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PD)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선망의 직업이다. 텔레비전(TV) 프로그램 하나로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리는 것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다.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소위 '잘 팔리는 프로'가 될 경우 부와 명예도 뒤따른다. '이름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 PD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상당수 PD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보장하는 방송사 PD가 되기란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에 가깝다. 결국 독립 PD가 돼 떠돌이처럼 외주 제작사를 전전하며 고정된 수입원 없이 일하기 일쑤다.(☞ 관련기사 보기 : "외주 PD "종편까지 생기니 '빵 셔틀'만 늘었네요"" )
이들은 바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형 방송국에 '납품'한다. 제 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그 프로그램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다. 독립 PD, 외주 PD는 '이름 없는 PD'의 다른 말이다.
화려한 방송 뒤 가려진 외주 PD들의 설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얻고자 <프레시안> 기자는 직접 외주 제작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2회에 걸쳐 나올 르포 기사는 기자가 2박 3일 간 한 외주제작사의 견습생이 되어 외주 PD들을 지켜본 관찰기다. 편집자주.
Scene#1. 방송 D-2, 사무실. 첫 만남.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괜찮겠어? 내일은 밤도 새워야 할 텐데?"
"괜찮다"는 대답에도 여전히 마뜩잖은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이 '바닥'에선 체력이 1순위지."
남다른 체격을 자랑하는 10년 차 베테랑 김종태(가명·37) PD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30분 후 촬영 나갈 테니 준비를 하라고 내게 일렀다. 그러곤 터덜터덜 제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에 코를 박는다.
온 벽면을 테이프꽂이로 장식한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스무 명 남짓. 다들 김 PD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 각자 세상에 빠져 있다. 한 명 한 명 소개받은 적은 없지만 누가 작가이고, 누가 PD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단정한 코트 차림에 체구가 왜소하면 작가, 후줄근한 점퍼 차림에 후덕한 몸매라면 PD다. '위장 견학' 사전 준비를 위해 만난 '짬' 높은 외주사 PD가 알려준 쉬운 구별법이다. 예상은 맞았다. 점퍼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굴러다니던 카메라, 삼각대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윽고 그들과 비슷한 차림새의 김 PD로부터 출격 신호가 떨어졌다. 그는 나에게 비교적 가벼운 삼각대 운반을 맡겼다.
"이따 촬영 가서 넌 마이크만 들면 돼. 와이어리스(무선), 네모난 마이크. 어떤 건지 알지? 카메라 앵글 걸리지 않게 좀 아래로 내려서 명치 부근에 대고."
'원맨쇼'하는 독립 PD들 "프로그램 결방하면 그때가 휴가"
S#2. 방송 D-2, 촬영 가는 차 안.
매일 방송되는 TV 정보 프로그램의 주 시청 층은 역시 주부들이다. 김 PD는 오늘도 주부 한 명을 인터뷰하러 간다. 목적지는 경기도의 어느 마을. 차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을 켜 예상 소요시간을 확인하니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이 훌쩍 넘는 거리였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이미 두 차례 촬영이 끝났고, 지금이 마지막 촬영이다. 내가 오기 전 나머지 두 번의 촬영은 김 PD 혼자 갔다고 했다.
"혼자 다 해야지. 혼자 카메라 들고, 혼자 마이크 대고, 혼자 인터뷰 진행하고. 그리고 나중에 편집할 때도 혼자 다 해. 운전도 내가 하잖아. 원래 그래. 사람이 없는데 누가 도와줘."
방송국 본사 PD들은 한 번 촬영 나갈 때마다 조연출, 카메라맨 등등을 대동한다. 그러나 방송국 소속이 아닌 독립 PD들은 '원맨쇼'를 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방송국) 본사 PD가 좋지. 똑같은 PD 직함 다는데도 완전 천지 차이니까."
그는 본사 PD와 독립 PD는 제작 환경부터가 '천지 차이'라고 했다.
"본사 PD들 중엔 대표작도 없으면서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아. 물론 다 그렇단 얘긴 아니지만. 본사 PD들이 우리를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외주 PD들이 하면 프로그램 퀄리티(질)가 떨어진다는 거야. 사실 본사 PD들이 월등하게 실력이 더 좋다고 보기도 힘들어. 그 사람들은 대신 시간이 많을 뿐인 거지. 우리도 그 정도의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퀄리티 있게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일단 떨어지는 프로그램들이 정보 프로그램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퀄리티 있는 프로그램을 할 기회도 없고, 또 각자 여유가 생길 만큼의 인력도 없으니까 안 되는 거야."
외주제작사에서 본사 프로그램 계약을 따내면, 프로그램 내 5분에서 10분 사이의 각 꼭지를 제작사 소속 PD들이 나눠 맡는다. PD들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납품 기일'을 엄수해야 한다. 납품을 못 하면 바로 '아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장과 작가 회의를 거쳐 아이템이 확정된 다음 PD 혼자 촬영, 편집을 하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빠듯하다.
"휴가는 꿈도 못 꾸지. 주말에 쉰 적이 거의 없어. 설날이나 크리스마스도 다 마찬가지야. 올림픽 같은 대회 경기가 긴급 편성돼서 어쩌다 한 번 결방하면 그때가 휴가야."
"여기 회사 이름이 뭐더라…" 이직 거듭하는 '메뚜기' 운명
시간, 그다음 부족한 것은 '돈'이다.
"본사 PD들이 월급이 훨씬 많지. 정규직이니까 잘릴 위험도 없고. 우린 프로그램에서 잘리면 그 프로그램을 맡은 외주사를 다시 찾아야 하는데, 못 찾으면 손가락 빠는 거고. 수입원이 불안정해."
본사와 제작사가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고, 독립 PD들 역시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를 옮겨 다녀야 한다. 그래서 이 바닥에선 '고용계약서'라는 게 따로 없다. '4대 보험 보장'도 이들과는 상관없는 구호다.
"지난번 회사에서 나온 이유가 그때 맡았던 프로그램이 PD들 사이에선 '지옥'으로 불리던 프로였거든. 보통 하루 이틀만 밤새우면 되는데 거기선 사흘 밤낮을 밤을 새워도 안 끝나는 거야. 워낙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나중엔 원형 탈모가 오더라고. 근데 산재 처리도 안 되니 어쩌겠어. 내가 그만두는 수밖에."
김 PD는 지난해 12월 현재 제작사로 건너왔다. 10년 경력을 쌓는 동안 그는 이름들을 다 기억을 못할 정도로 많은 제작사들을 거쳐왔다.
"보통 1~2년 정도 있었고, 제일 오래 있던 곳이 3년. 몇 개월 단위로 짧게 짧게 다닌 적도 많아. A, B, C, 그리고 여기 회사 이름이 뭐더라. 하도 많아서 이름들이 헷갈리네."
한 회사에 머무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동료들과의 관계도 깊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다.
"사실 나도 누가 누군지, 누가 뭘 하는지 몰라. 그냥 사무실에 오면 '아, 저분도 여기 다니시는구나' 하는 거야."
김 PD는 무엇보다 본사 PD들로부터 인간적 모멸감을 느낄 때 제일 힘들다고 했다.
“CP(책임프로듀서)들은 시청률이 좀 낮다고 외주사를 하루아침에 자르면서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말해. 사실 우리가 광고를 벌어다 주고 본사 PD들도 그 돈으로 월급 받는 거잖아. 같은 PD인데도 언제든 자르고 무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면 솔직히 기분이 안 좋지.”
"그래도 PD가 되고 싶다"고 하자, 김 PD는 뜯어말리기로 작정을 한 듯 "정말 이거(PD) 아니면 죽을 것 같다 싶을 때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말 못하는 PD들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괜찮겠어? 내일은 밤도 새워야 할 텐데?"
"괜찮다"는 대답에도 여전히 마뜩잖은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이 '바닥'에선 체력이 1순위지."
남다른 체격을 자랑하는 10년 차 베테랑 김종태(가명·37) PD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30분 후 촬영 나갈 테니 준비를 하라고 내게 일렀다. 그러곤 터덜터덜 제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에 코를 박는다.
온 벽면을 테이프꽂이로 장식한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스무 명 남짓. 다들 김 PD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 각자 세상에 빠져 있다. 한 명 한 명 소개받은 적은 없지만 누가 작가이고, 누가 PD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단정한 코트 차림에 체구가 왜소하면 작가, 후줄근한 점퍼 차림에 후덕한 몸매라면 PD다. '위장 견학' 사전 준비를 위해 만난 '짬' 높은 외주사 PD가 알려준 쉬운 구별법이다. 예상은 맞았다. 점퍼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굴러다니던 카메라, 삼각대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윽고 그들과 비슷한 차림새의 김 PD로부터 출격 신호가 떨어졌다. 그는 나에게 비교적 가벼운 삼각대 운반을 맡겼다.
"이따 촬영 가서 넌 마이크만 들면 돼. 와이어리스(무선), 네모난 마이크. 어떤 건지 알지? 카메라 앵글 걸리지 않게 좀 아래로 내려서 명치 부근에 대고."
'원맨쇼'하는 독립 PD들 "프로그램 결방하면 그때가 휴가"
S#2. 방송 D-2, 촬영 가는 차 안.
매일 방송되는 TV 정보 프로그램의 주 시청 층은 역시 주부들이다. 김 PD는 오늘도 주부 한 명을 인터뷰하러 간다. 목적지는 경기도의 어느 마을. 차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을 켜 예상 소요시간을 확인하니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이 훌쩍 넘는 거리였다.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이미 두 차례 촬영이 끝났고, 지금이 마지막 촬영이다. 내가 오기 전 나머지 두 번의 촬영은 김 PD 혼자 갔다고 했다.
"혼자 다 해야지. 혼자 카메라 들고, 혼자 마이크 대고, 혼자 인터뷰 진행하고. 그리고 나중에 편집할 때도 혼자 다 해. 운전도 내가 하잖아. 원래 그래. 사람이 없는데 누가 도와줘."
방송국 본사 PD들은 한 번 촬영 나갈 때마다 조연출, 카메라맨 등등을 대동한다. 그러나 방송국 소속이 아닌 독립 PD들은 '원맨쇼'를 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방송국) 본사 PD가 좋지. 똑같은 PD 직함 다는데도 완전 천지 차이니까."
그는 본사 PD와 독립 PD는 제작 환경부터가 '천지 차이'라고 했다.
"본사 PD들 중엔 대표작도 없으면서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아. 물론 다 그렇단 얘긴 아니지만. 본사 PD들이 우리를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외주 PD들이 하면 프로그램 퀄리티(질)가 떨어진다는 거야. 사실 본사 PD들이 월등하게 실력이 더 좋다고 보기도 힘들어. 그 사람들은 대신 시간이 많을 뿐인 거지. 우리도 그 정도의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퀄리티 있게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일단 떨어지는 프로그램들이 정보 프로그램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퀄리티 있는 프로그램을 할 기회도 없고, 또 각자 여유가 생길 만큼의 인력도 없으니까 안 되는 거야."
외주제작사에서 본사 프로그램 계약을 따내면, 프로그램 내 5분에서 10분 사이의 각 꼭지를 제작사 소속 PD들이 나눠 맡는다. PD들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납품 기일'을 엄수해야 한다. 납품을 못 하면 바로 '아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장과 작가 회의를 거쳐 아이템이 확정된 다음 PD 혼자 촬영, 편집을 하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빠듯하다.
"휴가는 꿈도 못 꾸지. 주말에 쉰 적이 거의 없어. 설날이나 크리스마스도 다 마찬가지야. 올림픽 같은 대회 경기가 긴급 편성돼서 어쩌다 한 번 결방하면 그때가 휴가야."
"여기 회사 이름이 뭐더라…" 이직 거듭하는 '메뚜기' 운명
"본사 PD들이 월급이 훨씬 많지. 정규직이니까 잘릴 위험도 없고. 우린 프로그램에서 잘리면 그 프로그램을 맡은 외주사를 다시 찾아야 하는데, 못 찾으면 손가락 빠는 거고. 수입원이 불안정해."
본사와 제작사가 프로그램 단위로 계약하고, 독립 PD들 역시 프로그램에 따라 회사를 옮겨 다녀야 한다. 그래서 이 바닥에선 '고용계약서'라는 게 따로 없다. '4대 보험 보장'도 이들과는 상관없는 구호다.
"지난번 회사에서 나온 이유가 그때 맡았던 프로그램이 PD들 사이에선 '지옥'으로 불리던 프로였거든. 보통 하루 이틀만 밤새우면 되는데 거기선 사흘 밤낮을 밤을 새워도 안 끝나는 거야. 워낙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나중엔 원형 탈모가 오더라고. 근데 산재 처리도 안 되니 어쩌겠어. 내가 그만두는 수밖에."
김 PD는 지난해 12월 현재 제작사로 건너왔다. 10년 경력을 쌓는 동안 그는 이름들을 다 기억을 못할 정도로 많은 제작사들을 거쳐왔다.
"보통 1~2년 정도 있었고, 제일 오래 있던 곳이 3년. 몇 개월 단위로 짧게 짧게 다닌 적도 많아. A, B, C, 그리고 여기 회사 이름이 뭐더라. 하도 많아서 이름들이 헷갈리네."
한 회사에 머무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동료들과의 관계도 깊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다.
"사실 나도 누가 누군지, 누가 뭘 하는지 몰라. 그냥 사무실에 오면 '아, 저분도 여기 다니시는구나' 하는 거야."
김 PD는 무엇보다 본사 PD들로부터 인간적 모멸감을 느낄 때 제일 힘들다고 했다.
“CP(책임프로듀서)들은 시청률이 좀 낮다고 외주사를 하루아침에 자르면서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말해. 사실 우리가 광고를 벌어다 주고 본사 PD들도 그 돈으로 월급 받는 거잖아. 같은 PD인데도 언제든 자르고 무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면 솔직히 기분이 안 좋지.”
"그래도 PD가 되고 싶다"고 하자, 김 PD는 뜯어말리기로 작정을 한 듯 "정말 이거(PD) 아니면 죽을 것 같다 싶을 때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말 못하는 PD들
S#3. 방송 D-2, 촬영지 도착.
"어머님. △△△ 프로에서 나왔는데요. 잠깐 인터뷰 좀…"
촬영지에 도착해 일단 지역 주민들 인터뷰부터 하기로 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주민들에게 인터뷰를 청해보지만 쉽지 않다. 누구나 아는 지상파 방송국의 프로그램임에도, 김 PD가 들이대는 카메라에는 방송국 로고 하나 박혀있지 않았다. 칼바람을 맞으며 30분 넘게 시도했지만, 다들 못 본 척 바삐 걸음을 옮긴다. 결국 주민들 인터뷰는 포기하기로 했다.
인터뷰 주인공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인터뷰이가 문을 열면서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 방송국에서 오셨구나?"
인터뷰이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 네…"
김 PD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마 인터뷰이는 우리가 당연히 방송사 소속 직원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S#4. 방송 D-2, 촬영 끝나고 돌아가는 길.
촬영은 두 시간여 만에 끝났다. 주먹 크기보다 작은 마이크 하나 들었을 뿐인데도 손목, 팔목이 저려왔다. 반면 3킬로그램이 넘는 카메라를 어깨에 이고 있던 김 PD는 아픈 내색 한 번 않는다. 그는 "생활이라 익숙하다"고 했다. 팔 근육이 쉴 틈도 없이 그는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다음날 수월하게 편집하려면 이날 안에 작가들에게 프리뷰(대화 내용 등 촬영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는 일. 편집자주)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터뷰 내용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촬영하다 보면 당연히 방송사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방송이 외주에서 제작된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니까. 사람들이 내가 방송국 직원이라고 착각하는 덕분에 방금처럼 취재가 쉽게 될 때도 있지만, 어느 방송국인지 밝히지 않으면 아까 동네 주민들처럼 그냥 무시하고 가버리는 거지. 그런 데서 방송국이라는 곳이 대단한 게 느껴져. 제작사 이름 말하면 누가 알겠어. 똑같은 PD라도 어딘가 소속이 있어야 인정을 받아. 그런 거 생각하면 케이블TV 방송국이라도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해. 가족들도 그걸 원하는 눈치야."
외주 PD와 같은 독립 PD들은 '반쪽 짜리 PD'라는 얘기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오전부터 계속된 강행군을 마치고 늦은 밤 서울로 돌아가는 그의 표정은 씁쓸해보였다.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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