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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무슨 짐짝입니까?"

KTX 여승무원들, 가족과 함께 결의대회

"엄마 아빠 다 오셨다. 철도공사 각오하라."

서울 용산구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한 달 남짓 점거농성을 벌여 온 KTX 여승무원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동안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어머니, 아버지, 애인을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고용보장 결의대회'**

전국철도노조 KTX승무지부는 16일 오후 2시 서울역사 안에서 가족과 함께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 2월 말부터 한 달 남짓 투쟁을 벌여 오는 동안 어머니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탓인지 여승무원들은 이날 결의대회 내내 어머니 손을 놓지 않았다.

초청된 가족들은 2시간 남짓 진행된 결의대회 내내 집회장 구석구석에서 딸 옆에 앉아 구호를 함께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집에 오지도 않고 차가운 바닥에서 고생하는 딸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부모의 모습은 애틋해 보였다.

결의대회는 문화공연을 벌이는 중간중간에 여승무원들이 나서서 발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승무원들은 그간 벌여 온 투쟁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설움에 복받치는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율동을 섞어 노래를 부르면서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한혜주 부산 KTX승무지부 부지회장은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며 "더욱 단결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호준 철도노조 서울본부 조직국장도 연대발언에서 "여승무원들이 왜 철도공사를 떠나야 하느냐"며 "이제는 이철 사장이 철도공사를 떠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시민들, 높은 관심 보여**

결의대회가 진행 중인 와중에도 KTX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역내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서울에 도착한 시민들이나 서울을 떠날 시민들이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KTX 여승무원들의 결의대회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다.

여승무원들이 결의대회 장소 주변에 깔아놓은 플랭카드와 선전물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이 아무개(55, 대전) 씨는 "TV에서만 KTX 여승무원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어린 여자애들이 차가운 바닥에서 농성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막 서울에 도착한 김미례(47, 서울 마포) 씨는 "어디를 가도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며 "복잡한 사정은 있겠지만 철도공사가 좋은 쪽으로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KTX 여승무원들이 만든 선전물 한 장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우리 애도 대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며 "아무리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대학 갓 졸업한 애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걸 보면 참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KTX 여승무원 문제 해결전망은 여전히 오리무중**

하지만 시민들과 KTX 여승무원들의 바람과 달리 KTX 여승무원의 고용 문제는 쉽게 풀리기 어려워 보인다. KTX 여승무원들이 지난 2월 말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KTX 승무지부의 상급단체인 전국철도노동조합(위원장 김영훈)이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가 철회했는가 하면, 최근에는 철도노조가 KTX 여승무원 문제는 미해결의 숙제로 남겨놓은 채 철도공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여성민우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가 철도공사에 대해 KTX 여승무원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철도공사와 KTX 여승무원 간 직접대화를 주선하기도 했지만, 현 상황을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KTX 승무 업무를 새로 위탁받은 (주)KTX관광레저가 여승무원 채용 공고를 내고 신입사원 채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지난 14일에는 KTX 여승무원을 고용하고 있던 (주)철도유통이 여승무원 전원에게 정리해고 예고 통보서를 전달했다.

정리해고 통보서에 따르면, (주)KTX 관광레저의 채용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KTX 여승무원들은 내달 15일자로 정리해고된다. 철도공사 측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KTX 여승무원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그리 멀지 않다.

다음은 KTX 여승무원을 1남1녀 중 막내딸로 둔 김재성(62) 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김 씨는 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는 한편 이번 사태가 긍정적으로 풀리길 바라는 염원을 드러냈다.

-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따님이 투쟁에 나섰을 때 뭐라고 말해줬나?

"철도공사에서 다 알아서 어련히 처리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웬만하면 (투쟁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다. 극단적인 싸움을 하기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보라고, 투쟁한다고 문제가 풀리겠느냐고 말했었다."

-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뭔가?

"한 달 동안 철도공사가 하는 걸 지켜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최소한 철도공사가 애들이랑 정식으로 대화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애들이 그토록 직접대화를 원하는데 그걸 못 들어주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 최근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받아보았을 때 심정은 어땠나?

"글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이유야 어쨌든 매듭이 지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애가 젊은데 여기서 잘린다고 해서 다른 데 일자리 하나 없겠나 싶었다. 우리 애는 참 건강했다. 학교다닐 때 결석한 번 안할 정도로 건강체질이다. 그런데 여기 취직한 뒤로 애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집에만 오면 초죽음 상태였다. 철도공사 취직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푹 놓였다. 몇 년 일해 돈 벌면 시집 보내면 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하는 것을 보니 정말 애 잡겠다 싶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속시원히 그만뒀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 지금은 철도유통의 계약직이지만, 지금 투쟁을 중단하면 KTX관광레저의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철도공사가 여승무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보나?

"애들이 무슨 짐짝인가? 어차피 필요한 업무라면 철도공사가 관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KTX에 여승무원의 업무가 필요 없었다면 애초부터 채용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애들을 뽑아놓고 관리하기가 힘드니까 이 회사 저 회사 떠넘기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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