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2월 23일 12시 00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오열 속 4.16 "완전한 명예회복의 시작이 되도록"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 열려
봄이 왔다. 예년보다 빨리 핀 벚꽃은 가지에서 떨어져나와 도로 위에 흩날렸다. 자줏빛, 분홍빛 이름 모를 들꽃들이 거리마다 펴 있었다. 햇볕도 따사로운 봄 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경기도 안산에서는 언제부턴가 비극의 계절이 되었다. 봄날,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벚꽃만 봐도 울렁거린다'고 가슴을
서어리 기자(=안산)
"한국인 되려고 주민등록증 기다리던 슬라바…"
[인터뷰] 세월호 희생자 고(故) 세르코프 야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부모
사진 속 소년의 눈동자는 검푸른 바닷빛을 닮았다. 물속에서 누구보다도 몸놀림이 자유로웠던 아이, 그래서 검푸른 바닷속에서도 끝끝내 헤엄쳐 나오리라 믿었던 아이. '슬라바'로 불리던 그 아이. 고(故) 세르코프 야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야속하게도 시간은 잘도 흐른다. 1주기를 겨우 버텨낸 지가 언제라고 400일이 돌아왔다. 그럼 곧 또 500일이 오겠지, 그
"아이 잃은 엄마아빠들, 밥은 먹게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19>] 안산의 내일을 묻다
경기도 안산. 수도권 대표적인 공업 도시이자, 외국인이 도시 인구의 약 6.5%에 달하는 '외국인의 도시'. 사람들이 아는 안산의 이미지란 그런 것들이었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안산은 '슬픔의 도시'가 되었다. 안산시 통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은 총 254가구, 가족 구성원으로 따지면 1029명이다. 희생자
세월호 유족의 '트라우마 리와인딩'
[고잔동에서 온 편지<16>] 참사 1년, 유가족들의 심리적·신체적 건강
"제초제를 뿌려서 벚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이 파이고 있다. 누군가에게 봄은 추위를 견디고 맞이한 반가운 계절이겠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봄이란 그저 괴로운 계절일 뿐이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꽃향기가 짙어질수록 지옥 같았던 '그날들'의
"텅 빈 급식실, 애써 웃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15>] '잔인한 4월' 맞이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사고 나기 며칠 전이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벚꽃 처음 봤어요. 애들도 쉬는 시간이며 점심시간이며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 찍는다고 야단들이었어. 반마다 단체 사진도 찍었잖아. 그게 마지막 사진이 되어버렸네."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듯, 지난 3월 20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에 벚꽃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 좋은 풍광을 눈앞에 두고도, 학생들
"우리 강민이 옷, 죽을 때까지 입을 거예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10>] 단원고 2학년7반 나강민 학생 이야기
강민이네 집은 새집입니다. 강민이에게 더 좋은 방을 마련해주고 싶어서 아빠가 지난해 4월 14일 계약한 집입니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니까 주말에 강민이 데리고 새집 구경시켜주려고 했는데" 강민이는 결국 새집, 새 방을 보지도 못한 채 아빠 곁을 떠났습니다. 아빠는 강민이가 집을 잃고 헤맬까 봐, 분향소와 하늘공원 강민이 자리에 새집 주소를 적은 종이를 놓
"'거위의 꿈' 부르던 보미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9>] 단원고 2학년9반 이보미 학생 이야기
태어난 곳은 부천, 일곱 살까지 산 곳은 아산,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야 안산으로 온 보미. 엄마는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안산으로 이사 오지 말걸." 보미가 떠난 후로, 부질없는 생각들이 자꾸만 엄마를 괴롭힙니다. 보미에게는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있습니다. 언니가 보미를 거의 업고 키우다시피 할 정도로 돈독한 자매지간이었습니다. "우리 애들은 단 한
"아프다고 수술받는 것도 죽은 딸한테 미안해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7>] 단원고 2학년3반 유혜원 학생 이야기
혜원이는 사 남매 중 맏딸입니다. 두 살 아래 여동생, 그보다 한 살 아래 쌍둥이 남동생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있습니다. 동생들은 엄마 아빠보다 첫째 언니, 누나를 무서워할 정도로 혜원이는 집안 내 군기반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어느 무리에 있든 리더 격이었습니다. 수련회, 체육대회 때면 친구들과 장기자랑을 했는데, 안무를 알려주는 건 모두 혜원이 몫이었습니
"제주도행 배에서 뭐 할지 상상하던 아들이…"
[고잔동에서 온 편지<6>] 단원고 2학년7반 이수빈 학생 이야기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 아이. 엄마는 집안 장손인 수빈이가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 엄마의 걱정이 머쓱할 정도로 아무 탈 없이 쑥쑥 성장한 수빈이는 해마다 학교에서 체육 과목 상장을 쓸어모았습니다. 고1 체육대회 계주에서는 '역전의 용사'가 될 정도로 잘 달렸고, 축구부에서도 알아주는 명 플레이어였습니다.
"이모에서 엄마 된 지 8년, 듬직했던 우리 큰아들…"
[고잔동에서 온 편지<5>] 단원고 2학년7반 김상호 학생 이야기
처음에는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불렀습니다. 상호는 재혼 가정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애기 때부터 엄마랑 떨어져 지내서, 엄마에 대한 정 같은 건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저를 많이 경계했어요." 이모에서 엄마가 된 지 고작 8년. 이제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던 차에, 때 이른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엄마 정 모르고 자란 아이였어요" 상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