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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에 서린 절절한 울림
[김지하를 추도하며] 12 끝
1. 김지하는 글씨와 그림에서도 당신의 시 못지 않은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 글씨보다 그림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또 그림에 더 열중하였지만, 사실상 그의 그림과 글씨는 둘로 나누어지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반듯이 거기에 걸맞는 화제를 들어감으로써 작품으로서 완결미를 갖추었으니, 서화(書畵)가 일체로 되는 세계였다. 김지하의 글씨는 그의 시와 마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2022.06.28 06:52:04
[김지하를 추도하며] 생명사상가 김지하 시인을 추모하며
[김지하를 추도하며] 11
유신시대 나의 대학시절은 시작부터 암담했다. 겨우 미술대에 입학은 했어도 미대 커리큘럼과 학풍이 싫었다. 그러다가 자유를 향한 저항의 시들을 만났다. 담시 '오적'은 김수영의 시와 수필에 매료되었던 청년학생에게 또 다른 신선한 공기같았다. 현대문학에선 외면한 운문적 설화문학과 이어지면서도 자유로운 시로 보였다. 동아일보 투고'1974고행', 김지하가 주필인
김봉준 화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2022.06.27 08:05:58
[김지하를 추도하며] 부용산 넘어 생명의 길로!
[김지하를 추도하며] 10
지하형님께서 이승을 떠나신 후 49재 되는 날, 남은 사람들이 형님의 혼령을 편안히 보내드리고자 정성으로 모였습니다. 돌아보니 형님과의 만남인연, 시절인연이 어언 51년이었습니다. 1971년, 노동자 조직 20만명이라는 큰 뜻을 가운데에 놓고 원주 봉산동 장일순 형님 댁에서 만났습니다. 곧바로 가까운 동네가게로 옮겨가서 소주를 대여섯병 마셨지요. 그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2022.06.26 00:21:18
[김지하를 추도하며]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김지하를 추도하며] 9
"하느님!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시편 130,4) 우리는 오늘 이곳 천도교당에서 김지하 시인을 기리며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저는 1970년 6월 로마 유학시절, 노동신문에 실린 '오적'을 읽었습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고발한 판소리 가락의 이 담시는 힘 있고 흥이 넘친 그
함세웅 신부
2022.06.25 10:13:58
[김지하를 추도하며] 흰그늘의 미학행, 향아설위의 자리
[김지하를 추도하며] 8
1. 무당은 신의 일을 행하는 자라고 스스로 그럽니다. 신의 일을 하던 이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누가 그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인지요? 노겸 김지하 시인은 살아생전, 이도 저도 발붙이지 못하고 죽어 떠도는 '찢어진' 중음신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중음신으로 살던 이가 이제 돌아가셔서 중음신이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살아 중음신이 죽어 또 중음신이 되었으니,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 소장
2022.06.24 03:39:50
[김지하를 추도하며] 시인 김지하와의 52년
[김지하를 추도하며] 7
시인 김지하씨와 이별을 하기 위해서, 저는 서울에 왔습니다. 깊은 회한을 품고 김지하씨가 없는 서울에 왔습니다. 긴 침묵을 계속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나버린 시인! 왜 그랬는지 묻는 것조차 불가능한 현실이 나를 움츠려 꼼짝 못하게 합니다. 발길이 무거운 "서울길"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깨닫게 되는 이 나라에 대한 사랑, 여기에서 사는 사람
미야타 마리에(宮田毬栄) 김지하 일본어 작품집 편집자
2022.06.23 08:40:40
[김지하를 추도하며] 여기까지 다들 애썼다!
[김지하를 추도하며] 6
이제 우리 나이 팔십이 되었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주위의 경조사에 참례하지 않게 되었다. 수년 동안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글 쓰며 은거했고, 칠십대 중반쯤에 부모님 유해를 납골당에 모시고 제사도 폐하면서 저절로 남의 장례식장에도 발길을 끊게 되어버렸다. 옛사람들도 늙은이가 되면 인편으로 부조나 보내면서 바람결에 지인들을 떠나보내던 것이다. 아난다여, 나
황석영 소설가
2022.06.22 09:00:56
김지하 시인의 그림자 뒤에 엎드려 울다
[김지하를 추도하며] 5
1. 아, 슬프다! 김지하 시인이 지상의 나날을 헤치고 간 서사는 도대체가 황망하기 짝이 없다. 온통 파란만장뿐이요, 온통 적막강산뿐이었다. 한 번도 그 앞에 엎드릴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얻은 생채기 하나를 지금도 젊은 날의 화인처럼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 영원히 지우지 못하리라. 2. 31년 전 딱 이 무렵이다.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김형수 시인·소설가
2022.06.21 07:43:04
김지하, 수난과 구도의 삶을 기억하며
[김지하를 추도하며] 4
돌이켜보면 1960년대 중엽 김지하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며 궐기한 학생운동 속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근무가 끝나면 복학한 친구들을 만나러 동숭동의 농성현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그때 김지하의 쉰 듯한 목소리가 뿜어내는 뜨거움
염무웅 문학평론가
2022.06.20 07:45:00
지하 형님의 추억, 그리고 작별
[김지하를 추도하며] 3
1. 담시 '오적'이 준 충격 1970년 가을 어느 날, 마침 정주동 교수의 '홍길동전' 수업을 마치는데 진보적 서클 현대사상연구회의 멤버인 동기 K가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돌렸다. 그것은 프린트 등사본으로 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갱지에 인쇄된 작품의 어법은 당차고 소름이 돋았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이동순 시인
2022.06.19 11:3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