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갈 것(이다). 세계 경제가 회복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우리 경제는 올해 상저하고(上底下高)가 아니라 점저(漸低)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 자본주의는 끝났다." (상저하고(上底下高)는 상반기에는 경기가 어렵지만 후반기에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며, 점저(漸低)는 갈수록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용한 말은 얼핏 들으면 좌파 마르크스 경제학자의 말로 착각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했던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경제적 실세로 평가되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유럽 재정 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미칠 것"이라고 발언했다.
불과 5년 전 이맘 때 쯤에, 경제 성장률 7퍼센트, 국민 소득 4만 달러, 경제 규모 세계 7위라는 7·4·7 공약을 내걸었던 이들이 "자본주의는 끝났다"라고 선언하고,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바야흐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이른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시대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리셋 코리아' :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정책적 종합'
2007년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경제 살리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으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폭탄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국제 금융 시장 불안,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 한국 경제의 항구적 내수 부진, 가계 부채 폭탄과 부동산 시장 침체, 외환 변동성의 심화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의 증가 등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2010년 6·2 지방 선거에서 무상 급식의 돌풍 이후 정치권에는 '보편적 복지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복지 국가 담론은 급기야 '경제 민주화'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위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만들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가 정치권의 화두로 격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 <리셋 코리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펴냄).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
여기서 경제 민주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 가지는 흔히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주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재벌 개혁 방안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공황, 경제 민주화, 복지 국가의 '3차 방정식'
<리셋 코리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충실한 책이다. 총 20장에 걸친 지면을 통해 △주주 자본주의 극복 방안 △재벌 개혁 방안 △사회적 경제 △에너지-식량-일자리-노후-의료-보육-교육-주거 등의 분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07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 국가 혁명>(밈 펴냄)이 낱개들로 존재하던 복지 정책들을 하나의 '국가 모델'로 연결하며 훗날 복지 국가 담론의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새사연의 <리셋 코리아>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의 이론적 종합을 꾀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진보 진영의 정책적 모색 중에서 가장 '진일보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MB노믹스의 경제 실세들이 '대공황'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뭔가 허전하다.
이러한 허전함의 근원은, 대공황의 시대에는 국민들이 '경제 위기 극복'에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대공황 극복-경제 민주화-복지 국가를 '한방에' 관통하는 3차 방정식의 해법이다. 이러한 3차 방정식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퍼펙트 스톰의 국면은 진보·개혁 세력에게 위기인가? 2007년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퍼펙트 스톰은 오히려 야권에게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1929년 대공황에 대응했던 미국과 스웨덴을 통해 볼 수 있다.
'퍼펙트 스톰' 국면 : 야권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인 이유
먼저,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에릭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 주권>(현재호·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1929년 대공황 시기까지만 해도 미국의 정치 구도는, 마치 오늘날 한국처럼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지역 정당의 성격이 강했다. 민주당은 남부 기반, 공화당은 북부 기반이었기에 서로 상대 정당의 지역에서는 상원의원을 배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치러진 1932년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을 하고 '뉴딜'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개혁 정책을 펼치면서 국면은 확 바뀌게 된다.
뉴딜 정책의 핵심은 단지 테네시 강 유역 개발(TVA) 사업이 아니었다. 뉴딜 정책의 진짜 핵심은 와그너 법을 통한 미국 최초의 노동 3권 도입이었고, 그리고 글래스-스티걸 법을 통해 상업 은행의 지역 간 겸업을 금지했던 '금융 규제(=금융 억압) 정책'을 도입한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러한 일련의 개혁적 법안들을 통해서 '미국 판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록펠러, 모건 등의 경제적 권력을 점진적으로 해체시킬 수 있었다.
즉,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노동 기본권 강화 △금융 자본 규제 △재벌 권력 억제 등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뉴딜 정책을 흔히 '뉴딜 동맹'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뉴딜 동맹 이후 미국의 정치 구도는 비로서 '계층적' 대립 구도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화당과 연방대법원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지지·엄호를 받으며 루스벨트는 4선에 걸쳐 민주적 장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미국과 거의 유사한 사례가 1932년 스웨덴에서 벌어진다. 당시 유럽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재정 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에도 잘 나와 있듯이, 1932년 스웨덴 총선에서 사회민주당 내 좌파 이론가였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경제 위기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해법으로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 정책을 제시한다. 정책적 내용의 핵심은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 공공 투자 지출 증대를 통한 일자리 해소였다. 결국 1932년 총선에서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42퍼센트의 득표율을 얻으며, 훗날 1976년까지 역시 민주적 장기 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 시기 독일의 상황은 달랐다.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김유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 잘 나와 있듯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자본주의 자동 붕괴론에 입각한 폭력 혁명이라는 기존의 '낡은 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독일 국민들이 원했던 '정치적 해법'에 대해 방기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 결과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던 나치당의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다. 히틀러 역시 집권 이후,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 기간 산업과 군수 산업 부흥을 통해 경기를 진작하고 고용을 창출하게 된다.
요컨대 1929년 대공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스웨덴은 대안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진보파가 집권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사회 개혁을 통해 노동 3권 강화 및 복지 국가의 주춧돌을 놓게 된다. 반면, 독일의 경우 독일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나치당의 히틀러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인류적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두 가지 '경우의 수' : 경제 위기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해법
다시, 한국적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아직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만수와 김석동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퍼펙트 스톰이 현실화될 경우, 경제 위기 해법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하나는, '허리띠 졸라매기'라는 보수의 해법이다. 특히나 한국은 박정희식 발전 국가의 경험이 있기에, 경제가 어려우니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복지 국가-경제 민주화 같은 것은 '먼 훗날'로 미루자는 논리가 경험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실시하는 진보의 해법이다. 1932년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성공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복지 국가 △경제 민주화 △대공황(=퍼펙트 스톰)이라는 3차 방정식을 해결함에 있어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를 '경제 위기 극복'으로 상정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의 양 날개로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과 금융 자유화 억제)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확히 1929년 대공황 시기에 와그너 법(=노동 3권)과 글래스-스티걸 법(=금융 규제)을 실행했던 루스벨트의 뉴딜적 해법인 셈이다.
'경제 민주화' vs. '경제 자유화'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최근 <프레시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혹은 경제 민주화 논쟁)에 대해서 우려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논쟁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같은 것은 같은 대로 빨리 인정하고, '다른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더 진척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서로가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제3자의 입장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난해해지고 있다.
둘째, '프레임 설정'의 오류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선택' 그룹)이라는 책에는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비판하는 표현이 족히 50번은 넘게 나온다. '선택' 그룹은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로, 주주 자본주의(=신자유주의)는 1주 1표의 원리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경제 민주화론자'들로 규정하며 비판하는 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인식론적 혼란을 초래하는 매우 현명하지 못한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점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경제 민주화 vs. 경제 자유화'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 부분은 보다 근본적인 지점인데 현재 험한 표현과 비난성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 양대 진영은 정말로 '큰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일까? 특히나 새사연의 <리셋 코리아>를 보면 이러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새사연의 <리셋 코리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은 이러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신자유주의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기업 경영의 최고 원칙으로 삼는 주주 자본주의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시 외환 위기 이후 주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 관행이 도입되었다." (52쪽)
"지난 10년 동안 경제개혁연대는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 주주 이론에 입각한 소액 주주 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 (…) 그러나, 주주 이론에 입각한 재벌 규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 기업의 이해 관계자는 주주 외에도 노동자, 하청 기업, 지역 주민 그리고 소비자를 포함한다." (97쪽)
"자본 유출입 규제 등을 통해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이래야 경제의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 경제의 금융화와 단기주의를 방지하기 위해 배당에 대한 과세와 자사주 매입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135쪽)
새사연의 <리셋 코리아>는 주주 자본주의를 분명하게 비판하되, 재벌 개혁도 강조하는 입장이다. 주주자본주의라는 '논점'에 국한해서 보면, 실천적으로 '선택' 그룹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김병권의 글(제6장)에 따르면, 재벌은 지난 10년간 자산은 3배, 매출은 2배 이상, 순이익은 4배, 계열사는 208개에서 364개로 증가했다. 그래서 김병권은 재벌 개혁의 방법론으로 독일의 콘체른 법을 모방한 '재벌 규제 법'(=기업 집단 법)의 제정을 제시한다. (참고로, 독일의 콘체른 법을 참고하는 '기업 집단 법' 제정 필요성은 정승일의 주장이기도 하고, 김상조의 주장이기도 하다.)
본래 '선택' 그룹이 옹호하려 했던 재벌 개념의 핵심은 '계열사-그룹 체제'의 장점이었다. 나 역시 동의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4년간 확장된 488개의 재벌 계열사의 74.2퍼센트는 비제조업 분야이다. 여기에는 순대, 떡볶이, 제과점, 비빔밥, 라면, 상가 오피스 분양, 콜 센터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업영역들은 대규모 자본에 기반을 둔 '장기적 모험 투자'의 속성과 무관한 셈이다. 재벌의 이러한 행태는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포식자일 뿐이다.
게다가 새사연과 김상조 그리고 '선택' 그룹은 공통적으로 기업 집단 법(=재벌 규제 법)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이 '논점'에 국한해서 견해가 같은 셈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총선 공약, 이정희, 유시민, 노회찬, 이동걸 등은 "30개 재벌을 300개, 3,000개로 만들자"고 주장함으로서 계열사 체제의 '해체'를 주장한 셈이다. 이러한 입장과 새사연-김상조의 입장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만드는 경제 전략
경제 민주화도 중요하고 복지 국가도 중요하다. 그리고 재벌 개혁도 중요하고 주주 자본주의 극복도 중요하다. 둘 다 시급한 것이고, 둘 다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를 향해 해일처럼 엄습해오고 있는 퍼펙트 스톰에 맞서 1932년 루스벨트가 그랬던 것처럼,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전략적 지혜'가 담겨있는 정치·경제적 해법 경쟁으로 현재의 논쟁을 발전시켜 보면 어떨까?
본래, '분석'에 대한 논쟁은 더 좋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새사연의 <리셋 코리아> 그리고 장하준 등이 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 그리고 김상조의 <한국 경제 종횡무진>(오마이북 펴냄) 등의 '기본 발제문'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생산적' 논쟁은 분명, 한국의 진보 개혁 정치 세력을 더 '생산적인' 집단으로 만드는데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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