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다리가 이제 좀 좋아졌나 봐요? 인터넷에서 행사 때 찍은 사진들을 보니 몇 달 동안 계속 목발을 짚고 다니던데, 이제 지팡이를 짚고 왔네요." 어머니 집을 방문한 동생의 이런 멘트 때문에 골절로 인해 나의 무릎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지난 9월 18일, 복지국가 운동을 하느라 전남 순천에 다녀오던 길에 광주 발 제주 행 비행기를 탔는데, 그 비행기에서 의식을 잃은 응급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내 무릎이 골절되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아픈 심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또 불효를 저질렀다.
장애와 가난이 원죄가 아닌 세상을 위하여
나의 어머니는 처녀 때는 성당을 다녔는데, 불교도 집안에 시집을 와서는 계속 절에 다니신다. 요즘도 거의 매주 사찰에 가서 기도를 하신다. 기도의 거의 대부분은 4급 지체 장애인인 나를 향해 있다. "늘 내 아들이 건강하게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신단다. 어머니가 내게 바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내가 4살 때 버스에 치어 우측 다리를 다치면서부터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어린 아들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장애인 아들만은 어떻게든 중학교를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푼돈을 모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설날 연휴를 지내고 제주도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지팡이를 짚고 어떻게 하려고? 안 하면 안 되겠냐?"라는 어머니 말씀에 대해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내 입장을 설명했다. 그리고 요즘은 어머니가 더 자주 절에 가신다. 나는 집사람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3일을 따라다니며 반복해서 설명하고 동의를 요청했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의과대학 교수가 왜 그런 것을 하려고 그 고생을 하느냐?"며 동의해주려 하지 않았다. 복지국가 만들기는 지금까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해온 것처럼 그냥 사회 운동으로만 하라는 게 집사람의 주장이다.
결국, 내 고집이 모두를 이겼다. 내 스스로가 자신에게,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복지국가당의 창당을 준비해왔고, 1월 24일 개최된 복지국가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런 내가 복지국가당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복지국가 운동은 씨앗을 발아시킬 수 없게 된다. 복지국가당 창당의 법적 절차가 2월 15일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나는 17일 마포 갑 지역구에 예비 후보 등록을 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로서 '복지국가 운동가'이자 의과대학 교수로서 '복지국가 전문가'인 내가 가족의 반대에 불구하고 지역구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장애와 가난은 원죄가 아니며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다.
나는 의과대학 졸업 후 의대 졸업자들의 대부분이 선택하는 임상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당시 의료보험 제도가 있었지만, 조합주의 방식과 취약한 보장성 때문에 많은 국민이 제때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을 치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상 의사가 진료실에서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훌륭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국민의 다수가 아예 병원을 방문하지 못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질병을 키우는 일이 일상화된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을 치료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예방의학과 공중보건을 선택했고, 보건의료 정책 전문가이자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나는 1990년대 10년 동안 조합주의 의료보험 제도의 통합을 통해 보장성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창설'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마침내 2000년 7월, 전국의 모든 국민을 하나의 공적 보험자에 포함시키는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창설되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기여했다. 그래서 이 일은 내 인생에서 매우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이후 나는 국민건강보험의 제도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선택하고,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자문 교수로 참여하여 보건의료 공약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보험연구원장 등을 맡아 4년 동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향상과 제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때의 4년은 매우 자랑스럽다. 먼저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정책화하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까지 포함한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 조치를 제도화하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그 성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주도했던 의료 민영화를 무력화하는 사회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 민영화 시도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이명박 정부의 제주도 영리병원을 막아낸 소위 의료 민영화 제주대첩의 승리는 특히 값진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공익적 시민 운동에 매진해온 데는 인간 존엄과 연대, 그리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데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국민을 속이는 '낡은 정치' 때문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시민사회의 공익적 노력으로 의료 보장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행복 수준은 더 나빠졌다. 지난 20년 사이에 자살률은 3배나 늘었고, 출산율도 크게 줄었다. 경제와 사회 전반의 실패를 목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과 연구가 필요했다. 그 성과가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창설이다. 나는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공동대표를 맡아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세우고 정치사회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2010년부터 우리 사회는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 정당들은 경쟁적으로 복지국가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했던 대부분의 복지국가 공약들을 폐기하고 말았다. 이것이야 말로 국민을 속이는 '낡은 정치'의 전형이다. 스웨덴 같은 선진 복지국가였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그렇지 않다. 여야 정당들 중 누구라도 국민을 속인 행위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가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여야 정치권은 국민을 그렇게 속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거대 양당 구조를 만들고 만다. 우리나라의 선거 제도와 정치 제도가 승자독식의 '낡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치 후진국이다.
기성의 정당들이 보여준 '낡은 정치'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영호남 지역주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이다. 이런 '낡은 정치' 질서에서는 정당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고, 가치와 정책의 중요성도 별로 없다. 오직 지역주의에 호소하고 계파 패거리에 충성하는 것만이 정치적 성공의 핵심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거대정당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 때 현란하게 약속했던 모든 복지국가 공약들을 폐기하고 국민을 그렇게 속이고도 정치적으로 아무 일이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이런 '낡은 정치' 구조를 교체해야 한다. 그래야 스웨덴 같은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좌절한 청년들은 스스로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이는 누구 탓인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드는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분명하게도, '낡은 정치' 질서 위에서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강화해온 대한민국의 여야 정치권과 성공한 엘리트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낡은 정치'가 지독한 불평등과 민생 불안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반성은커녕 지금도 여전히 국민을 속이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 '낡은 정치'가 선거 때마다 절반의 국회의원을 새로운 인물로 바꾸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는 '낡은 정치'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악의 정당'과 '차악의 정당'이 영호남 지역주의와 패거리 정치에 기대어 적대적 공생을 즐기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국민을 속이는 '낡은 정치'를 이제 과감하게 교체해야 한다. 스웨덴 같은 선진복지국가에서는 여러 개의 '최선의 정당'들이 국민행복이라는 최선의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언제나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정당'과 '차악의 정당'이 승자독식의 '낡은 정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국민을 속이면서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판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드는 거대한 변화의 구심이 되도록
국민 행복권이 보장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정치의 주역이 되는 복지국가 정치 질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국가당은 힘이 미약하다. 기성 정치인은 한 명도 없고, 준비된 정치 신인도 거의 없다. 돈도 조직도 없다. '낡은 정치'의 문법에서 보면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복지국가당에는 있는 게 꽤 있다. 먼저,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담론과 정책이 있다. 지난 8년 동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통해 축적된 전문성이 있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들의 기대와 열망이 있다. 창당 과정에서 보여준 보통 사람들의 눈물겨운 기여는 우리 복지국가당의 큰 자산이다. 그리고 우리는 '낡은 정치'의 교체 없이는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판단을 공유하고 있다.
법적 창당 절차를 막 마친 신생 정당인 복지국가당에 대한민국의 정치와 언론 환경은 지독하게 나쁘다. 지난 10개월 동안 호남 지역주의에 의존하려는 '낡은 정치' 세력들이 언론의 관심을 낚아챘고, 안철수 의원 탈당 이후 최근 수개월 동안은 야권 분열의 정치구도가 언론의 최대 관심사였다. 복지국가당 같은 가치와 정책 중심의 신생 정당은 고유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존재를 알릴 길이 거의 막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낡은 정치' 교체의 중심에 나서보지도 못한 채 그동안의 노력과 열망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것이 복지국가당의 대표로서 내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절박한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마포 갑 지역구를 선택한 데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2003년부터 참여정부 시기의 4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민건강보험의 제도적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둘째, 2008년 초부터 지금까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공동대표로서 복지국가 운동을 이끌어온 근거지가 이 지역이다. 셋째, 복지국가 운동을 위해 서울에서 거주하는 오피스텔의 주소지가 이 지역이다. 내가 복지국가 운동 인생의 황금기 12년을 이곳 마포에서 보냈으니 이곳 출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곳에서 '낡은 정치'를 교체하는 '정치 혁명'을 일으켜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한국판 '복지국가 스웨덴'을 만드는 거대한 변화의 구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제주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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