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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보고서는 햇볕정책의 '표절'?
[김기협의 냉전 이후] <61> DJ의 꾸준한 햇볕정책, 미국을 변화시키다
김대중은 1971년 대통령 출마 때부터 '평화통일'을 꾸준히 제창해 왔고, 1990년대에는 포용정책의 최대치라 할 수 있는 3단계 통일론을 발전시켜 온 정치인이다. 1998년 초 대통령 취임 이후 내놓은 '햇볕정책'은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었다.북한 지도부도 김대중의 일관성에는 신뢰를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쉽게 반응을
김기협 역사학자
2014.12.11 11:10:03
'합리적 보수'의 설 땅이 없던 부시 행정부
[김기협의 냉전 이후] <60> 부시의 집권과 '물 만난' 네오콘
찰스 프리처드의 실패한 외교(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펴냄)는 2001년 시작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다룬 책이다. "냉전 이후"에서 다루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차적 참고로만 삼았다. 그런데 지난 회에 척 다운스의 책을 비평하면서, 이 책의 일부 내용을 비교 대상으로 제시할 마음이 들었다. 프리처드의 위치와 역할을 옮긴이 김연철은 이렇게 설명했다
2014.12.04 15:37:21
'네오콘 나팔수'의 대북 인식, 뜯어보니…
[김기협의 냉전 이후] <59> '네오콘의 소굴' AEI가 북한을 보는 방식
북한을 놓고 미국과 한국에서 대결정책과 포용정책이 경쟁하는 상황은 북한에 관한 연구와 저술에도 투영된다. 북한체제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문헌에는 대결정책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보이고, 비교적 너그러운 시각을 보여주는 문헌의 필자는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연구와 서술의 자세가 치우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북한을 제
2014.11.27 15:11:40
DJ정부 '햇볕 정책'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김기협의 냉전 이후] <58> 대북 문제, 신뢰가 신뢰를 낳는다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다각적으로 추진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과제를 임동원은 이렇게 회고했다.나는 경색된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초 나
2014.11.20 15:07:47
DJ정부의 햇볕정책…"싸우지 않고 적을 이긴다"
[김기협의 냉전 이후] <57> 햇볕정책 추진 위한 임동원의 포석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외교안보수석을 맡은 임동원은 5년 동안 어느 직책에서든 대북정책의 사령탑 노릇을 했다. 특히 정권 출범 초기 IMF 사태로 인해 대통령이 경제문제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임동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했다.그러나 김대중의 깊은 신뢰는 임동원의 활동에 든든한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임동원은 외교안보수석실의 기존 인원
2014.11.13 11:02:23
4년여가 걸린 김정일 후계 승계, 이유는?
[김기협의 냉전 이후] <56> '선군정치'는 후계 승계 과정 보장 장치였다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가 북한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 위기에는 군사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동맹국들이 사라지거나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미국과 남한의 위협 앞에 아무 보호막 없이 노출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남한이 전반적 위기를 이용해
2014.11.03 16:53:57
'잃어버린 5년' 동안 김대중과 임동원이 한 일
[김기협의 냉전 이후] <55> 김대중-임동원의 평화통일 구상
"성심껏 모시고 연구활동을 돕겠습니다."1995년 1월 23일 김대중을 자택으로 찾아가 처음 만난 임동원이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했다는 말이다. 간단한 표현에 많은 뜻을 품은 말이다.김대중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그의 정치활동 아닌 연구활동을 돕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활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의 연구활동을 돕겠다는 것이다.통일방안의 연
2014.10.31 16:51:56
분단의 내재화와 '대통령 김대중'의 등장
[김기협의 냉전 이후] <54> 김대중과 임동원의 만남
1990년을 전후한 '공산권 붕괴'를 당시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비하면 세상이 그렇게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 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역사의 종말" 같은 네오콘의 환상적 승리감이 너무 들뜬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현실의 냉엄함을 깨닫게 된 것일 뿐이지, '동구공산권 붕괴'는 정말 큰
2014.10.23 11:50:58
YS, '잃어버린 5년'을 잃어버린 이유
[깁기협의 냉전 이후] <53> 식민성 버리지 못한 집권세력, 남북관계 '잃어버린 5년' 만들다
남북 분단체제는 해방 직후 미-소의 분단 점령으로 틀을 짜기 시작해서 1948년 8~9월 남북의 정부 수립으로 완성되었다. 큰 틀은 그 후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실제 양상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 왔고, 동구공산권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초반도 한 차례 큰 변화의 계기였다. 어떤 변화였던가, 분단체제 성격 변화의 큰 흐름 속에
2014.10.16 10:40:29
대북 강경파와 유화파를 모두 화나게 한 YS
[김기협의 냉전 이후] <52> 1995년 대북 쌀 지원과 '인공기 게양' 사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여러 미국 관료-학자-언론인의 회고에서 김영삼의 정책 결정 기준에 관한 일치된 견해가 있다. 국내 여론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론에 억지로 영합하려 한다 해서 꼭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김연철이 냉전의 추억(후마니타스 펴냄) 251쪽에서 김영삼 정권 시기의 남북관계를 요약한 대목에 지지율 추이가 언급되어 있다.정권별로 남북회
2014.10.09 13: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