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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니까 청춘이다?

[과로死회] ① TVN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과 방송 업계 내 청년 과로

청년 전태일의 죽음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해 10월 26일 거대 미디어콘텐츠 그룹 CJ E&M의 신입 조연출 PD인 청년 이한빛은 유서를 남겼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그리고 스물일곱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tn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의 조사 결과, 이한빛 PD는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부여, 모욕 등을 겪어왔다. 그의 핸드폰 기록을 살핀 결과, 55일 동안 발신 통화 건수만 1547건이었는데 하루 최대 94건이 발신되기도 하였다. 촬영이 새벽 2~3시에 끝나면 또 새벽 7시에 집합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살인적으로 일하면서도 이한빛 PD는 그룹 메신저 방에서 욕까지 먹어야 했다. 주로 상급자들의 비아냥거림이었다. 연출 책임자들은 조연출에게 온갖 궂은일을 시키면서도 제대로 못한다고 괴롭히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원래 이 바닥이 그렇다', '막내들은 그런 일 다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방송 분야 노동현장의 현주소이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헬조선'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책위원회의 제보센터에 접수된 내용은 주로 장시간 노동, 저임금, 폭력적인 현장, 불안정한 고용 형태 등에 대한 것이었다, 제보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방송계 종사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에 달했고 평균 휴일은 주 0.9일이었다. 월 단위로 계산하면 평균 노동시간은 약 460시간이다. 더구나 현장에서 언어폭력, 성폭력이 다반사로 일어나며, 비정규직 스텝은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한빛 PD는 상습적인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왔고 밑의 사람을 해고하거나 관리해야 하는 궂은 일로 큰 부담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스텝들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수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조차 번번이 출근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빛 PD의 감수성은 '내'가 착취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남'을 착취했다고 고통스럽게 토로하고 있다.

촉망받는 미래를 가지고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던 젊은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한빛 PD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그를 위해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과로는 합법이었다. 또한 넘쳐나는 업무 현장의 폭력과 괴롭힘, 넘쳐나는 비정규직을 수시로 해고해야 하는 고통도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시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규제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바로 물리적, 정신적 '과로'로 인한 '사회로부터의 죽임'이었다. 이와 같은 조건이 매우 관행적이며 또한 합법적이라는 것이 또다시 '구조화된 폭력'을 낳는 결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죽음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노동자에 대한 가학적 괴롭힘 등과 싸워나갈 것이다. 죽도록 일할 수 있는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학대받는 노동현장이 21세기 한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드러난 것은 조족지혈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현장에서 현재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과로死회' 연재를 통해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를 찾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할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정병욱 변호사는 '(가)과로사예방센터'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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