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아이들 키우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부모들에게 골칫거리를 하나 더 추가할 일이 있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일 것인가?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 지난 6월 18일에 발표된 소비자보호원의 조사결과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간식으로 햄버거를 가장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패스트푸드가 소아비만의 원인이다.", "패스트푸드가 중독성이 있다"는 얘기가 자꾸 들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과연 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햄버거 열량-지방 과다 흡수 불러**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가 최근에 불거진 것은 아니다. 이미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운동이 슬로푸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을 더욱 고조시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장마비를 두 번이나 경험한 당뇨병 환자인 브루클린의 시저스 바버가 맥도널드, 버거킹, 웬디스, KFC 등이 자신의 병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소송을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소송을 담배소송의 영웅이었던 조지워싱턴대학의 존 반자프 교수가 맡게 되면서 이 소송은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패스트푸드가 고열량, 고지방 식품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판매하는 햄버거 세트메뉴(햄버거, 감자튀김, 콜라)는 평균 888kcal의 열량(최고 1,065kcal)과 평균 32g(최고 41g)의 지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10~12세 어린이에 대한 열량권장량의 40%(최고 53%)를 넘는 수치이며 지방은 권장 영양소 기준치의 64%(최고 80%)에 이르는 높은 수치이다. 심한 경우에는 햄버거 세트 하나를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절반을 먹게 되는 것이다.
같은 조사는 어린이들이 패스트푸드를 식사로 먹는 경우(59.3%)뿐만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경우도 40.7%나 된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것을 지적한다. 간식으로 고열량, 고지방 식품을 먹게 되면 하루 열량권장량을 초과해서 섭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를 먹는 빈도가 1주일에 1~2회 먹는 어린이가 20.2%이었으며 매일 먹는다고 응답한 경우도 2.6%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것은 더욱 심각하다.
초과열량도 문제지만 패스트푸드를 통한 지방의 과잉섭취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지방은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연구가 널리 알려져 있다. 10~12세 어린이의 경우, 지방의 1일 기준치는 50g이다. 지방의 영양소기준치는 섭취권장량이 아니라 섭취제한량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햄버거세트 하나가 하루에 지방섭취 제한량의 64%를 차지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더구나 패스트푸드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지방산은 대체로 몸에 해롭다고 알려진 포화지방산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해 미국인들이 패스트푸드에 대해 지출한 총액은 1천1백15억 달러(약 1백30조원)에 달했는데, 이는 고등교육, 개인용컴퓨터, 신차구입 등에 대한 지출을 초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조사에 따르면 햄버거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어린이들의 63.1%가 "맛이 좋아서"라고 대답했고 24.6%가 "이용하기 편리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과연 단지 맛있기 때문일까? 브루클린의 바버도 단지 맛있거나 편리해서 패스트푸드를 그렇게 많이 먹었던 것일까.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패스트푸드도 중독성이다?**
존 그리샴의 <사라진 배심원>,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 등으로 익숙한 담배 소송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소송에서 원고측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담배의 중독성 여부였다. 물론 반자프는 패스트푸드의 중독성 여부를 밝히지 않더라도 기업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하고 있지만 만약 중독성이 밝혀지기만 하면 햄버거 소송의 결과는 소비자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중독(addiction)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중독판정기준에 따르면 ▲사용을 중단했을 때 증후군이 발생한다, ▲사용을 중단하려 하거나 조절하려고 할 때 실패한다 ▲유해한 결과를 알면서도 계속 사용한다, ▲처음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게 된다는 등의 7가지 기준에서 3가지 이상 해당될 때 그 물질을 중독성이라고 판정하게 된다.
최근 패스트푸드가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생리학적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의 몸무게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데에는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의 농도는 식욕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체내의 지방이 줄어들면 렙틴 수치가 낮아져서 시상하부에 지방섭취를 늘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반대로 지방이 늘어나면 렙틴 수치를 높여 체중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워싱턴 대학의 내분비학자인 마이클 슈워츠는 체내에 지방이 증가하게 되면 렙틴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서 과거보다 더 많은 지방을 요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체내에 지방이 많아지면 더 많은 렙틴이 만들어지고 시상하부는 렙틴에 대해 둔감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록펠러대학의 신경생물학자인 사라 래보위츠의 연구도 패스트푸드에 대한 논쟁과 관련이 있다. 래보위츠는 지방이 많은 식품을 먹으면 신체의 호르몬 체계를 변화시켜서 지방을 더 많이 원하게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래보위츠는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은 쥐의 경우 뇌에서 식욕을 자극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펩티드인 갈라닌의 수준이 증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갈라닌의 영향을 인위적으로 막았을 때에는 쥐들이 더 이상 지방섭취를 원하지 않았다. 이런 실험결과를 토대로 래보위츠는 "갈라닌이 지방에 대해 반응하면서 다시 더 많은 지방을 원하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어린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에 자꾸 손이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중독'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패스트푸드가 비만을 야기한다는 기존의 비판과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고지방을 염두에 둔다면, 슈워츠나 래보위츠의 연구는 곧바로 "패스트푸드 중독성"에 대한 증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햄버거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매년 두 자리 수의 매출액 상승을 자랑하던 맥도널드, 버거킹, KFC 등의 미국계 패스트푸드 업계들은 작년에 10% 정도의 매출감소를 겪었다. IMF 구제금융 때에도 10% 이상 성장하는 등 고속성장을 구가했던 패스트푸드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가맹점의 지나친 확대에 따른 출혈가격경쟁도 원인이겠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입맛, 패스트푸드에 대한 인식, 외식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현지인 미국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전세계 3만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맥도날드는 해외점포 1백75개를 폐쇄하기도 했고, 버거킹은 매각을 계획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이런 상황에서 바버 소송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업계로서는 실로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던 미국의 맛, 햄버거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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