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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타협하기 전에 힘 있게 부딪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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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타협하기 전에 힘 있게 부딪쳐라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8>

-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주장에 답한다
<1> "재벌개혁이 낡은 화두?…그들은 쾌도난마하지 못했다"
<2>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3> "장하준·정승일의 자가당착, 그리고 '잡종 신자유주의'"
<4> 그들이 눈감은 박정희 체제의 '불편한 진실'
<5>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
<6> 장하준의 재벌론, 8년 전엔 달랐다
<7>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

좋은 일자리, 좋은 경제, 좋은 삶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다시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는 소비자에게 최저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이 고용과 지역사회의 좋은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저자다운 충고가 아닐 수 없다. 강소한 중견 기업들이 활착(活着), 활생(活生)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정의가 실현된다면, 그 바탕 위에 좋은 삶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참 '좋은 경제'가 아니겠는가.

때마침 야당의 한 대선 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도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지독한 성장중독병, 경쟁중독병, 노동중독병, 학력중독병 등에서 해방되어 저마다 자율적 삶을 회복하며, 연인이랑 가족이랑 사랑하고, 친구와 우정을 나눌 충분한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삶이겠나. 게다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까지 나눌 수 있다면 일자리와 행복한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다. 물론 그 후보의 진짜 실력이 과연 '저녁이 있는 삶'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다.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의 이야기는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며 성장중독, 경쟁중독에 걸린 사회, 오래도록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어느 때보다 노동이 가벼워지고 불안정해져 노동배제와 노동중독이 희한하게 겹쳐 있는 우리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있어온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논의도 새 지점으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만약 우리가 시선을 더 아래로 향하면서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새롭게 전환하는 길, 진정 정의롭고 좋은 경제의 프레임, 좋은 삶의 프레임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든지 더 높은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숙제로 남겨준 '사람 사는 세상'은 결코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 하기 나름이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와 공생의 숲으로 가는 기본 관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 지역사회 골목골목에도 평화가 찾아와 강소 중견기업들이 번창하고 기업·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며,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생활가치를 향유하는, 모든 이를 위한 경제민주화의 길로, '공생의 숲'의 경제로 갈 수 있을까? 중소기업 및 소상인의 가치, 노동의 가치, 그리고 생활가치라는 좋은 경제/좋은 삶으로 가는 트리오를 함께 살리는 길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얼마 전에 '경제 민주화 시민연대'(준)가 출범을 했다. 이 시민연대는 발족 기념 토론회에서 "1%를 위한 재벌경제에서 모두를 위한 경제 민주화로" 가자, 그리하여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시민연대는 결코 재벌 개혁이 경제 민주화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경제민주화의 길은 재벌개혁보다 훨씬 넓고 깊다. 재벌개혁은 물론이고, 노동개혁, 금융개혁, 중소기업 개혁, 교육 개혁, (사영화가 아니라) 공공성을 살리는 공기업 개혁, 조세개혁과 사회 서비스 확충을 위한 정부개혁, 에너지 고소비 산업의 저소비 산업으로 개혁과 소비개혁, 그리고 언론 개혁 등에까지 걸쳐 있다. 최종적으로는 나라경제를 앞서 말한 정의롭고도 좋은 경제로, 1% 독점-독식경제를 모든 이가 공유하는 100% 경제로 바꾸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게 경제 민주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재벌 특권 독식 체제를 개혁하지 않고서도 모든 이를 위한 경제 민주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재벌개혁이란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과연 정의롭고도 좋은 경제가 가능할까? 글쎄,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시민연대 발족식에서는 현하 재벌체제 아래 고통받고 있는 각계각층이 호소하는 21세기판 '만민공동회' 시간을 가진 바 있다. 그 자리에는 하도급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의 호소, 대형마트의 진출로 눈물 흘리게 된 중소상인들의 호소,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처지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호소, 88만원 세대와 백수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학생들의 호소, 재벌에 혜택이 집중되어 있는 불공정 조세체계에 대한 납세자들의 호소, 광고를 통한 재벌대기업의 언론지배 실태를 짚은 언론감시단체의 호소 등이 있었다. 각계각층의 호소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본적 재벌개혁 없이는 결코 양극화를 넘어 모든 이를 위한 경제민주화로 갈 수 없음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서도 알 수 있는 바이지만, 한국의 재벌체제란 1% 남짓한, 쥐꼬리 같은 지분율을 가진 총수(상위 10대 재벌 총수 지분 0.94%, 계열사 지분 55.73%; 삼성재벌의 경우 이건희 회장 지분 0.52%, 계열사 지분 58.75%)가 계열사를 지배함은 물론, 지역경제와 나라경제를 독점-독식하고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비용과 위험은 나라경제와 다수 국민 대중에게 떠넘기는 체제, 세계경제사상 별로 흔치 않은 대단한 무책임-불공정체제이다. 그리고 재벌닷컴에 따르면 5대재벌의 자산은 정부 총자산의 절반에 육박하며, 삼성의 자산은 100대 재벌 전체의 19.3%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구도에서 재벌총수와 재벌그룹, 이건희와 삼성그룹은 '이별'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이 서로 달라붙어 있다. 이런 비정상적 기득권 체제를 대수술하지 않고서는 경제민주화도, 경제정의도,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의 길도 모두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서, 이미 그 둘이 이별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던 주장 자체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재벌가치와 주주가치는 어떻게 공생하나?

그런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낡은 화두'라고 말한 장하준 그룹은 국제금융자본 대 '재벌+노동+중소기업+자영업'을 한국경제의 기본적 모순 구도로 보는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저들(국제금융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 대기업 정도는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선택>, p.199). 한국경제의 구도에 대해 바로 이런 인식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벌 개혁을 하면 "美·英금융자본이 재벌을 접수"한다는 식으로 과도한 주장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주장은 과연 얼마나 실증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장하준 그룹의 견해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여러 지적들을 해 왔지만, 사실 그들의 주장과 인식틀은 실증의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즉, 지금까지 그들의 연구는 정작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로 주주가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에 대해 실증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지 않다. 이는 <선택>의 경우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선택>에서는 당기순이익이 아니라 영업이익 대비 '배당+자사주 매입액'을 주주이익 환원율로 사용하고 있는데(<선택>, p.215). 그렇게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논의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추가적 설명이 없다면 현재로서는 그런 방식이 얼마나 적절한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축적체제가 과연 어느 정도 주주가치 지향적으로 변모했는지에 대해서는 장하준 그룹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학계 전체를 보아도 실증연구가 많이 진전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 정부' 10년 시기(1997-2007)를 중심으로 미진하나마 실증 연구를 해 본 적이 있다. (졸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축적체제", <동향과 전망>, 2011 봄). 그 글에서 나는 장하준 그룹의 주장이 실증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으며, 현재 2007년 이후 시기로 연장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 실증작업에서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기업의 매년 '자사주 취득/처분/순잔액' 값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료 소스마다 값이 상당히 다르게 나온다. 나는 주로 한국신용평가(주)에서 제공하는 Kiss line 자료를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최종적으로는 개별기업 사업보고서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여하튼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참신한 새 연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아래에서는 내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내용 중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주주가치 추구 경향이 어떤지에 대해서만 그림으로 보인다(그림 1, 2 참조).

ⓒ이병천

ⓒ이병천

위의 그림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1997년 이후 한국제조업 동향을 대표하는 쌍두마차격의 기업이라 할 수 있는데, 주주가치 성향 면에서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취득을 중심으로- 배당성향은 낮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주주가치 성향을 보여 왔음에 반해, 현대자동차는 주주가치 경영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자사주 취득' 값이 매우 낮다. 2002~2007년의 6년 동안 삼성전자가 평균 32.1%로 높은 주주가치 성향을 보였음에 반해 현대자동차의 같은 값은 21.4%에 불과하다. 2005년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훨씬 낮아진다. 삼성전자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으면서 자사주 지분율이 아주 높은 대표기업으로서, 주가 부양 못지않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취득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삼성전자도 2008년 이후에는 자사주 취득에서 처분 쪽으로 돌아서면서 주주가치 성향이 매우 낮아졌다. 이는 위기관리 경영으로 전환한 탓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2008년 이후 영업 실적은 양호했지만 낮은 주주가치성향에는 별반 변함이 없다. 물론 상장기업 중에서 한국통신(KT)처럼 엄청나게 주주 퍼주기 경영을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제조 대기업의 표준형으로 보기는 어렵다.

둘째, 노동분배율(부가가치 대비 인건비)의 동향은 전문가들에 의해 잘 밝혀져 있고, 보통의 '경제시민'들도 대체로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은 1997년 이후 급격히 추락했다. 그리고 2008년 이후는 노동소득분배율과 주주가치 성향 모두 낮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현대자동차의 분배율이 더 높다. 셋째, 재벌 대기업은 큰 세금 부담을 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그들의 조세 부담은 상당히 낮다. 199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제조업 전체 실효법인세율이 20.5%인데 삼성전자는 14.1%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그보다는 높아 19.0%다(2005~2009년 평균).

넷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모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내유보율이 매우 높을 뿐더러, 심지어 1997년 이전보다 줄곧 더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90%대, 현대차는 80%대의 유보율을 보이고 있다. 한편 미국기업의 경우 사내유보율은 50~60% 수준으로 낮은데 이는 순이익의 중요 부분을 배당 및 자사주 취득으로 유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한국기업의 높은 사내유보율은 한국기업의 성과배분방식에서 노동에 돌아가는 몫이 낮음은 물론 주주에 돌아가는 몫도 미국에 비해서는 낮고, 많은 부분을 기업내부에 쌓아두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현금성 자산 비중이 높은 사실과도 부합된다. 물론 내부유보에 대한 잔여청구권과 통제권의 행사는 재벌총수가 쥐고 있다. 다시 말해 높은 사내유보율은 총수가치와 기업집단(또는 성장) 가치를 같이 추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재벌총수는 주주의 '눈치'를 봐야 하고 서로 타협을 해야만 한다.

경제민주화의 정도(正道): 어설픈 타협 이전에 힘 있게 부딪쳐라

장하준 그룹은 국제금융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 대기업 정도는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재벌개혁은 국제금융자본이 한국재벌을 "접수"할 위험을 낳는다고 주장하고, 재벌 해체와 재벌 특권-독식의 해체도 구분하질 못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제시하는 실증적 근거는 취약하다. 이는 장하준 그룹의 중대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한국의 재벌은 장하준 그룹의 주장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총수 주도 또는 독재 아래 막강한 자율적 파워를 갖고서 한편으로 금융시장 압력에 대응하고 다른 한편 재벌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경우,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으로 불법파견노동을 광범하게 활용하고 대법원 판결까지 모르쇠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국제금융자본의 압박보다는 현대차 재벌그룹의 독자적인 판단과 대응양식이 더 우세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동문제, 중소기업/소상인 문제를 국제금융자본 탓으로 돌린다면 이는 심한 단순논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그리고 정의롭고도 좋은 공생의 숲 경제로 가려면 먼저 착시, 착각부터 벗어야 할 것이다. 깊은 강은 국제금융자본/재벌 사이가 아니라, '재벌과 국제금융자본/ 비정규직 노동자+취약한 정규직+중소기업자+소상공인+자영업자+취약한 중산층' 사이에서 흐르고 있다. '재벌을 제거한 신자유주의'론에 의거한 어설픈 타협론을 버리는 것이 먼저다. 도전자는 값싼 타협을 말하기 전에 먼저 힘 있게, 당차게 부딪쳐야 한다. 재벌의 고삐를 잡고 국가다운 국가를 구성해 낼 수 있는 시민정치적, 제도정치적 대항력을, 경제민주화 동맹의 소통과 공감 능력 및 저변 기반을 크게 키우고 넓히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해야만 1%를 위한 재벌독식 정글경제에서 배제되고 버림받은 99% '을'(乙)들의 삶의 가치, 중소기업인/소상공인의 가치와 골목 평화의 가치, 너무나 가볍게 내동댕이쳐진 노동하는 인간의 가치 그리고 생활하는 자유인의 가치를 굳게 세우고 키우는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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