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성격논쟁은 토론하는 그룹들의 주장이 세부적인 방법과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난다 할지라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같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제거하는 건설적이고 융합적인 토론이 되지 못하고 이분법적으로 토론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선택>(<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저자 장하준 교수, 정승일 박사, 이종태 기자)과 <진보>(<선택>이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을 진보적 자유주의 혹은 주류 경제 민주화라고 언급했는데 줄여서 <진보>라고 함)의 주장의 장점을 융합하고 단점을 제거한 새로운 제안을 통해 더 대안적이고 진취적인 토론이 진행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선택> 그룹의 접근법과 장점
<선택> 그룹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 개혁이라는 <진보>측의 주장에 반대하고 재벌 개혁은 더 큰 프레임의 하나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방안 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재벌개혁과 타협을 동시에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선택>과 <진보>는 유럽과 같이 기업집단법을 도입하여 기업집단의 실체와 권리와 의무를 함께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같다. 그렇지만 <선택>은 이상적인 방향을 지향하지만 현실적인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스웨덴과 유럽의 예처럼 총수의 지배권 유지를 도와주는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 대기업 지배구조를 안정화해 자사주 매입 등에 드는 비용 등을 줄여주고 그 반대급부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재벌들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으로 타협하여 노동자와 소비자, 일반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경제적 권한과 유익을 강화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대기업과 나머지 모두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국가 전체적인 경제 실리"를 지향한다. 이에 비해 <진보> 그룹은 기업집단의 총수의 지배권을 약화시키는 민주화를 지향하고 있다. <선택>은 이러한 <진보>의 재벌개혁(해체)론대로라면 재벌을 개혁(해체)한 그 자리에 초국적 자본이 들어와 오히려 재벌 지배 때보다 더 자본의 권력이 커지게 하고 노동권력, 국가권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글로벌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생각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선택>은 실제적인 경제적 기여와 유익의 관점에서 비록 자유경제 방식은 아니지만 박정희 체제도 한국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선택>의 장점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 세계 경제환경과 국내 경제환경을 연결해 파악하고,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단계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 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기업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경제민주화인데 그것을 실제에 적용해보면 몇 단계를 거쳐 오히려 다수의 경제적 권한이 약화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의 정의" 영역에도 나타나고 있어 <진보>가 시장의 공정과 정의에 치중하여 실제적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선택> 중 특히 정승일 박사는 복지에 사실 경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복지가 가장 시급한 목표와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주 1표가 작동되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경제민주화가 어려우므로 1인 1표의 원리로 동작되는 정치의 영역에서 다수를 만족시키는 복지를 통해 정치적인 힘을 얻고 그것으로 대기업과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 민주화를 이루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진보>가 다수를 위한 현실적인 경제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수만이 아는 복잡한 문제인 대기업 지배구조를 우선적인 쟁점으로 내걸어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고 <선택>은 비판한다. 요약하면 <선택>은 단순한 경제적인 접근을 넘어 정치경제적인 접근으로 다수를 위한 복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경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학에서 권력의 요소를 배제한 방법론적 개체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의 평소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으로, <진보>의 경제 민주화론이 가지지 못했던 실제적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위한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택> 그룹의 주장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선택>과 <진보>의 장점이 융합되고 각각의 한계점과 단점이 제거된 '자본시장 민주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제안해본다.
<선택>의 한계
첫째는 <선택> 그룹이 제시하는 복지의 정치적인 한계이다. 현실적으로 <선택>의 주장을 실현할 복지의 대안은 증세밖에 없다. 그 이유는 재정 적자를 무릅쓰고 복지를 강행하면 국가 신용평가가 떨어져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글로벌 경제 체제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증세의 타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점이 남게 된다.
둘째는 <선택> 그룹이 제시하는 복지의 경제적인 한계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복지는 소비 수준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영역을 넘어, 생산과 노동으로 연결되어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발전적 흐름이다. 이렇게 단순한 보편적 복지에서 생산복지와 노동 연계 복지를 전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상태의 복지가 주어지면 속된 말로 놀고먹는 복지로 흐르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역사적 학습과 경험 속에서 복지와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한꺼번에 이루도록 노력하는 선진국의 현재의 접근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그것을 앞서는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시장경제의 약화가 가장 좋은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든 시장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민주화다. 단순화해서 얘기하면, 나는 전체 자본가 그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본다."라고 장하준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장하준 교수에게 동의하는 점은 개별 국가를 넘어선 전체 자본가 그룹의 힘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장하준 교수는 시장과 시장 참여자를 경제민주화에서 하나로 연결해서 보지만 사실은 이것은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현재 구도에서는 시장 안에서 아무리 변형을 주더라도 대기업과 자본가들이 힘을 가지는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약화시키는 것이 자본가 그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시장 참여자와 시장을 더 정의롭게, 민주적으로 만들어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를 위한 시장으로 바꾼다면 시장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경제민주화가 될 수 있다.
넷째는 <선택> 그룹이 구체적인 대기업의 양보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타협하는 대가로 대기업이 확실하게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경제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선택> 그룹에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제안을 하지 못하고 있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자본시장 민주화가 필요하다
<선택>과 <진보>의 융합적인 해법의 방향으로 첫 번째, 적극적인 민주화의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선택> 그룹과 <진보> 그룹이 경제 민주화 개념에서 모두 놓치고 있는 부분은 경제 민주화를 "소수"의 권한을 제한하는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제도적 관점에서 민주화는 "소수"가 가진 "권한과 특권"을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결론적으로 민주화는 전체에서 소수의 특권이 약화되는 것이지만, 소수의 권한이 약화되는 것이 꼭 전체에게 그 특권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모두"가 "소수"가 가졌던 특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서도 원래 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이 소수의 귀족들에 의해 제한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그 주권 자체가 전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수용되기 위한 새로운 제도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시장에서 "소수" 자본가가 가졌던 권한을 "모두"가 가지게 해서 시장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방향이 "긍정적인 방향의 민주화" 그리고 "적극적인 경제민주화", "보편적인 경제민주화"의 방향이다.
두 번째, 가장 중요한 특권을 민주화해야 한다. 많은 특권이 있지만 핵심적인 특권을 민주화하면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자본가 그룹과 대기업이 자본주의에서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자본시장에서 누리는 특권이다. 자본시장이 시작되면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고 미래의 가치를 현재로 가져와 성장할 수 있는 특권이 가장 중요한 특권인데 왜 이런 특권에 대한 민주화가 거론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투자자 보호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어서 경제학적으로 특권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자자가 안전하게 투자하면서도 "모두, 전부"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면 "모두"가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조와 시스템을 세 번째로 설명하겠다.
세 번째, 시장의 공정성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시장 참여자의 힘의 균형을 위해 개인과 작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대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시장의 공정성을 다룰 때 경제 참여자가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시장의 공정성만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 중에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이 개별적이고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동시에 융합화된 대형기업이 되는 이중성을 가진 기업이 된다면, 시장에서 특히 자본시장에서 대기업과 같은 특권을 누리고 힘의 균형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방향을 만족시키는 구체적인 해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별 노동자들이 인적자본 파트너가 되고, 중소기업들이 파트너가 되어 파트너십을 만들고, 그 파트너십에서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파트너십과 주식회사가 융합된 기업지배구조를 만들어 자본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트너십과 주식회사를 융합한 구조를 자본시장에 진입시키는 부분은 다소 전문적인 영역으로 기업의 구조, 자본시장 모델 등에 익숙해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아주 대략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더 구체적인 모델과 검증, 시뮬레이션은 필자의 저서인 <융합경제 3.0 그리고 자본주의 7.0>-풍요의 경제 민주화를 참조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자본시장에 상장되기 위한 주식회사 구조로는 연합된 기업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주식회사의 주식구조가 미래를 예측해서 투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결과에 따라 주식지분을 지속적으로 변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트너십 주식회사의 구조 안에 형성되는 자본구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기여한 대로 자본을 사후에 주기적으로 평가하여 합리적으로 자본과 자본이익을 보유하고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될 수 있다. 그래서 파트너십 주식회사 안에 형성된 열린 내부자본시장과 열린 내부노동시장은 그동안 대기업만이 가졌던 내부자본시장과 내부노동시장의 장점을 개인과 중소기업이 모두 가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누리는 이런 혜택은 자본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복지와 노동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으로 모든 이에게 주어질 수 있게 된다. 국가는 자본과 화폐에 대해 한국은행과 함께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듯이 모든 인적자본을 위한 최종 투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관협력인적자본융합주식회사를 만들고 실행할 수 있다. 이 민관협력기업을 상장시켜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세금이 아닌 인적자본 투자의 개념으로 민간에서 투자 받은 공모자금과 자본시장에 조달된 자금을 통해 재원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모델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투자를 받아 공부할지, 자신이 돈을 투자하여 공부할 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고, 투자를 받은 대학생들이 취업하여 내는 소득세 중 일부가 투자금 회수로 사용된다. 그런데 평균 이상의 소득이 있게 될 때에는 소득세보다 더 많이 투자에 대한 회수를 하지만 이것은 조세와 달리 저항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 투자에 대한 회수는 재투자에 활용돼 미래에 회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개념을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위한 재취업과 교육에 적용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모든 개인과 중소기업, 지자체, 정부가 민관협력융합기업이나 혹은 민간융합기업에 소속되어 기존보다 아주 크지만 이전과는 달리 안전한 투자가 일어나는 자본시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경제민주화를 이룰 개인과 중소기업의 대형화와 자본시장 진입은 많은 경제적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불안의 근원을 투자로 본 케인즈와 포스트케인지언인 민스키의 이론대로, 전체 경제의 순환에서 재투자되지 못하고 퇴장(hoard)되는 자본과 위험한 곳에 투자되는 자본 때문에 근원적으로 모든 경제 위기가 만들어진다. 개인과 중소기업, 나아가서는 대기업과 민관협력기업까지 융합기업으로 안전한 투자구조를 만든다면 지금보다 자본시장이 아주 큰 규모로 확장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룰 뿐 아니라 투자의 활력으로 경제의 건강한 순환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안정적인 큰 자본시장은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전 세계 자본의 안전한 투자처가 되어 세계 금융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었던 나라들의 공통점은 경제위기 가운데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이며 전 세계의 돈이 그 나라로 몰려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시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 미국이 그랬다.
퍼펙트 스톰과 같은 대공황이 국내외적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자본시장 민주화 방안은 투자처를 찾지 못한 세계의 돈이 한국으로 몰려올 수 있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전의 일등국가들의 착취 구조와 달리, 세계가 동반 성장하는 융합적인 구조로 세계 국가를 금융위기에서 구하고 경제민주화 시대를 여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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