한 상태로 현재 70~80조 정도만 처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적으로 부실채권은 60%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므로 이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실채권 처리가 제대로 되어야 금융건전화의 전제조건인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교수는 "기업의 부채비율이 아직도 높은데 금리가 상승하면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또다른 금융부실의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금융당국이 경고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채권 시장 활성화 해야**
금융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서 기업구조개선과 함께 아쉬웠던 점으로 지적된 것은 한국의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이었다.
폴 그룬왈드 IMF 서울사무소 소장은 "한국이 금융산업의 민영화를 잘 추진하고 있지만 외환과 장기 채권시장은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라며 "금융시장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룬왈드 소장은 "한국의 외환시장은 아직도 정부 개입이 많아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며 "기업들도 외환변동에 대한 위험회피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의 채권시장은 장기채권 발행 등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봉진 한국경제신문 사장실장도 "보험사가 10년 만기채를 구입해 두면 보험금 지급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장기채권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