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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 뿌리' 파고르 파산의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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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몬드라곤 뿌리' 파고르 파산의 교훈은?

[협동조합, 1년] <끝> "사업성 없이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돼"

지난 10월 스페인 몬드라곤 그룹의 파고르 전자 가전부문이 파산을 선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막 협동조합이 싹을 틔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의 교과서 같은 곳이기에 협동조합 진영에서의 관심은 남달랐다.

파고르 가전부문은 몬드라곤의 뿌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기업이다. 1941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몬드라곤에 부임한 호세 마리아 신부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젊은이들에게 협동의 정신과 함께 기술을 가르쳤다. 1943년 기술학교를 설립했고, 1956년 5명의 젊은이와 함께 난로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울고르'를 설립했다. 이 울고르가 파고르가 됐다. 파고르는 공작기계, 전자, 가전 세 부문으로 나뉘는데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을 생산하는 가전 부문은 유럽 5대 가전업체에 들 정도로 규모가 상당하다. 몬드라곤 그룹 내에서도 전체 매출의 8%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한 비중의 기업이기에 파산의 충격은 컸다.

파고르 파산

11월 협동조합 부문의 석학인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베라 자마니 교수 부부가 방한했다. 사회적경제기자포럼에 초청된 두 교수에게 파고르의 파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 파고르 공장.
부부의 대답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냉담했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무리한 세계화 전략이 파산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파고르 가전 부문은 '효율화',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생산체계 구축에 나섰다. 프랑스의 가전업체를 인수하는 한편 중국, 폴란드, 모로코 등 저임금 지역에 공장을 세우는 등 세계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유럽 시장에서 LG, HAIER 같은 아시아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정적으로 2000년대 후반 남유럽에 경제위기가 불어 닥치며 매출이 급감했다.

베라 자마니 교수는 "파고르 전자가 파산한 이유는 협동조합적으로 경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고르 가전 부문 종사자 5600여 명 중 조합원은 2000명. 3600명이 근무하는 해외 공장에서는 몬드라곤 식의 협동조합 경영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다. 베라 자마니 교수는 "외국에서 파고르는 일반 자본주의 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파고르의 파산 이야기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정서적 거리도 멀어 보인다. 한국에는 파고르와 같이 큰 노동자 협동조합 기업이 없을뿐더러 본격적인 협동조합의 역사도 불과 1년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참고 사례가 될 수는 있다.

사업계획 신중해야

파고르의 파산을 두고 "LG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가벼이 흘리지 못하는 이유는 협동조합도 자본주의적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협동조합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협동조합은 전체의 54.4%에 불과(7월 기준)했다. 절반 가까운 협동조합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점 휴업' 상태의 협동조합들은 그 이유로 첫째, '자금 부족'(33.4%), 둘째 '사업 모델 구축 미비'(22.3%)를 꼽았다. 자금 부족은 신생 기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인데, 사업 모델 구축 미비는 그만큼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설립 신고된 협동조합들의 사업계획서나 설립 준비 중인 협동조합들의 상담 사례를 보면 '협동조합'인지 '동호회'(혹은 친목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송태경 씨는 캠핑장 협동조합을 계획했다가 사업을 접었다. 4년 전부터 캠핑 마니아가 된 그는 직접 캠핑장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던 차에 협동조합 열풍 소식을 듣고 협동조합 모델로 캠핑장을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캠핑 인구가 늘어 캠핑장 예약이 힘들어지고, 캠핑 동호회 사이트에서 공동구매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협동조합 방식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퍼들의 출자를 받아 자본금으로 캠핑장을 만들고 월회비를 내는 조합원들은 캠핑장을 우선적으로 할인된 가격에 이용하고, 비조합원에게는 일반 캠핑장 비용을 받아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그의 구상에 동호회 회원들도 관심을 보이고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자 참여가 저조했다. 발기인으로 의기투합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캠핑장 건설에 반대했다. 캠핑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한 것인데, 특정 캠핑장을 이용하는 것에 물음표가 붙은 것이다. 또한 대다수 캠퍼들이 '느슨한 레저 활동'을 원했다. 캠핑이라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은 행위인데 조합 활동을 하면 규율과 참여에 얽매인다는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송 씨는 "캠핑의 문화적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사업계획을 세운 것이 무리였다"고 복기했다. 그는 "사실 1~2년 전부터 캠핑장이 난립하고 있어 캠핑장 사업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협동조합 설립 계획을 접고 이전처럼 캠핑을 즐기기로 했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정창윤 이사는 "협동조합 설립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 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협동조합도 엄연한 사업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초기에는 조합원들이 사업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를 수 있지만, 사업 수익이 나지 않고 조합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협동조합은 오래 갈 수 없고 괜히 사람만 잃게 된다"고 충고했다.

협동조합에도 리더십은 필요하다

"친구와 멀어지고 싶으면 동업을 해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협동'에 부정적인 말들이다. 협동조합 교육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의사소통' 교육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본인이 직접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철영 아이쿱생협연합회 친환경클러스터추진위원장은 "생협의 업적 중 하나라면 가정에 민주주의 문화를 전파한 것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아이쿱에서 지역 모임을 활발히 하고 이사 코스를 밟는 이들이 스스로 가부장적 권위에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닌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적 의사결정이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할 권리를 말하지는 않는다. 특히 협동조합의 단점 중 하나가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점인데, 사업을 위해 때로는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협동조합에서도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은 '민주적 리더십'으로 의견 충돌이 생길 때 신속하게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협동조합 역사는 이제 시작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2013년 11월말까지 1년 동안 생긴 협동조합은 3148개. 월평균 255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특히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 10월, 11월에도 월 200여 개의 협동조합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고용효과만 1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은 경제계에서 여전히 소수다. 같은 기간 생겨난 상법상 회사는 월 평균 6278개로 협동조합 설립 건수는 일반 회사의 4.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직 영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평균 자산은 4000만 원으로 동네 치킨집 수준이고, 임직원 평균급여는 114~177만 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4대 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인 임직원이 63%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지표도 있다. 앞으로도 계속 협동조합에 근무하겠다는 응답이 97.5%로 지속 근무 의사가 매우 높았다. 그 이유도 '목적이 좋아서'가 53.5%, '전망이 밝아서'가 32.9%, '고용이 안정돼서'가 9.7% 등 직업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부 성공적인 모델의 협동조합은 조합원과 출자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경쟁력 있는 협동조합들도 눈에 띈다고 한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경제와 사회의 활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아직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협동조합 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자금 조달이다. 최근 협동조합기본법이 개정돼 협동조합의 출자금을 자본금으로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지만, 실제 협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기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몬드라곤의 파고르가 결국 파산을 했지만 파고르는 위기 상황에서 몬드라곤 그룹으로부터 4000억 원 이상 지원을 받았다는 점은 꿈만 같은 얘기다. 또한 몬드라곤 그룹 내의 공제조직을 통해 파고르 직원조합원들은 파산 후에도 80% 수준의 급여와 재교육을 통한 다른 조합 배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협동조합이 신자유주의 시대 약탈적 경쟁 체제를 극복할 대안이 될지, 기존 자본주의 폐해의 진통제에 그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 와중에 협동조합의 교과서와 같았던 파고르는 파산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고르의 파산은 한 기업의 파산일 뿐 협동조합 시스템의 붕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파산 상황에서도 협동조합 생태계 울타리에 있는 노동자들은 다른 기회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자마니 부부는 한 목소리로 "파고르의 파산이 협동조합의 한계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2013년 협동조합들은 '사업계획서 작성', '발기인 대회', '설립 신고', '법인 등기'로 분주한 한 해였다. 2014년에는 '1만 개 협동조합 참여 국내 최대 협동조합연합회 결성, 공제사업 개시', '협동조합, 첫 법인세 납부 기업 탄생', '협동조합 사회적 적립금 100억 돌파' 등의 뉴스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협동조합, 1년] 기획 다시 보기
① 협동조합 전환 200일…프레시안의 실험은 오늘도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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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박근혜, 국민 통합하려면 협동조합 활용해야"-인터뷰: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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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협동조합, 자금 조달 숨통 트이나?-개정된 협동조합기본법 들여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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