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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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연구를 보는 세계 과학계의 우려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4> <네이처>, "한국 복제 연구자들의 위기"
2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한 윤리 의혹을 제기한 <네이처> 429호에 실린 기사의 나머지 전문을 지난 연재에 이어 번역해 싣는다. 독자들은 이 <네이처>의 기사를 통해 국내 언론을 통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황우석 교수 연구와 과학기술 연구의 윤리
Citisci 시민과학인 그룹
"박기영 보좌관님, 혹시 '무임승차' 아닙니까?"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3> 박기영 보좌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지난 6일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는 2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네이처>는 청와대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연구의 공저자로 돼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배경에 의구심을 표명했다.이것
한국과학기술의 쾌거인가, 생명윤리의 파탄인가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2> 인간배아복제 성공의 의미
'세계최초'라는 의미는 기술적 인정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 가능성을 우리가 먼저 겪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준비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제는 일방적 분위기에서 벗
논문표절='국가적 망신'?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1> 과학윤리 교육 부재가 더 큰 '망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학부 및 대학원 과정에서 연구윤리와 관련된 내용을 거의 교육하고 있지 않으며, 과학 전문학회들도 소속 회원들의 윤리적 행위를 강제하는 윤리강령이나 연구윤리상의 문제가 공식 제기되었을 때 이를 다루기 위한 윤리위원회를 거의
기술영향평가, 과기부의 '시민참여 기만극'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0> 박호군 과기부 장관이 답해야
기술영향평가 같은 작업이 기술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에서는 기술영향평가를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 각국의 보고서를 보면 기술이 점차 사회적으로 중요해
피기도 전에 시들고 있는 시민참여 제도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9> 참여정부, '시민참여' 성적표 참담한 수준
‘참여정부’ 원년의 끝에 받아든 과학기술ㆍ환경정책에서의 시민참여 성적표는 거의 참담한 수준이다. 부안 핵폐기장과 북한산 관통도로 논쟁에서 정부는 주민투표와 공론조사라는 새로운 시민참여 방안을 해법으로 꺼내들었으나 이는 모두 초기에 지역 주민 혹은 이해당사
아이에게 ‘위험한 햄버거’를 먹여야 할까?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7> 패스트푸드 ‘중독’ 논쟁
갈수록 아이들 키우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부모들에게 골칫거리를 하나 더 추가할 일이 있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일 것인가?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패스트푸
비만, 새로운 질병의 탄생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6> '지구촌 전염병' 비만 똑바로 보기
나타날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스에 대한 공포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금, 모두가 잊었던 위협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바로 비만이다. 사스의 경우에는 자기도 모르게 전염되어 치료법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대중들을 사로잡았
CItisci 시민과학인 그룹
‘유전자 중심주의’의 확산과 부작용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5>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측면(2)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적극적 옹호자들은 인간 유전체를 ‘미래의 일기’, ‘인간의 청사진’, ‘신의 암호’ 등으로 묘사하면서 염기서열을 해석하고 그 기능을 알아내기만 하면 질병, 행동양식, 지능 심지어 본성까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회적 책임을 옹호하는 과학기술자들을 기대하며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3>
앞서 연재되었던 “반전ㆍ평화 외치는 한국과학기술자는 없는가”라는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의 객원칼럼은 그동안의 다른 칼럼에 비해 매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칼럼이 논쟁적이기도 했고 민감한 쟁점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객원칼럼에 달린 답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