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2014년 10월 이곳 콜센터 직원이 자살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두 번째 자살자다.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상담팀장이 자살하며 남긴 메모에는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실습생이 살인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취업 5개월 만에 자살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에서는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여고생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6시 이후 연장근무, 그리고 부당한 지시(TV 판매 등)나 목표(call수) 할당은 강요하지 않았다." LG유플러스 협력회사 LB휴넷
현장실습생 홍 씨의 죽음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홍 씨가 근무했던 LG유플러스 협력회사 LB휴넷에서 내놓은 해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앞서 홍 씨 아버지는 언론에 홍 씨와 생전 주고받았던 문자를 공개하면서 고인이 6시 이후에도 연장근무를 해왔음을 밝힌 바 있다.
<프레시안>이 홍 씨와 같은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에게 받은 제보 내용을 보면 회사의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현직 LG유플러스 전주센터 상담사 "구조 자체가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 퇴근 시간이 오후 6시로 돼 있지만 현실여건상 그렇게 퇴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주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구조 자체가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오후 7시까지 남는 이유는 업무 시간 안에 할당 콜(call) 수를 못 채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에는 걸려오는 민원 상담 전화를 받기 바쁘다. 그리고 이러한 상담 전화 관련 할당량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장시간이 소요되는 민원 전화는 추후 전화를 하겠다고 예약을 잡는다. 퇴근시간 이후 업무는 이런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는 게 주를 이룬다. 물론, 이외에도 업무 시간에 하지 못한 민원 처리 업무도 해야 한다."
전주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팀장은 콜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업무처리를 마칠 때까지 남아서 이들 업무가 제대로 진행됐는지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업무는 연장 근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낮에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저녁으로 미뤄서 처리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시스템상 업무시간 외에는 전화업무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작 다른 방식으로 전화 업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이렇게까지 일처리를 하는 이유는 급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할당된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그 비율만큼 급여에서 삭감된다는 것. 그렇기에 업무 시간 외에도 할당된 콜수를 채우기 위해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자발적 근무로 보고 연장근무 수당을 주지 않고 있다.
자살한 홍 씨의 경우, 일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시간외 근무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로 밀린 업무처리, 교육 등은 퇴근 시간 이후에...
그렇다면 업무 시간 내에 왜 할당된 콜수를 채우지 못하는 걸까. A씨는 하루 35~40콜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이는 팀과 개인 근속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상담사의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전주센터에서 근무하는 B씨는 업무 시간 내에 강한 압박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팀장, 실장, 센터장의 PC에서는 실시간으로 상담사 통화시간, 고객대기 시간 및 숫자 등과 관련한 모든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상담사에게는 상담통화 종료 후 후처리란 시간이 있다. 후처리란 말 그대로 고객이 요청한 건 관련, 처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10초만 지나도 팀장에게 지적이 돌아온다. 고객 대기가 있으니 걸려온 전화부터 받으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련 처리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처리가 뒤로 밀리면서 자연히 퇴근시간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는 것. B씨는 업무 시간 이후에는 이렇게 미뤄진 업무 이외에, 교육도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팀장은 자기 팀 실적이나 자기 팀 소속 상담사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업무 시간 이후에 교육을 시킨다"며 "녹음된 자기의 응대 콜을 듣고 스크립트(받아쓰기)를 하도록 한다"며 "이는 저녁 9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A씨도 "오늘 영업 잘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 녹취 내용을 들어보라면서 전달할 때가 많다"며 "그러면 이 녹취 파일을 들으며 어떻게 상담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업무 시간 이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업무시간 3분 전에는 무조건 로그인
"LG유플러스 고객센터는 한 달에 한 번 '우리식구만나기'라는 행사가 있다. 그달 MVP, 우수팀 등 시상 및 센터장, 전무 인삿말 등을 하는 행사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오전 8시까지 회사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 행사마저 '오티수당' 신청은 불가능하다. 이번 달은 홍 양 사건으로 취소되었다."
반면, 업무 시간 준수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업무시작 시간 3분 전에는 고객 전산프로그램에 무조건 로그인해야 한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 시간 내에 로그인 안 할 경우, 곧바로 위에서 지적이 들어온다. 또한 고객과의 통화 전 시간, 즉 대기시간이 길면 대기시간이 길다고 피드백이 들어온다. 게다가 하루에 많으면 두 번 가는 휴식시간에도 제지가 들어온다. 한 번 가는데 10분을 넘기면 거기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이마저도 '하루 휴식시간 20분 이상 사용 금지' 지시를 내린 부서도 있다."
B씨는 "몇 년 전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분이 자살하면서 고발성 유서를 남겼지만 개선된 건 극히 드물다"며 "그나마 개선된(시간외 근무 금지) 사항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대책회의는 13일 LB 휴넷 신도림 서부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인 LG유플러스와 해당 업체인 LB휴넷은 고인의 사망 51일째인 오늘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한술 더 떠 '노동자들의 죽음과 업무스트레스는 관련이 없다'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4년 이미 한 노동자가 자살했음에도, 회사의 노동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고, 감정노동에서 비롯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며 "더 이상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당 업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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