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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엔 고사총, 남쪽엔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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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엔 고사총, 남쪽엔 황교안?

[기자의 눈] 朴정권과 金정권의 '숙청 정치'

남북한(정권)은 닮아 있다. 서로 상대를 비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데서 그렇다. 상대를 비방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힘을 받는다. 내부에서 상대 편을 드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제거 대상이 된다. 일체성을 해하기 때문이다. 체제를 끌고 가는 대표자를 흠집낸다면, 그것도 제거 대상이 된다. 역시 일체성을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권은 스스로를 국가, 체제와 동일시하게 된다.

숙청(肅淸) 정치. 최근 국정원은 북한이 군내 서열 2위, 현영철을 숙청했다고 공개했다. 근대적 형벌인 총살형이 택해졌다는 '첩보'까지 제시했다. 국정원이 밝힌 숙청 이유라는 게 "졸았다"는, 다소 어이없는 것들이었지만, 사실 졸았다는 게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현영철의 태도가 정권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숙청당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럼에도 졸아서(국정원의 판단) 죽였다(첩보 수준)는 것은 이 정권이 저 정권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정은은 숙청 정치를 통해 권력의 누수를 막고 있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현영철에 앞서 숙청당한 장성택, 리영호 역시 정권(=체제)의 일체성에 해가 된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가차없이 당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왜 '숙청 정치'를 이용하는가 하는 부분은 몇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먼저 3대 세습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유지해야 하는 정권의 강력한 욕심, 그리고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있는 무능함에 대해 정권 스스로 갖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일체성에 흠집이 나는 순간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그들을 '숙청 정치'로 내몰고 있다. 그들은 정권과 체제를 동일시하고, 정권에 반하는 사람을 체제에 반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런 식으로 북한은 숙청 정치를 '불안한 전통'으로 굳혔다. 1953년 박헌영 숙청, 1997년 서관희 숙청처럼, 김정은도 흔들리는 정권을 다잡기 위해 숙청을 택했다.

숙청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 단체나 비밀 결사의 내부 또는 독재 국가 등에서 정책이나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이다.

처단과 제거의 방식은 다양하다.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맡은 자리에서 옷 벗기고 쫒아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반대파'를 체제 밖으로 쫒아내는 것, 그것을 숙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원래 숙청은 '청소'와 같은 의미였지만, 역사가 이 단어를 변질시켰다. 구소련 스탈린 시절의 '대숙청'의 영어 번역인 'Great Purge'도 조직에서 사람을 제거하거나 나쁜 것을 몰아낸다는 의미다.

박근혜의 '숙청 정치'칼자루 쥐었던 황교안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에 내정한 황교안은 스스로 국가보안법의 상징적 인물이 된 사람이다.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골라내고, 처단하는 것이 그의 반평생 화두였다. 행위 뿐이 아니다. 적을 이롭게 하는 생각 또한 골라내고 처단하며, 적에 소속된 사람과 접촉했다는 것 자체로도 죄가 되도록 만드는 그 법을, 성전의 칼로 다듬은 대장장이였다.

국보법은 그 모호성으로 인해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법의 칼을 쥐고 흔드는 자의 '해석'에 따라 그 법은 집행된다. 해석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집행하는 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석하는 자가 힘이 셀 수록, 그 해석은 진리에 가까워진다. 반평생을 국가보안법과 함께 한 사람이 법무부장관이 되면서 '남한 체제'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황교안은 법무부장관을 지내며 정부의 법률 대리인 자격으로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했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을 감행했다. 정권의 반대파를 자임했던 통합진보당은, 정권에 의해 '체제의 반대파'로 규정당했고, 결국 해산당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에 출마, TV토론회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 대고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국가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제거당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황교안의 활약은 도드라진다. 황교안은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해 기소하지 않도록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그러나 원 전 원장의 혐의에 선거법을 추가했다. 그러다 '채동욱 혼외자 의혹'이 터져나왔다. 황교안은 언론 보도만으로 사안을 판단, 감찰을 전격 지시한다. 법무부장관의 감찰 지시에 버틸 수 있는 검찰총장은 없다. 결국 채동욱 전 총장은 제거당했다.

요컨대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 '숙청 정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황교안의 내정으로 '경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오는데, 애초 경제 분야는 친박 실세인 최경환 장관과, 엘리트 관료들이 주도했던 사안이었다. 황교안의 공간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가 집중해야 할 역할은 청와대가 밝혔듯 '비리 척결'과 '정치 개혁'이다. 그게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숙청 정치'를 "공포 정치"로 규정하고 국민들과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검찰총장을 찍어낸 것은 '숙청'이다. 남북한의 정권은 묘하게 닮은 꼴이다. '적대적 공존' 관계라는 상투어는 아직 유효하다. 북한식 숙청만이 숙청이 아니다. 끊임없이 북한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 해서 존재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주류가 반대파를 제거하는 방식은 북한의 숙청을 닮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과 같은 총리, '국가보안법 전문가' 총리가 추진하는 비리 척결과 정치 개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박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있거나, 반기를 들 준비가 돼 있는 '여야 정치인'들, 모두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계절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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