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나기 며칠 전이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벚꽃 처음 봤어요. 애들도 쉬는 시간이며 점심시간이며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 찍는다고 야단들이었어. 반마다 단체 사진도 찍었잖아. 그게 마지막 사진이 되어버렸네."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듯, 지난 3월 20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에 벚꽃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 좋은 풍광을 눈앞에 두고도, 학생들은 휴대폰에 사진 한 장 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슬라바' 영어 못 한다고 많이 놀려 먹었는데…"
1년 전 벚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던 아이들은 '세월호'와 함께 사라졌다. 싱그러운 봄처럼 생동하던 아이들은 네모난 사진 속에 갇혔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뛰어다니던 교실은 박물관처럼 박제된 공간이 되었다. 2학년 7반 칠판 옆 텔레비전에 붙여진 단체 사진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7반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반이었어요. 선생님도 착하고…. 선생님이 쉬는 시간마다 교실 찾아가서 시작종 울릴 때까지 복도에서 애들이랑 웃고 떠들고 있었다니까."
지난해 2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던 영어 담당 정성신 교사는 '중근이', '수인이', '정인이', 사라진 7반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읊조렸다.
"'슬라바(원래 이름은 세르코프 빌라체슬라브)' 있는 4반도 가르쳤지. 되게 재밌는 게, 슬라바가 생긴 건 외국인인데 영어를 못 했거든요. 그래서 영어 지문 읽으라고 시키면 애가 쭈뼛쭈뼛해요. '넌 왜 외국인처럼 생겼는데 잘 못하니' 하고 놀리면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잖아요' 이랬어요. 그 리액션이 되게 재밌었어. 그래서 내가 많이 놀려 먹었는데."
"남아도는 급식실 자리에 밥이 안 넘어가"
종이 '땡'치자마자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아이들이 부리나케 뛰어간 곳은 1층 급식실. 여느 급식실 앞 풍경이 그렇듯, 식판을 든 단원고 아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오늘 식단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 하나, 싫어하는 메뉴 하나가 있었다. 닭튀김과 냉잇국.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바삭하게 튀겨진 닭다리부터 집어 들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학생들 대부분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대여섯 개의 테이블은 앉는 이 없이 텅 비었다.
"예전엔 애들은 많은데 급식실 자리가 부족해서 여기가 미어터졌지. 학년별로 시간을 나눠서 먹어야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자리가 저렇게 남아돌아요. 그런 거 볼 때마다 밥을 먹다가도 밥맛이 안 나."
한숨을 푹 쉰 정 교사는 영 식욕이 나지 않는지 밥을 깨작거렸다. "그래도 남은 아이들 열심히 가르치려면 잘 먹어야지" 하며 숟가락으로 냉잇국을 떴다.
"애써 웃는 아이들, 더 안쓰러워"
급식실을 나와 정 교사가 향한 곳은 건물 꼭대기 층인 5층 '마음건강센터'다. 친구들을 잃은 '생존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학생들은 이곳에서 수시로 전문의와 상담한다. 지난해 이후로 이곳을 찾는 학생들의 발길이 조금 뜸하더니, 최근엔 쉬는시간이며 점심시간이며 북새통을 이룬다. 새 학기 들어서면서 학교 측에서 맹인견으로 알려진 개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를 학생들 치유 목적으로 입양한 것.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들을 쓰다듬어주고 구경하는 학생들 표정이 밝았다. 밥이나 물을 챙겨주는 건 모두 학생들 몫이라고 했다. 강아지들을 끌어안는 아이들의 모습을 정 교사는 흐뭇하게 쳐다봤다.
정 교사 근무 공간인 4층 교무실로 가려면 생존 학생들이 있는 3학년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복도를 걷는 내내 정 교사는 아이들 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예의 바르면서도 친근하게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들 틈에 이 학교 학생회장인 최민지 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민지가 정말 씩씩해. 자기 마음 추스르기도 힘들 텐데도 집회 나가서 생존 학생 대표로 마이크도 많이 잡고, 힘들어하는 다른 아이들 잘 다독거려주고."
지난 겨울방학 무렵부터 안정을 되찾아가던 아이들이 올해 3~4월 들어서면서 조금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때가 때니까 싱숭생숭하겠지. 그래서 일부러 수업시간에 애들한테 농담을 많이 해요. 평소에도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하고. 근데 애들도 알아요. 선생님들도 애쓴다는 걸. 그래서 애들도 잘 따르고, 장난도 걸어오고 그래요. 그런 거 보면 더 안쓰러워. 원래 고3 가르치면, '다른 것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 이렇게 말할 텐데, 우리(단원고 교사)는 아이들 마음 돌보는 게 먼저예요."
생존 학생들 "감사해요", "울지 마요", "사랑해요"
이날 3학년 학생들은 5교시 수업을 생략하고 멀리서 오는 손님을 맞기로 했다. 바로 자신의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진도 주민들이다.
70여 명의 3학년 생존 학생들과 진도군 조도면 주민 80여 명이 지하 시청각실에서 대면했다. 생존 학생을 대표해 이모 학생은 "조도에 도착했을 때 지치고 혼란스러움에 빠진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셨다"며 "세상에 발을 내딛기 두렵지만 여러분들이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 평생 잊지 않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어선으로 20여 명의 학생을 구조한 김준석 선장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면서도 "희생된 아이들이 떠올라 슬픔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앞으로 밝은 모습으로 생활했으면 좋겠고, 큰 일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응원한다"고 했다.
한 시간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진도 주민들은 다시 진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버스에 오르려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정 교사는 "감사하다"며 진도 주민들을 끌어안았다.
운동장에 있던 3대의 버스가 떠나자 여학생들이 "사랑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해요"라고 크게 외치며, 팔로,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
진도 주민들을 태운 버스가 교정 밖으로 나갔지만, 정 교사와 3학년 부장 교사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교문 밖을 바라봤다. "선생님 울지 마요." 학생들의 다독이는 손길에 이들은 눈물을 닦아냈다.
"우리 애들 진짜 기특하죠. 제일 착잡할 텐데 선생님들 위로해주고. 다 컸어."
단원고의 봄은 이렇게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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