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2014년 10월 이곳 콜센터 직원이 자살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두 번째 자살자다.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상담팀장이 자살하며 남긴 메모에는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실습생이 살인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취업 5개월 만에 자살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은 홍 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전북 전주를 찾았다.편집자.
칸막이로 가려진 책상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 칸막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사무실 벽면에는 고객과 상담할 때의 태도를 공지하는 문구가 적힌 대형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일등 DNA로 무장한 강한 홈 CVC(고객상담센터)
경청과 배려가 살아 숨 쉬는 즐거운 직장으로 고객관점 상담...
사무실 출입구에는 드라마 <피고인>을 패러디한 광고 선전지가 붙어 있었다. 직원 중에서 새로 일할 사람을 데려올 경우, 한 명당 25만 원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출입구 옆에는 상담노동자들이 잘 보이도록 '해지등록률'' 순위표를 게시해 놓았다. 전주 상담센터 내 팀별, 그리고 전국 센터별로 해지등록률을 집계한 순위표였다.
"너 이번 달에 TV 몇 개 했냐?"
"몇 개 못했어."
"너 그러면서 지난달에도 판매 상위권이었잖아."
점심시간 엘리베이터에서는 상담노동자들끼리 이번 달에 TV 몇 대를 팔았는지 확인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떨어진 할당량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각자의 노하우를 주고받기도 했다.
홍 씨가 일한 해지 방어 부서는?
전주시청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대우빌딩. 이곳 15층부터 17층은 LG유플러스 고객상담 사무실이다. 이중 17층에 'SAVE' 부서, 즉.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을 담당하는 부서가 자리 잡고 있다. 내부에서는 '해지 방어' 부서라고도 부른다. 고객이 인터넷 등 계약해지를 위해 전화를 하면 이를 막는 일을 하는 셈이다.
지난 1월 23일 저수지에 몸을 던진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일하던 곳이다.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홍 씨는 졸업을 앞두고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홍 씨는 업무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 관련기사 : 'SAVE' 업무는 19세 여고생을 자살로 몰아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홍 씨가 일한 'SAVE' 부서는 업무스트레스가 심각하기로 유명하다. 해지를 하려 전화한 고객에게 정작 해지하지 말라고 제지해야 하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일. 홍 씨가 일한 업무를 '욕받이' 업무라고 칭할 정도다.
게다가 회사는 이들 상담사에게 팀별로 목표 해지등록률을 할당하고 여기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두고 순위를 매겼다. 그에 따른 성과급은 당연한 결과였다. 예를 들어 해지등록률이 10%라고 하면 100명에게 해지 전화를 받아 그중 90명의 해지를 막았다는 의미다. 회사는 이러한 해지등록률 순위판을 사무실 입구에 세워놓았다.
뿐만 아니라 상품 판매 실적도 강요받았다. 매일 팀 별로 판매할 상품이 할당됐고, 그에 따른 압력이 위에서 내려왔다. 팀 별로 판매 실적을 비교하며 압박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중, 삼중 스트레스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 전·현직 상담사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 만에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공대위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 다할 것"
이런 사실이 하나 둘씩 알려지면서 홍 씨의 죽음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홍 씨의 죽음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도내 2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홍 씨의 유가족은 왜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렸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다고 말한다"며 "LG유플러스 고객센터가 즉시 진상규명,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자살한 홍 씨는 해지방어를 하면서 역으로 상품까지 판매해야 했다"며 "재·퇴직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업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그만두었다고 증언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얼마나 쉽게 사람이 그만두면, 업체는 새로 일할 사람을 소개하면 소개해준 사람에게 소개비로 25만 원을 준다고 홍보하는 지경"이라며 "우리는 홍 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측은 "부당한 지시나 목표를 할당해 강요하지 않았다"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안타깝고 당황스럽다.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