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여승무원들은 끝내 이적을 거부했다. 편안한 길보다 가시밭길을 더 걷기로 한 모양이다. 한국철도공사는 22일 "이적 시한인 19일까지 이적에 불응한 여승무원들과의 법적 고용관계는 모두 끝났다"고 밝혔다. 사실상 여승무원들의 대량 정리해고를 공식화한 것이다.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에게 KTX 승무업무를 새로 위탁받은 KTX광광레저로 이적할 것을 요구해 왔다.
KTX 여승무원은 두 달 남짓 농성을 하면서 철도공사에 정규직 전환 및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직접고용 요구'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정 힘들다면 비정규직(계약직)으로 놔두더라도 철도공사가 채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요구는 철도공사가 280명을 사실상 집단해고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끝내 수용되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들은 투쟁을 더 이어가기로 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철도공사에 의한 직접고용은 그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KTX 여승무원들이 고생스런 길을 더 걷고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간접고용된 노동자의 사용자는 누구일까?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두고 그간 노동계에서는 "퇴로 없는 투쟁"이라는 말이 오갔다. '정규직 및 직접고용'이란 요구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요구가 아니라는 판단이 근저에 깔려 있는 말이었다. 물론 KTX 여승무원 당사자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릴 만한 말이다. 하지만 KTX 여승무원과 철도공사를 둘러싼 상황은 충분히 그랬다.
하지만 '퇴로 없는 투쟁'은 노동계 내에서 종종 발생한다. 개중에는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내건 투쟁도 있지만, 대체로는 나름의 명분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KTX 여승무원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KTX 여승무원들이 집단해고 결정 뒤에도 더 많은 시간 고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KTX 여승무원 사태의 근본은 복잡한 고용관계에 있다. KTX 여승무원들은 2004년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철도유통에 입사했다. 근로계약서상 사용자는 철도유통이란 의미다. 따라서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을 상대할 법적 의무가 없다. 최근 몇 차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KTX 여승무원을 만나긴 했지만, 철도공사가 대부분 대화 제의를 거부한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KTX 여승무원은 실질적 사용자가 철도공사라고 봤다. 철도유통은 공사의 대리인에 불과한 만큼 실질적 결정권을 갖고 있는 철도공사가 직접 사용자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철도공사가 법적인 의미에서 사용자는 아니지만 실제 근로관계에서는 사용자 위치에 있다는 것이 KTX 여승무원과 노동계의 생각이다. 파업 투쟁 기간 동안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유통이 아닌 철도공사를 상대로 투쟁을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논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간접고용이 일상화된 노동 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논란이다. 지난 2~3년 간 노동계를 뜨겁게 달군 주체 중 하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었다.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KM&I의 하청노동자, 현대하이스코의 하청노동자, 하이스코-매그나칩의 하청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이들의 투쟁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뒀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원 사업자는 사용자 책임이 없다며 교섭장에도 나오지 않는다. 하청 사업자는 실질적 결정권이 없다며 교섭에 소극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간접고용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법원에서도 원 사업자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GM대우나 현대하이스코가 오랜 침묵을 깨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나선 것이 한 예다.
요컨대 간접고용 문제로 발생한 노사갈등에서 원 사업자의 사용자 책임성 인정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법원의 판결이나 새로운 법이 만들어진다면 상황이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현재 원 사업자의 사용자 책임성 인정 문제는 노사간 힘겨루기의 대상이다. 법이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KTX 여승무원 사태는 바로 그 한가운데 있다.
왜 여승무원 업무만 위탁했나
또하나 살펴볼 지점은 KTX 여승무원 사태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철도공사는 상품판매 업무를 제외하고 KTX에서 근무하는 대다수 인원을 직접고용하고 있다. 대부분 남성인 여객 팀장 역시 철도공사의 정식 직원이다. 유독 여승무원만 철도유통에 위탁한 셈이다. 여기서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이란 주장이 나온다. 일부 여성단체나 여성 국회의원들이 KTX 여승무원 사태를 눈여겨 보고 있는 이유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등 4개 여성단체는 지난 3월 28일 공동성명을 통해 여승무원만 간접고용하고 있는 철도공사의 인사시스템에 대해 "비정규직 문제를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성차별 고용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노동 차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고, 노동조건이나 임금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노동계 역시 그간 남성중심적 운동이라는 비판을 수용해 여성노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쏟는 등 미약하나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여성노동의 불리한 특성이 KTX 여승무원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간접고용)', '여성'이라는 두 개의 굴레는 KTX 여승무원이 여전히 투쟁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가 현실에 부딪혔을 때
그러나 투쟁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어 문제가 해결되거나 투쟁대오가 흐트러지면서 자동 소멸하기 마련이다. 다만 노조가 얼마나 더 단결력을 유지할지 여부가 투쟁종결 시점을 지연시키거나 앞당길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야 어떻든,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한 처우가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가 부각된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동일한 근로조건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보편적 사회정의에 가깝다. 그러나 한층 교묘해진 자본주의의 고용제도와 더욱 복잡해진 노동시장의 현실이 이러한 보편적 사회정의를 잠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KTX여승무원의 투쟁은 교묘해진 자본주의의 질서에 저항하는 가장 근본적인 싸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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