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협동조합 전환 2주년 축하합니다! 우리 모두 조금 더 고생해요. 아자 아자 화이팅!"
12개의 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광고를 찍어도 좋을 만큼 '꿀꺽, 꿀꺽' 맥주 목 넘기는 소리들이 예술이었다. 누구 하나 빼는 법 없이 잘 먹고, 잘 마시고, 노래 부르고, 까르르 웃고, 그러다 흙바닥을 굴렀다.
못 놀아 한 맺힌 것만 같은 이들의 정체는 누구인가. 바로, 프레시안 협동조합에서 잘 놀기로 소문 난 이들, '2030 조합원'들이다. 아차차, '2030'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신 한 분은 두 단락 아래에서 소개하기로.
지난달 30일. 프레시안 조합원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에 엠티(MT)를 다녀왔다. 6개월 전 임실 MT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MT를 제안한 건 소비자 조합원들이었다. 최고 살림꾼 조합원인 안종길‧허이령 조합원이 참가자 모집부터 장소 물색, 이벤트 기획, 음식 준비에 이르기까지 기획을 총괄했다. (관련 기사 : "서울-호남 조합원, 임실에서 상견례한 날!")
두 조합원의 진두지휘 하에, 소비자 조합원 중에서는 강준모‧남태우‧윤정환‧이원재‧정혁 조합원이 참가했다. 직원 조합원 가운데서는 김윤나영‧박세열‧서어리‧최형락 조합원 그리고 '4050' 조합원 대표(?)이자 새 협동조합팀장인 임경구 조합원이 함께했다.
프레시안 판 '응사'?
일을 마치고 뒤늦게 부랴부랴 달려가는 동안, 먼저 대성리에 도착한 조합원들의 사진이 2030 메신저 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날아왔다. 숙소 인근 냇가 앞에서 누군가는 비눗방울을 불고,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맥주병을 옆에 놓고 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소싯적 사진마냥 복고미를 뽐내는 사진들이었다.
'응사(응답하라 1994) 찍느냐'며 야유했지만, 이날 나는 그 누구보다도 복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윷놀이부터 꺼내 든 것. 처음엔 떨떠름해하던 조합원들이 '다음날 뒷정리'를 내걸자 다들 눈빛이 흉흉해졌다. 고성이 난무하고 손가락 삿대질 세례가 쏟아지는 난장판 승부가 펼쳐졌다. 결국, 이날 게임은 김윤나영 조합원의 맹활약으로 김윤나영‧정혁‧남태우‧이원재 팀이 우승, 뒷정리 면제권을 획득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패배에 씁쓸해할 겨를도 없이,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조합원들은 '바위섬', '바위처럼', '사랑으로' 등 옛 노래들을 메들리로 부르며 춤 췄다.
장작이 사그라들 무렵, 허이령 조합원이 비눗방울 장난감을 꺼내 들었다. 동그란 비눗방울이 떨어질세라 조합원들이 후후 불어 높이 띄웠다. 혹자는 '순수한 어린이들 같다'고 하고, 또 다른 혹자는 '미친 사람들 같다'고 했다. 어쨌거나 조합원들은 '1만 조합원의 꿈'을 그렇게 비눗방울에 실어 올렸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존재감 키워야"
우리 조합원들, "잘 놀기만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절대 아니올시오"다.
캠프파이어는 끝났지만, 방 안에서 진지한 토론이 오가며 또다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프레시안>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협동조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조합원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터놓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화두는 20대 매체 <미스핏츠>가 <프레시안>과 <한국일보>의 모바일 광고 개수를 비교한 영상이었다.
안종길 : 저는 좀 아쉬웠어요. 프레시안이 독자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지, 왜 저런 광고들이 덕지덕지 붙을 수밖에 없는지, 그런 배경 설명 없이 광고량만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정혁 : 그래도 어느 정도 이번 기회를 통해 논쟁 내지 논란이 되고 있잖아요. 그동안 프레시안의 가장 큰 문제는 논란거리가 없었다는 것 아니었나요. 존재감이 부족해요.
허이령 : 맞아요. 조합원 가입하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려고 해도, 무슨 얘기를 하면서 권유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거든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시안이 풀어야 할 과제를 정확히 짚은 쓴소리들이 이어졌다.
강준모 : 개별 기자들이 좀 더 두각을 드러내 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 믿고 프레시안 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요. 확 '지르는' 기사를 쓰거나, 아니면 SNS를 열심히 해도 좋고요."
"그러니까 프레시안 조합원 해요."
잔이 돌고, 대화 주제도 돌고 또 돌아 다시 '광고'이야기로 돌아왔다.
이원재 : 온라인 조합원 게시판에서나 대의원 회의에서나 다른 조합원분들은 대기업 광고에 '결사반대' 하시는 데요. 저는 아예 끊는 건 시기상조라고 봐요. 대기업 광고를 안 받는 건 큰 과제로 놓을 순 있지만, 아직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받지 않겠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강준모 : 광고와 상관없이 당당하게 대기업 비판 기사를 쓰면 그게 더 멋진 일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정혁 : 그렇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죠. 진보 매체라고 하는 어느 일간지도 경제면 1면에 대기업 제품 홍보성 기사를 싣던데요. 제목도 엄청 띄워주기 식으로 달아서요.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프레시안이 대기업 광고 안 받겠다고 하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강준모 : 네. 저도 그러니까 조합원 가입했죠.(웃음)
토론을 지켜보던 임경구 조합원이 새빨개진 눈으로 마무리 발언(?)을 자청했다.
임경구 : 일단,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분과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데, 웃고 떠드는 MT에 와서 이렇게 진지한 대화가 오갈 줄은 몰랐습니다. 언론이 광고를 안 받겠다는 건 언론계에선 마치 혁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해주시고, 프레시안의 생존을 고민해주시는 데 대해 무한한 감동을 느낍니다. 일단 6월에 조합원 배가 운동을 해서 최대한 먹고 살 발판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지금처럼 늘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오늘 해주신 말씀들 다 기억하겠습니다.
임경구 조합원은 이 말을 끝으로 항복을 선언하며 잠자리를 폈다. 협동조합팀장은 떠났지만, 토론은 아침이 밝을 때까지 계속됐다. 프레시안의 미래에 대한 토론에 과연 끝이란 게 있을까. 적어도 '1만 명 조합원 달성 시 광고 퇴출' 과제만은 영구미제가 아니길….
쉼 없이 놀고 이야기한 프레시안 조합원들의 일박이일 MT는 그렇게 서서히 끝나갔다.
밤샘 후유증으로 월요일 오전에 다 같이 피곤했단 건 '안 비밀'! 그래도 좋았다는 건 '더 안 비밀'!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앞으로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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