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그룹 본사 옆에 있다. 본사 건물과 똑같은 높이의 새 건물을 짓는 신축공사 현장 안에 크레인이 서 있다. 공사현장 앞에는 모두 4개의 천막 텐트가 쳐져 있다. 순천에서 올라온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 50여 명이 여기서 먹고 잔다.
천막 안은 휑했다. 천막을 지키는 한두 명의 조합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뿔뿔이 서울 각지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민주당 당사, 정부종합청사, 노동부, 검찰청 등 주요 관공서로 일인시위나 선전전을 하러 나갔다.
김밥 세 줄과 생수 한 통
선전조는 각 지역별로 4~5명으로 구성된다. 매일 아침 7시에 농성장을 떠나 오후 5시쯤이면 돌아온다. 교대는 없다. 식사는 농성장이 아닌 선전전을 진행하는 장소에서 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출근시간이 식사시간과 겹치는데 이 시간에 선전전을 해야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천막 안에는 김흥규(34) 씨가 있었다. 그는 금속노조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지회 대의원이다. 김 씨의 임무는 천막을 지키고,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일이다. 그는 모자를 쓰고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수염과 검게 그을린 얼굴을 갖고 있었다. 농성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를 통해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농성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아침 크레인 농성자 2명은 하루 끼니를 땅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하루 끼니는 김밥 세 줄과 생수 한 병이 고작이다. 그 하루 식사를 포기한 것이다.
김흥규 씨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다만 크레인 농성자의 마음을 미뤄 짐작할 뿐이다.
"치사하게 먹는 것 같고, 애들(현대·기아차 직원)이 장난을 치니 더러워서 못 먹겠다는 마음이겠죠. 치사해도 참고 먹으면 좋으련만…. 솔직히 애들 하는 거 보면 열불 나는 건 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땅 바닥에 내던져진 김밥, 지켜낸 자존심
식사 통제가 강해진 것은 5일 전부터다. 그 전에는 조합원이 식사를 준비하면 경찰이 전해줬고, 그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식사 통제를 하게 되면서 식사 전달과정이 다소 복잡해졌다.
크레인 아래 조합원이 음식을 준비하면 경찰이 현대·기아차 직원에게 전달하고, 그 직원들이 다시 크레인 농성자에게 음식을 건네준다. 이 과정에서 '검사'가 이뤄진다. '검사'의 대상은 음식의 양과 종류를 다 포함한다. 예컨대 김밥은 세 줄을 넘으면 안 되고, 빵 등 김밥이 아닌 다른 음식도 안 된다.
"올라가 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우리 입장에서는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돼요. 김밥 세 줄로 성인 남자 2명이 하루를 버티라니…. 뭐 어쩌겠습니까, 그거라도 올려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죠."
'음식 검사'는 좀 치졸하다고 할 정도다. 김밥 안에 담배 등 다른 것이 들어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김밥을 일일이 풀어헤친 다음 다시 말아서 올려 보낸다는 것이다. 검사가 끝난 김밥, 다시 말해 크레인 농성자에게 최종 전달되는 김밥은 엉망이다.
김흥규 씨는 말한다. "잔뜩 주물럭주물럭한 김밥을 먹으려니 화도 많이 났을 겁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을 올리면서, 꼭 사람들 심사를 그렇게 뒤틀리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그나마 음식이라도 올려주길 거부하면 크레인 농성자들은 본의 아니게 단식농성을 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참아야 하는 것이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다. 경찰도 "곤혹스럽다"고 말할 뿐이다.
확약서가 한 노동자의 삶에 갖는 의미
김흥규 씨는 오는 8월이면 딸아이를 얻는다. 지금은 4살 난 아들이 있다. 그간 김 씨는 '딸'을 무척 갖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노조에 참여한 이후 해고자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씨는 지난해 11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작년 11월 3일 확약서가 체결됐습니다. 이제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죠. 모두들 그렇게 알았습니다. 복직이 결정된 거라고 마냥 기뻐했죠. 저는 아내와 논의한 끝에 아이를 갖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그 달에 임신했습니다."
그 후로 꼭 10달이 되는 오는 8월 아내는 출산한다. 그렇게 갖고 싶던 '딸'이라고 병원에서 귀띔해주었다. 뛸 듯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김 씨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 믿었던 복직의 날은 멀어 보이고, 나날이 쌓여가는 가계 빚이 가슴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확약서 체결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9명이 복직됐어요. 나 같은 해고자가 117명인데 말이에요. 확약서에는 회사가 빠른 시일 안에 복직시킨다고 돼 있는데…. 딸아이가 태어날 때 떳떳하게 일을 하고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해고자 아빠라니 마음만 쓰립니다. 비록 나의 투쟁은 떳떳하지만요."
김 씨와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인 오후 5시경. 선전전에 나섰던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성천막 주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떤 이는 담배를 피웠고, 또 다른 이들은 농성천막 안에 누웠다.
휴식은 길지 않았다. 모두 함께 모여 농성장 앞 도로로 가서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농성자를 바라보며 집회를 가졌다. 노래를 불렀고, 구호를 외쳤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크레인 농성장에서 한 조합원이 팔뚝을 흔드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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