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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중심주의’의 확산과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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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중심주의’의 확산과 부작용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15>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측면(2)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적극적 옹호자들은 인간 유전체를 '미래의 일기', '인간의 청사진', '신의 암호' 등으로 묘사하면서 염기서열을 해석하고 그 기능을 알아내기만 하면 질병, 행동양식, 지능 심지어 본성까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게놈프로젝트 결과는 그런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기능, 구조 유전체학이나 단백질학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는 유전자의 작용이 기존에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유전정보 자체가 생물학적 의미로 바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전자의 현실적 의미**

생명체에서 유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관한 논쟁이나 유전자 결정론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환원주의적 방법론의 문제 등에 대한 자세한 논쟁은 생략하기로 하고 유전자의 예측력과 관련된 현실적인 측면에만 우선 초점을 맞춰보자.

1960년대의 고전 유전학에서는 유전자의 작동을 DNA→RNA→단백질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인과적 연쇄로 파악했으며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특성을 발현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유전자는 안정적이며 외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상정했다. 이런 가설은 현재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유전자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관점에 대한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전자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는 유전자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유전자와 다양한 층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환경과의 다양한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유전자를 재배열하기도 한다.

물론 단 하나의 유전자나 몇 개의 유전자가 특정 질병을 거의 확실히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특정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확실히 발병하는 유전병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열성 유전되는 헌팅턴 무도병의 사례를 들어보자. 특정 유전자의 안에 염기서열이 반복된 형태의 변이가 있는 유전자를 양 부모 모두로부터 물려받은 자식은 거의 확실히 이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발병 시기나 정도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증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 실시되고 있는 유전자 검사 중에서 그나마 예측력이 높다고 알려진 유방암 유전자와 알츠하이머(치매) 유전자도 가족력(曆)이 없는 상황에서는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

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유전자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유전자의 개수가 그 동안 예상했던 8-10만 개보다 훨씬 작은 3만 개 내외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간단한 벌레인 선충보다 불과 만 개가 더 많은 것이다. 2001년 초안이 발표된 후 셀레라 지노믹스의 벤터 사장은 "우리는 유전자 결정론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보여줄 충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유전자 치료(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부위를 '정상' 유전자로 '갈아 끼우는')의 효과에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는 지난 1990년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래 현재 세계적으로 약 500건 이상의 프로토콜이 진행되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전달체인 바이러스 벡터를 지적하지만 일부에서는 유전자 치료 자체에 의문을 보낸다. 몇 개의 유전자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다양한 유전자와 환경의 복합적 작용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 유전정보의 사회적 이용**

중요한 것은 생명체에서 유전자의 의미를 어떻게 보든간에 그 의미가 실제보다 과장돼 사회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도 유전정보를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각종 질병의 진단, 범죄자를 비롯한 신원확인을 위해 유전정보가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회사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유전정보의 사회적 활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개인 사이의 모든 차이를 유전자의 차이로 생각하는 유전자화(geneticization)가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을 유전자로 설명하려고 하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도 당연히 유전자의 차이가 된다. 유전자 검사가 일반화되면서 '유전적 부적격자'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증상 전 진단도 가능해져 '환자 아닌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차이 즉 유전자의 차이로 보는 일도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이미 고용, 보험, 법정, 학교 등에서 유전정보를 사용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제 DNA는 실험실 안의 작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권력을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 바이오 벤처들의 활동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 중심주의의 확산과 지나친 상업 활동이 맞물린 유전자화 현상이 낳은 병폐의 결정판이다. 일부 벤처들은 관련 법제도가 없는 현실을 이용해 다양한 유전자의 수집과 각종 소인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DNA 감식을 이용한 친자확인, 가족유전자 사진제작, 출생기념 DNA 카드 제작, DNA 추출 및 영구보관 , 각종 유전자 검사 등을 핑계로 무차별적으로 유전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회사는 유명 연예인과 DNA가 일치하면 경품을 준다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광고를 통해 개인의 유전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몇몇 기업들은 결혼정보 회사와 연계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적합한 배우자를 찾아 주기도 한다. 성격, 지능, 비만, 치매 등의 검사를 통해 서로의 건강 상태를 파악한 후, 결혼 정보회사에 제공해 주고 있다. 벤처기업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의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유전자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가 바로 그 회사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회사의 가치가 그 기업이 소유한 개인정보의 양과 질로 결정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벤처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제휴회사를 통한 유전정보의 유통도 앞으로 큰 문제로 될 것으로 보인다.

'단 한번의 DNA 검사로 아이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회사도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롱다리', '호기심', '지능', '체력', '비만', '골초'와 같은 소인검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실시하고 있는 유전자 검사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 많다. 사회 유행어인 '롱다리'의 유전자를 검사해 준다는 것 자체가 허위 광고이며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유전자도 치명적 유전병에서 신장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들이다. '호기심 유전자'로 광고하고 있는 유전자도 대부분 병적으로 심각한 정신장애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된 것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과학적 근거라고 제시하는 관련 논문들도 대부분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짜깁기 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식의 바이오 벤처들의 활동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의학자들에게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검사들이 대부분 정확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이라고 지적하면서 장기적으로 유전자 검사의 의미가 왜곡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철저히 유전자 중심적 관점에서 출발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이제 역으로 우리에게 유전자의 과학적,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과, 개인의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역동적 생명현상을 유전자로만 환원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전자', '생명체', '환경'의 능동적 상호관계를 '삼중나선(Triple helix)'으로 표현했던 생물학자 르원틴의 주장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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