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천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계 서열 2위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을 구속한 이후 재계 비리에 대한 사법처리 의지가 예사롭지 않다.
정몽구 회장 구속 이후 '형평성 논란' 증폭
정 회장 구속 결정에 대해 '재계 서열1위인 삼성이라면 달랐을 것'이라는 일각의 비아냥을 일축하듯 최근 검찰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특히 검찰은 '재계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사법처리 수위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5월 중 이 회장을 소환 조사한 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용한 편법증여에 관여한 혐의로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이같은 방침은 구속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의 형평성 논란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대차 사태도 정 회장 부자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사건'은 지난 96년 주당 8만5000원선에 거래되던 에버랜드 전환사채 125만 주가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씨 등 자녀들에게 주당 7700원에 배정되는 과정에서, 이 회사의 임원들과 에버랜드의 주주인 계열사들이 에버랜드 주식의 실제 가격과 발행가격의 차액인 970억 원에 이르는 손해를 초래했다는 배임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지검은 2003년 12월 허태학,박노빈 등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해 10월 법원은 1심에서 허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 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룹 경영권 바뀌는데도 총수가 몰랐다고?"
그러나 검찰은 즉각 항소한 뒤 보강수사에 들어가, 에버랜드 주주였던 삼성 계열사 관계자들과 과거 삼성그룹 비서실 임직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에버랜드 사건이 단순한 전환사채의 헐값 처분에 의한 편법 증여 차원이 아니라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바뀌는 '경영권 편법 승계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룹의 경영권이 바뀌는 결과를 낳은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처분에 대해 총수인 이 회장이 모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재계는 이 회장까지 경영권 편법 승계 문제로 사법처리된다면 사실상 대기업들의 경영권 승계가 차단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상속.증여세가 50%에 달하기 때문에 세법대로 한다면 현실적으로 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기업 경영권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 인하 등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정당한 승계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더 이상 편법적 경영권 승계는 없다"
창업 의욕을 꺾지 않으려면 기업을 상속할 때 상속세 감면 또는 장기 유예 등 예외 조항을 두거나, 주식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 시점이 아니라 추후 매각해 차익이 발생하는 시점에 과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은 창업주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인식은 재계의 이익단체라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내부에서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최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원로자문단회의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작았고 감시의 눈길도 많지 않았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경제계 원로들의 지적이 나왔다.
결국 재계 2,3세는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아니라 1개 계열사 정도의 경영권, 또는 대주주로서 배당과 명예를 누리는 수준 이상을 탐내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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