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싶다.
4월…
달력을 넘기지 못하겠다.
가슴 저미는 달…
아직 우리 집 달력은 3월이다."
4월의 시작, 단원고 한 희생 학생 어머니가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그 날 이후, 다시는 아이를 만질 수 없게 된 엄마는 말합니다. 다시 4월이 오는 게 무섭다고. 다시 안산에, 고잔동에 벚꽃이 피는 게 두렵다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즈음, 아이들이 벚꽃을 배경으로 꽃사진을 찍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긴 수학여행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1년 전,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제주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 중 학생 75명과 교사 3명만이 안산에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던 학교가, 고잔동의 골목골목이 그날 이후로 한산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프레시안 특별취재팀 기자들이 지난 2월 말부터 7주간 안산 고잔동과 아이들의 빈 방을 찾았습니다. 고잔동에 위치한 '4.16기억저장소' 활동가들과 동행하며 아이들의 물건 하나, 사진 한 장에 담긴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했습니다. (☞1부 기사 바로가기)
3반 혜원이 아빠는 "그리움이 이렇게 아픈 건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7반 강민이 아빠는 아들이 입었던 검은색 점퍼를 매일매일 입고 다닙니다. 아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라며, 죽을 때까지 그 옷을 입을 거라고 말합니다.
3반 예진이 엄마는 '정예진'이라는 딸의 이름 세 글자를 목걸이와 귀걸이 팬던트로 만들어 늘 지니고 다닙니다. 딸의 이름이 새겨진 물건이라면 무엇하나라도 잃어버릴까 매일매일이 조심스러웠는데, 경찰이 유족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살포했던 지난 11일, 귀걸이 한 쪽이 망가졌습니다. 바다에서 지켜주지 못한 아이가 또 다친 것 같아, 그조차도 한이 되는 엄마입니다.
한 희생 학생의 어머니는 꽃놀이 하러 가자는 동창들의 무심한 카카오톡 대화에 홀로 긴 시간을 울었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나고 다시 4월이 왔지만, 고잔동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시간은 아직 '2014년 4월16일'에 멈춰 있습니다.
"잃어버린 내 새끼, 기억조차 잃지 않도록"
"왜 자꾸 치유하라고 하는지…사람들은 왜 자꾸, 아픔에 돋보기를 들이대려고 하지?"
안산을 한창 드나들 즈음 취재 차 만난, 한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가 머릿 속을 한참 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도 지난 7년을 귀 닫은 세상과 싸우는 동안, 26명의 동료를 떠나 보내야 했던 사람입니다. 100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입원해 치료 중이던 그가 스치듯 한 말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잔동에서 온 편지> 1부, '아이들의 빈 방' 이야기는 특별취재팀 기자들에게도 힘겨운 작업이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줄 때부터 눈물을 터뜨리는 엄마 앞에서, 그럼에도 다시 그 고통을 말하게 하는 작업은 괴로웠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이 작업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역시 누군가의 상처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얼른 잊고 이젠 치유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잃어버린 내 새끼, 기억조차 잃어버리지 않게" 아이의 물건 하나하나를 꺼내보이며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하는 부모들이 있는 한 그렇습니다. 아이가 낙서한 구겨진 종이 한 장 버리지 못하고, 빈 방의 쓰레기통조차 비우지 못한 엄마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떠난 아이가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들에게, 누가 쉽게 '치유'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아프고 힘들지만 그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보다 돈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방식대로, 이 참사가 왜곡되고 편집되도록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빈 방, 엄마의 이불
안산 고잔동, '4.16기억저장소'의 전시관 한 가운데엔 이불더미가 쌓여있습니다. 진도체육관부터 국회, 광화문에서 청운동까지 엄마아빠들과 함께했던, 힘겨웠던 지난 1년의 싸움의 흔적입니다.
벽면엔 아이들의 빈 방 사진이 걸렸습니다. 그 이불들과 방이 증명할 것입니다. 희생자 304명. 차가운 숫자로만 호명됐던 그 아이들에게도, 304개의 꿈이 있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 수백수천 가지의 이야기들이,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어이없이 바다에 수장됐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죄인으로 사는 엄마아빠들이, 그 공간을 감싸는 이불처럼 이제라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저 운 나쁜 교통사고였다고, 유족들이 싸우는 것은 보상금 몇 푼 더 얻기 위해서라고 누군가 이 기억을 멋대로 가위질하려고 할 때, 이 기록들이 그들의 기억을 반박하고, 있는 그대로 증명할 겁니다.
덮으려는 사람, 기억하려는 사람
<고잔동에서 온 편지> 2부는, 그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4월 16일'로 시간이 멈춘 동네, 고잔동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유가족들과 안산시민들, 기억의 단절이 역사의 단절이라고 믿고 작은 것 하나라도 끊임없이 기록하는 활동가들의 오늘을 담았습니다.
"치유하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진짜 우리한테 '치유'가 되는 게 뭘까요?"
3반 윤민이 언니 최윤아 씨가 되물었습니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 그 전엔 치유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는 것조차 먼저 떠난 아이에게 미안해, 병을 안고 사는 가족들이 아직 안산에 있습니다.
누더기 특별법과 그조차도 무력화시킨 시행령으로, 40일 넘게 단식 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잔인함으로, 유족들에게 온전히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사회는 이제 너무 쉽게 '치유'와 '망각'을 이야기합니다.
떠올리는 것조차 아픈 이야기를, 이제는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한 아이들의 물건을, 가족들은 취재진 앞에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상처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작업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는 침몰했지만, 망각의 바다로까지 보내지 말자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고잔동에서 온 편지 2부, '아직 4월 16일을 사는 사람들'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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