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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가 비정규직에 노동운동까지 하게 될 거라곤…"

[르포] 머리띠 하고 사복투쟁 나선 KTX 여승무원들

지난 주말부터 KTX 열차는 이른바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여승무원 없이 운행되고 있다. 지난 24일, 파업을 앞둔 철도노조가 조합원들에게 평상복 근무를 명해 기관사, 열차팀장 등 다양한 직군의 조합원들이 일제히 사복근무에 나섰지만, 유독 KTX 여승무원들만 '고객서비스에 종사하는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로 회사 측에서 열차탑승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여승무원들을 관리하는 철도유통(구 홍익회)이 나서서 사복을 입은 여승무원들의 탑승을 막고 그들을 무단결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노조 KTX 여승무원지부 조합원들은 이런 조처는 원청사인 철도공사가 지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 로 알고 들어왔더니 비정규직 노동자더라**

〈사진1〉
사측의 탑승거부에 따른 여승무원 지부 조합원들의 농성이 이틀째 진행되던 지난 26일, 기자는 '왜 철도공사는 유독 여승무원들의 탑승 근무만 가로막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먼저 부산역으로 가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만났다.

현재 KTX 여승무원들은 400명 남짓인데, 이들 가운데 280명 정도는 서울역을, 나머지 120명가량은 부산역을 거점으로 삼고 근무하고 있다.

여승무원노조의 부산지부장인 정혜인 씨는 KTX 개통 이전에 입사해 교육을 받고 2004년 4월 1일 개통일부터 근무한 '최고참 1기' 승무원이다.

"아시다시피 2003년 말부터 TV, 신문, 인터넷에 꿈의 열차 KTX 선전이 얼마나 많았어요? 우리도 '와, 정말 대단한가 보다' 했었죠. 필기시험은 없었지만 서류, 면접 경쟁률은 상당히 높았어요. 높은 경쟁을 뚫고 2004년 2월 입사해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으쓱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출근 두 달이 넘어서야 연봉계약서를 쓰게 돼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죠."

당시 철도공사는 차세대 고속열차의 이미지에 걸맞게 항공기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떠들썩하게 여승무원들을 뽑았다. 뉴스는 물론이고 각종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출중한 미모와 서비스'를 자랑하는 여승무원들 이야기가 넘쳐났다.

"철도공사 소속이 아니란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사실상 철도공사 소속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들었고, 교육도 철도공사 시설에서 받았어요. 우리를 뽑은 철도유통(홍익회)에서는 교육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고, 실질적으로는 철도공사에서 다 진행한 거죠."

"처음 1년 간은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어요. 우리 그때 나이가 스물셋이나 스물넷, 거의 다 학교 졸업하고 바로 들어온 사회초년생인데다가 선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말하기도 힘들었는데 1년 동안 꾹꾹 눌러가며 참았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노조를 만들고 12월에는 철도노조에 가입하면서 민주노총으로 옮겼죠. 그때부터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됐고, 이렇게 싸우게 된 거예요. 내가 노동운동을 하게 될 거라고 꿈에서라도 생각했겠어요?" 정 지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 지부장의 이야기는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우리가 입사할 때 서울, 광주, 목포, 부산, 이렇게 베이스(거점) 별로 직원들을 모집했어요. 당연히 가까이 사는 애들이 가까운 베이스에 지원을 해서 뽑혔죠. 그런데 개통하는 날 서울, 부산 베이스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없앤다고 그래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회사에서는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주거비 지원이요? 한푼도 없었죠. 그런 거 줄 회사가 아니에요."

옆에 있던 한 조합원이 거든다. "우리 근무조 편성이 몇 개로 되어있는지 아세요? 43개 조예요, 43개 조. 120명이 43개 조로 움직이니까 한 조에 3명가량인데 근무조 편성도 중구난방이에요. 어떤 조는 한 달에 200시간 기차 타고 어떤 조는 한 달에 170시간 타는데 같은 월급 받는단 말이죠. 회사에 따지면, '알다시피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철도공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라고 답하고 공사에 물어보면 '여러분은 우리 직원이 아니니 철도유통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하고…. 뭐, 철도유통이 힘이 없다는 건 맞는 말이긴 하죠"

처음 나선 투쟁이라 조합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댓글 하나에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일하기 싫으면 때려치워라. 실업자가 얼만데…"라는 식의 날선 글을 보면 섬뜩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민의 발목을 잡는 노동귀족이라는 말을 듣는 건 너무너무 억울해요."

"언론이 우리 사정을 더도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는 어느 파업현장을 가도 듣게 되는 당부다.

***여승무원 없는 KTX를 타다**

〈사진2〉 
부산지부 농성조합원들을 뒤로 하고 서울행 KTX를 타러 승강장으로 향했다. 늘 열차 앞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하고 상냥하게 인사를 해주던 여승무원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세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보통 때면 PDA 단말기를 들고 다니면서 상황을 체크하던 여승무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특실에 가봤더니 평소에 여승무원들이 서비스해주던 음료수와 신문이 입구에 그냥 쌓여 있었다. '셀프서비스'라고 했다. 거의 비행기 요금에 맞먹는 6만3000원 정도를 내고 특실을 탄 사람들은 좀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가 정차할 때 문이 열려도 안내하는 사람이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열차에 타고 내릴때 시중을 들어주던 여승무원들이 없으니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선배 기수랑 차이가 나야 하니 후배 기수 월급 깎겠다니"**

서울역에 내리니 서울 조합원들이 역 승강장 바닥에 주저앉아 집회를 하고 있었다. KTX 운행 이후 헌신짝처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던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이 악에 받친 싸움을 벌여 해고를 철회시키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하던 바로 그 자리다.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이 머리띠를 매고 팔뚝질을 하던 그 자리를 이제는 KTX 여승무원들이 채우고 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작년에 새마을호 언니들이 여기서 집회하는 걸 봤죠. 그때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 우리 싸움 하는 데 그분들이 경험도 전수해주시고 여러 모로 도움도 많이 줘요. 승무원노조가 철도노조에 가입한 이후 힘이 많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정규직 직원들하고 같이 파업하기로 결의한 것이구요."

'어쩌다 보니' 내달 1일 전면파업을 앞두고 있는 철도노조의 선봉장이 되어버린 여승무원지부 조합원들이 "역시 내가 당해봐야 실감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앰프를 만지고 노동가요를 틀던 강 모 조합원은 1기로 광주 베이스로 입사했다고 한다. 집값도 비싸고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세금 떼기 전에 2000만 원가량 되는 연봉으로는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고 강 씨는 말했다.

그런데 1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 뒤에는 부산과 서울, 두 군데 베이스에서 여승무원들을 뽑았다. 그런데 애시당초 뽑지나 말 것이지, 뽑은 다음에 서울 인원이 너무 많다며 몇십 명씩 부산으로 발령을 냈다는 것이다. "억울하면 그만두라"라는 말과 함께.

강 모 조합원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도 우리지만 후배들은 더 해요. 해가 지날수록 연봉은 더 깎이고 교육도 엉망이에요. 철도유통하고 철도공사의 계약기간이 3년인데 그 다음에는 우리를 KTX관광레저라는 자회사로 넘긴다네요. 철도공사랑 롯데관광이 합작해 만든 회산데, 철도공사 말대로 자기들이 우리랑 관련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를 마음대로 자회사로 넘길 수 있는 거죠?"

"유전비리로 구속됐던 왕영용 철도사업본부장 아세요? 그 사람이 이사로 있던 회사예요. 철도유통이나 마찬가지로 철도 퇴직자들이 꽉 잡고 있는 회사죠. 감사원 감사에서 매각청산 대상 판정을 받았는데 우리 덕에 살 길이 열린 거죠. 그쪽도 우리를 관리하고 근무편성할 능력이 없는 곳인데, 철도공사에서는 관리자 파견할 테니 걱정 마라고 그러네요. 업무지시가 실제로 이뤄지는 셈인데 이런 거 불법파견 아닌가요? 우리 의견요? 물어본 적이 전혀 없죠." 옆에 있던 조합원이 거든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무척 황당하다. 회사에서 1기와 그 이후 기수 직원들의 처우가 동등한 것은 형평성의 원리에서 어긋난다면서 차등을 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그래서 선배 기수의 임금을 올려 준 게 아니라 후배 기수의 임금을 깎았다고 한다. 별 희한한 형평성도 다 있다.

지난해 7월에 입사했다는 3기 승무원 둘은 할 말이 많았다. "1년이 안 됐으니 연봉은 모르겠는데 한 달에 110만 원 내지 120만 원 정도 받는 것 같아요. 우리는 교육도 홍익회 교육원인가 하는 데서 일주일밖에 안 받았어요. PDA 단말기 조작하는 거라든지 실질적인 건 현업에 투입된 다음에 선배들한테 어깨너머로 배웠고요."

열차가 도착하고 개찰구로 승객들이 빠져나오자 조합원들이 승객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줬다. 반응이 그리 나쁘진 않아 보였다. 남성 승객들은 여승무원 조합원들을 흘끔흘끔 훔쳐보기도 했다.

***철도 비정규직 2만 명, KTX 승무원 노조가 선봉**

〈사진3〉

서울역의 대표적인 터주대감인 남성 노숙자 한 명이 뭐라뭐라 고함을 치면서 조합원들의 대오로 다가섰다. 역시 철도노조 조끼를 입은 남성 조합원 한 명이 노숙자를 제지했다. 가만히 보니 이 남성 조합원은 아까부터 전기선도 이어주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을 하던 그 사람이었다.

서울정비창 비정규직이라는 이 조합원은 "내가 서울창 비정규직 3년차인데 월급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하고 묻는다. "글쎄요. 대략 한 100만 원 정도…"라는 답을 내놓자 주머니에서 구겨진 급여명세서를 꺼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기본급은 62만 원이고 각종 수당을 더하고 다시 4대보험을 빼면 실수령액이 84만 원이다. 명세서에 찍힌 주민등록 번호는 65로 시작된다. 우리 나이로 마흔 둘.

현재 철도에서는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한 비정규직 3천여 명과 KTX 여승무원 등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2만여 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도노조 김영훈 조합원과 간부들이 이철 사장과 실무교섭을 하는 자리에 따라 갔다는 민세원 지부장은 소식이 없다. 전화도 연결되지 않는다. 세 시간 동안 지부장을 기다리며 노동가요도 부르고 승객들에게 유인물도 나눠주고 구호도 외치던 조합원들은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조합원 총회를 하러 떠났다.

27일 오전 민세원 지부장과 통화를 했다. 여전히 열차탑승을 거부당하고 있고 대합실에서 집회를 하고 있단다. '철도공사 이철 사장님'하고는 언강생심 교섭은 꿈도 못 꾸고 그 분 들어가시는 복도에서 침묵시위를 하며 피켓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민 지부장은 끝내 '이철 사장님'을 못 만났다. 사측에서는 교섭장이 아니라 교섭 하러 가는 자리에도 여승무원 지부 조합원들이 없어야만 교섭을 진행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장 대신 승무본부장과의 면담을 주선해줬다고 한다.

민세원 지부장에 따르면 승무본부장은 "왜 우리가 KTX관광레저라는 곳으로 물건처럼 떠넘겨져야 하는지 이유라도 말해달라"는 요구에 "회사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고 우리 직원도 아닌 당신들한테 그걸 설명해줄 이유가 없다. 자회사와 공사의 인사교류 차원에서 관리자를 파견할 테니 그간 보였던 난맥상은 많이 없어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사교류가 있으면 우리도 공사로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햇병아리 노조인 철도노조 KTX승무원지부의 앞길은 아마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다. 역시 거의가 여성이었던 경찰청 고용직 노조가 황당한 직권면직을 당하고 기능직 전환을 요구하며 1년을 싸우다 결국 제한경쟁 채용이라는 절반의 승리만을 얻었던 것처럼. 또한 1년 간을 싸워 계약해지를 철회시키고 정규직 전환 약속은 얻어냈지만 아직도 계약직 신세인 새마을호 여승무원 노조가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의 노동자, 한 사람의 노동운동가는 교육과 학습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회사와 자본에 의해 탄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은 '지상의 스튜어디스' 400여 명을 노동자로, 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에 몇 사람의 노조 간부를 키워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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